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나무 :桑木 / Mulberry 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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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나무 :桑木 / Mulberry tree
  • 정홍용 안남 화인산림욕장 대표
  • 승인 2019.08.08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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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용 안남 화인산림욕장 대표

1953년 휴전 이후 전쟁이 할퀴고 간 온 산천이 황폐한 때에 우리 농촌에 고소득을 안겨주어 기아에서 속히 벗어날 수 있도록 일조한 것이 누에고치였다. 그때는 집집마다 약속이나 한 듯이 누에를 길러 논이나 밭둑에 뽕나무가 없는 사람들은 산뽕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 산을 헤집고 다니면서 누에를 쳐 모자라는 식량도 사고 자녀들 월사금(학자금)을 댈 수 있었다.

이렇게 빨리 누에고치 공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음에도 소화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일제 강점기에 일제가 한반도 곳곳에 우리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기 위하여 대대적으로 견사, 제사공장을 짓고 뽕나무를 심도록 권유한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그 시설과 뽕나무를 재빨리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은 역행할 수 없어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근대적인 제사공장으로 문을 닫은 곳은 충북 영동 쪽에서 무주 읍내로 진입하기 바로 전 구천동 쪽으로 좌회전하여 200m 정도 들어간 냇가에 자리한 자그마한 제사공장이었다. 구천동에서 흘러 내려오는 깨끗한 물을 이용하여 1980년대 초반까지 일본인 기술자 2명이 주재하면서 기술지도를 하며 전량 일본으로 가져갔던 곳으로 필자도 표고버섯 관계로 자주 가게 되어 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뽕나무버섯은 마치 닭고기 맛과 흡사하여 모두가 선호했으며, 뽕나무벌레는 어린애들 감기에 구워 먹이면 효과가 있다 하여 굼벵이처럼 생긴 하얀 애벌레를 잡기 위해 나무를 쪼개 벌레도 잡고 장작도 얻었다. 오디로는 술을 담그고 효소액도 만들며, 술은 상심주(桑甚酒)라고 하여 눈과 귀가 밝아지고 오장을 튼튼하게 한다고 전해져 오고 있다. 뽕나무상(桑)자는 가지에 다닥다닥 달린 오디 모양에서 온 상형문자(象形文字)임을 누구나 금방 알 수 있어 쉽게 익힐 수 있는 한자이다.

1997년 12월 방콕에서 평소 서로 거래 관계가 많은 일본인, 대만인 필자 9명이 만나 당시 미지의 세계와 다름없는 캄보디아의 바탐방(Batambang) 주위에 수백년 된 뽕나무 처녀림이 많다고 하여 알아보려고 들어갔다. 캄보디아는 수년 전부터 가고 싶었지만, 우리와는 단교 되었다가 1997년 10월에 재수교 되어 입국이 가능하게 되었다.

여기까지 와서 내친김에 시엠리엡(Siem Reap)에 있는 앙코르 와트(Angkor wat)도 구경하고 항암에 좋다는 상황버섯도 구할 겸 월남전에서 활약했던 케네디찝차 3대를 전세 내어 출발했다. 출발 얼마후 선두에 달리던 차가 지뢰를 밟아 굉음과 함께 공중으로 솟구침과 동시에 개울에 처박혀 버렸다. 다행이 사상자는 없었으나 필자를 제외한 군대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혼이 빠져 되돌아가기를 원해 포기한 일이 있었다.

앙코르 와트 관광을 위해 시엠리엡으로 직행 편이 개설되자마자 아내를 데리고 가보니 역시 언제부터 왔는지 한국상인들이 해발 1,000m 이상의 산뽕에서 채취한 상황버섯을 많이 전시해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견사 공장도 있었고, 조잡하나마 비단도 여기저기서 팔고 있었다.2012년 친구인 권천혁 회장이 우즈베키스탄의 정부기관과 손잡고 아파트 사업에 손댔는데, 주방가구에 대하여 자문을 해달라고 간청해 함께 수도인  타슈겐트(Tashkent)로 날아갔다. 

어디를 봐도 풍요로워 보였고 천산산맥(天山山脈) 설산에서 흘러 내려온 맑다 못해 짓푸른 물이 커다란 수로를 따라 한없이 흘러내려 부렵기까지 했다. 반사막 기후 탓에 덥고 건조하여 과일은 당도가 높아 달고 맛이 아주 좋았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여기가 실크로드(Silk road=비단길))의 중간 기착지로서 이웃의 사마르칸트(Samarkand),부하라(Bukhara)와 더불어 실크로드의 요충지로 한때 크게 번성했던 곳이다.

풍부한 물과 뽕나무로 견사공업이 발달하여 실크로드의 후손들이 아직도 건재하고 있었다. 견사공장에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샀더니 헐값이었고, 도로변에서 팔고 있는 수많은 과일을 종류별로 무더기로 사도 수일 전 100불을 환전한 돈이 여기저기서 식사를 하고 온갖 것을 샀음에도 돈이 좀처럼 줄지 않았다. 제사공장을 견학 후 뽕나무밭을 나와 비포장 외길을 달리는데, 어느 아주머니가 머리에 이고, 등에는 간난쟁이를 업고, 한 손에는 애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이 너무나 애초롭고 안쓰러워 보였다.

운전수에게 차를 세우라고 했더니 벌컥 화를 내며 쌍심지를 짓고 큰소리로 뒤돌아보며 떠들어 댔다. 통역의 말에 의하면 외간남자와 걸어만 가도 문제이며 만일 동승시켰다가는 그 여자는 아마 집에 가면 가족이나 마을 사람들로부터 태형을 당해 운이 나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단다. 이웃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을 다닐 때  보다 더 가혹했으며 회교 율법은 이란 쪽으로 서진하면서 그 강도가 더 심한듯하였다. 

종교란 참으로 묘하다.  밤 비행기로 김포공항을 이륙할 때는 수많은 십자가 숲의 불빛 전송을 받고, 방콕 호텔에서는 승려들의 요란한 불경소리와 목탁소리 행렬에 잠에서 깨어나고, 점심때에는 자카르타에서 엉덩이를 들썩이며  코란을 낭독하는 소리를 들으며 점심을 먹고, 저녁에는 발리에서 경건한 모습으로 제물을 놓고 있는 힌두교도 여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녁을 먹을 때가 종종 있었다. 만 하루 동안에 4대 종교를 접하다 보니 뇌리가 복잡해지고 갑자기 피로가 엄습해 왔다.

필자가 스위스 남동부나 이태리 북부를 가게 되면 일부러 시간을 내어 가는 곳이 밀라노 북쪽 스위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코모(Como)이다. 코모호수는 그림 같이 아름답고 조용하고 평화로와 누구나 머물고 싶은 낙원 같은 곳이다. 이곳은 본견(本絹=누에가 만든 비단)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있는 곳이다. 실크넥타이, 실크 머플러, 실크손수건, 실크블라우스 등 신의 경지에 이른 제품으로 고가임에도 주저하지 않고 누구나 지갑을 열게 한다.

이 샤일록(Shylock)의 후예들은 타고난 솜씨와 로마시대부터 터득한 상술에 수려한 경관까지 이용하여 옛날이나 지금이나 실크로드의 종착역이자 꽃을 피운 곳은 역시 이태리임을 피부로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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