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간 엄마가 돌아온 기분...”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시리즈

2024-10-24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평가원 원장은 의료분야의 평가인증과 관련된 법적, 현실적인 복잡한 현안을 일목요연하게 풀어낼 전문적 역량이 필요했다.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예상하고 해결해 낼 수 있는 능력이다.

나아가 직원들이 우리 평가원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분위기 조성, 즉 구성원을 압박하고 통제하기 보다는 각자 자기 신념과 열정을 바쳐 일할 수 있도록 포용하는 리더십이 필요했다.

물론 우리 평가원의 다양한 기능과 역할을 소화해낼 수 있도록 직원들도 전문능력을 갖춰야 했다. 정부 관청들로부터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 또한 원장의 중요한 소임이었다. 직원들의 든든한 울타리와 버팀목이 되어주고 그들이 자부심을 갖고 오래도록 일하고 싶어하는 터전으로 만들어주고 싶었다.

 
내가 이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2012년 5월, 처음 평가원장에 취임하여 첫 공식행사를 시작했을 때다. 나의 첫 공식행사는 가톨릭 간호대학 강당에서 있었던 전문대학 4년제 지정심사 설명회였다.

그날 설명회 첫 순서는 원장 인사말이었고, 인사말을 마친 나는 내 자리에 가서 앉았다. 이어서 외부 교수의 강의가 있은 후, 계속해서 우리 평가원 과장들이 심사기준 및 절차 등에 관해 설명하는 순서였다. 그때 김과장이 내게 와서 귓속말로 말했다.


“원장님 인사말 끝났는데 안가세요? 바쁘실 텐데 가시지요.”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아니, 평가원이 주최하는 중요한 지정심사 설명회로써 전국 3년제 대학들의 최대 관심사인데, 당연히 원장이 책임지고 설명회에 있어야지 어떻게 인사말만 하고 가버리나요? 나는 끝날 때까지 있을테니 걱정하지 말고 진행하세요.”


그날 행사가 끝날 때까지 나는 자리를 지켰다. 설명회가 끝나자 강당을 가득 채웠던 교수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김과장을 비롯한 직원들이 내게로 왔다. 


“원장님께서 이렇게 저희와 함께 해주시니 마치 집 나갔던 엄마가 오랜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와 준 그런 기분이어서 눈물이 날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김과장의 다소 상기된 표정에서 나는 스쳐가는 외로움을 보았다. 평가원이 주관하는 중요한 행사의 주인인 원장이 끝까지 있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도, 그동안 직원들끼리 책임지고 진행하느라 힘들고 외로웠나보다 싶어서 안타까웠다.

책임자가 자리를 지켜준다는 것만으로 든든한 보호막이 될 수 있는 것임을 느꼈다. 나는 그 순간 내가 있는 한 그들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리라 결심했다. 


“누가 누구한테 고맙다는 거예요? 수고하신 여러분한테 내가 고맙다고 해야지요.”


그동안 평가원장은 현직 교수가 겸직하는 자리였다. 그러다보니 대 부분 학교일이 우선이었고, 평가원 업무는 잠시 들러 결재나 하는 정도로 순위가 밀리는 폐단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문제점 개선하기 위해, 나는 학교업무와 평가원 업무를 구분하고자 했다.

우선 학교로 출근하는 날과 평가원에서 근무하는 날을 요일별로 정했다. 평가원으로 출근하는 2~3일은 온종일 평가원에서 직원들과 함께 평가원의 업무만 보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평가원을 보다 안정시킬 수 있었다. 결정권자 없는 기업이 흔들리는 것과 같은 이치로 생각한 것이다. 


설명회 행사를 온전히 참석하고 난 다음 날, 나는 평가원으로 출근하여 부장들을 비롯한 과장, 직원들을 내방으로 불러 그날 내가 보고 느낀 ‘전문대학 4년제 간호학과 지정심사 설명회’에서 개선이 필요한 부분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 전국에서 참석한 150여 명의 교수 등을 대상으로 우리 평가원 과장들이 대학 심사 기준과 절차에 관해 강의를 진행해오던 관행을 앞으로는 각 해당 위원회 교수 중심으로 체제를 완전히 바꾸도록 한 것이다.

인증평가 설명회도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평가원 부장, 과장들이 진행해왔지만, 일부 불가피한 프로그램을 제외한 모든 강의는 교수가 주체가 되어 강의를 진행하도록 획기적인 개편을 시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