사랑과 꿈

2024-10-10     이종구 수필가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그의 이성론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 사랑할 수 있는 사람, 꿈을 가꿀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했다. 그의 말을 곰곰이 되새겨 보면 일과 사랑과 꿈은 결국 가정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으로 귀착된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접하는 공간이 가정이고 마주치는 사람이 가족이다. 거기에 꿈이 있고 사랑이 있고, 그래서 일을 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일찍부터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을 이야기 해왔고 잘 알고 있는 말이 됐다. 그런데 잠시 돌이켜 보면 사회, 문화, 과학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 생활고로 일가족이 삶을 포기하는 안타까운 소식이 가끔 전해진다. 이웃에 폐를 끼치기 싫어 장례비 몇십만 원을 남기고 떠난 어느 가족의 이야기는 더더욱 우리들 마음을 아프게 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삶을 포기하고, 이웃의 삶에 냉정해지는 현대인의 도덕과 교양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수많은 연구와 검증, 실험을 거쳐 체계화되고 구조화된 현대 교육은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하도록 해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까닭은 무엇일까? 유치원에서부터 배우고 학교에서 정규 교과목인 “도덕”을 10여 년이 넘게 배우는데도 사랑, 봉사 협동의 덕목이 왜 사그라져 가는 것일까?


많은 심리학자는 사람 인성의 대부분이 5세 이전에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5세 이전이라면 결국 가정생활에서의 인성발달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3세 이전의 유아기에 어머니들은 아기의 이름을 부르면서 웃는 모습을 보고 말하며 옹알거리는 소리에 “그래”, “응”, “옳지” 등의 말로 감정을 주고받는다.  

바로 이런 부분이 인성을 기른다는 것이다. 사람과 가까운 유인원은 아무리 새끼가 옹알거려도 감정을 주고받지 못한다고 한다. 감정을 나누고 서로 호응할 때 사랑이 싹트고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아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하고 걸음을 뗄 때부터는 호응하고 맞장구를 쳐 주면 신이 나서 더 잘한다. 아이들뿐이 아니라 사실 어른들도 상대방이 맞장구쳐주면 좋아하지 않는가? 감정으로 호응하고 맞장구쳐주는 아량을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학부모들의 바람은 하나 같이 ‘우리 아이 공부 잘해야 된다’이다. “잘해라”라는 요구만 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며 아이의 마음속 깊이 사랑으로 호응하는 학부모가 되었으면 좋겠다. 작은 일에도 격려하고, 부족한 듯함은 채워주면서 배려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기르도록 해서 학교로 학원으로 쉴 틈 없이 쫓기는 아이들에게 잠깐의 여유와 잠깐의 틈을 주면서 부모의 사랑이 통하는, 그래서 꿈을 기르는 아이들이 되게 하였으면 좋겠다. 


학교에서 돌아온 자녀에게 “너 학교에서 무얼 배웠니?” 보다는 “너 선생님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니?”라는 질문을 해보라고 하면 어떨까? 소통하고 마음을 나누고 상대방의 감정을 호응하는 가정생활, 그런 학교생활이 된다면 행복의 시발점이 되리라 생각한다. 


시원해 지는 이 가을에, 귀가하는 아이에게 딱 자르는 말투보다는 부드러운 말로, 명령과 질책보다는 격려와 사랑으로, 굳어진 표정보다는 웃음 가득 머금은 얼굴로 “엄마는 네가 있어 행복해. 넌 우리 가정의 소중한 보물이야”하고 이야기해 보면 어떨까? 결실의 계절인 가을에 아이의 작은 이야기에도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여 꿈을 키우고 사랑을 키워가는 정말 가화만사성으로 행복이 넘치는 가정이 되어가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