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옥천 뚝심으로 가난 딛고 우뚝
송영길 의원과의 만남은 또 다른
인생의 시작, 체육인 자리 굳혀
가난해도 너무 가난했다. 열여섯 살 소년은 기울어진 가세에 더 이상 버틸 힘조차 없었다. 결국 학업을 포기해야 했고, 어린 소년은 생활전선 한복판에 내던져졌다. 충북 옥천 출신 인천시체육회 이규생(65) 회장의 가난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다. 소설 같은 인생이지만 이 회장이 겪은 엄연한 현실 속 삶 이야기다. 살아야 했기에 이를 악물고 옥천의 뚝심으로 걷기 시작했다. 고향을 떠나 첫 발을 내민 곳은 부산. 어디 그뿐인가. 마산, 진해 등 경상도를 휘돌며 어린 규생은 10대 시절을 그렇게 보냈다. 그는 다시 인천으로 향했다. 택시기사와 공장일 등 해보지 않은 일 없이 그야말로 산전수전 다 겪으며 인생에 희망을 걸었다. 그 순간 그의 앞에 나타난 구세주가 있었으니 송영길 국회의원(민주당)이다. 그와의 만남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 파란만장한 이규생 회장의 삶의 현장 속으로 들어간다.
△ 가난에 숨 막힌 어린 규생
이규생 회장은 충북 옥천군 이원면 현리에서 태어났다. 이원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원중학교 2학년 1학기 때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집안 형편은 급속히 어려워지면서 돈을 벌겠다는 일념으로 부산행을 택했다.
이 회장은 “고향 이원의 선배 한분이 부산 왕자표 신발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취직을 시켜준다고 해서 갔다가 정작 신발공장은 못 들어가고 제빵공장에서 2~3년 동안 양과자 만드는 일을 했다”며 당시 힘들었던 시절을 회고했다.
그러면서 그는 “어릴 때 고향을 떠났기 때문에 내가 살던 마을에 대한 기억은 가물가물하다”면서도 “하지만 마을앞 다리 밑에서 씨름을 하고 놀았던 일, 책보를 메고 학교까지 2km정도를 날마다 뛰어 다녔던 일, 칠방리 금강변에 가서 여울을 헤엄쳐 건넜던 일 등 친구들과 함께했던 고향에 대한 추억만큼은 잊지 않고 간직하고 있다”라고 그리운 고향에서의 옛 추억을 더듬었다.
△ 인천은 또 하나의 고향
고향을 떠나 부산, 마산, 진해 등지에서 생활을 하다가 열아홉 살 때 쯤 인천에 있는 가구공장에 취직을 하면서 인천인으로서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40년 넘게 살고 있으니 인천은 그에게 있어 또 하나의 고향이다.
△ 귀인 송영길을 만나다
33년 전 이 회장이 택시기사를 할 때다. 전두환 정권에 맞서 연세대학교 초대직선총학생회장인 청년 송영길은 제적을 당한 뒤 인천으로 내려왔다. 송영길은 노학연대를 만들고 택시․버스노동자와 함께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택시기사 이규생과 연세대 학생회장 송영길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 회장은 “송 의원님을 만나 노동운동을 시작한 것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며 의미를 강조했다.
이어 그는 “저는 택시기사를 4년 동안 했는데 노동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하기도 했다. 해고를 당하고 나서는 포장마차에 막노동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만 했다”고 갈 곳 없는 노동운동가의 설움을 전했다.
1994년 변호사가 된 송영길이 제도정치에 입문하면서 그가 출마했던 1999년 보궐선거, 2000년, 2004년, 2008년 국회의원 선거, 2010년과 2014년 인천시장선거, 2016년과 2020년 국회의원 선거 등 모든 선거에서 이 회장은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 체육은 운명이었다
송 의원이 인천시장에 당선됐던 2010년 이 회장은 인천시체육회 사무처장에 임명됐다. 이 회장의 체육과의 첫 인연이다. 체육회 사무처장으로 3년 넘게 활동하면서 인천에서 열린 2013년 전국체전과 2014년 아시안게임의 성공적인 개최에 힘을 보탰다. 또한 다수의 실업팀을 창단하고 체육예산을 안정적으로 확보해내는 등 인천체육이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튼튼한 토대를 마련했다. 이러한 성과 덕분이었을까? 민선1기 인천시체육회장 선거에서 당선됐다.
△ 늦깎이 학생
집안사정이 어려워 중학교를 중간에 포기해야만 했던 이 회장은 배움에 대한 열정만큼은 식지 않았다. 특히 체육회 사무처장을 하면서 배움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과 목표를 세웠다. 그건 바로 사람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늦깎이 학생이 될 수밖에 없었다. 사무처장이 되던 해 그는 인천대 체육학과에 입학했다. 내친김에 대학원도 도전해 보자. 굳은 결심으로 이 회장은 가천대 대학원에서 운동치료학을 공부하게 된다. 그의 석사학위 논문 제목은 ‘대학축구선수들의 하지 근력 비대칭이 척추변형에 미치는 영향’으로 엘리트 선수들의 발목 부상으로 인한 허리 이하 근력 약화에 대한 연구 논문이다. 이 회장은 “지금 돌이켜보면 이 모든 게 끊임없이 배움에 대한 욕심을 자극해주고 중학교, 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할 수 있게 지도해준 송영길 의원님의 부인 남영신 여사님 덕분”이라고 힘줘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회장이 중‧고 졸업 자격 검정고시에 합격할 수 있도록 남 여사는 3개월 동안 직접 학습을 지도해 줬다. 이보다 더한 인연이 있을까?
그는 “송영길 의원님과 남영신 여사님과의 만남도, 체육과의 만남도 운명으로 다가온다”고 운명의 3박자 만남에 희망을 덧입혔다.
△ 고향 옥천과의 약속
이 회장은 고향 옥천과 또 하나의 고향 인천과의 가교역할에 방점을 찍었다. 먼저 “두 지역 체육회간 실질적인 교류를 강화하고, 운동부 간 합동전지훈련 실시 등 함께할 수 있는 사업들을 적극 발굴하고 추진해 나가겠다”고 피력했다.
이뿐 아니다. 옥천의 우수 농산물을 인천시민들이 맛볼 수 있게 직거래장터도 약속했다.
그는 “인천시민에게 옥천의 포도와 복숭아 등 우수한 농산물을 홍보하고 직거래할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나겠다”며 최근 인천에서 열린 옥천복숭아 판촉행사를 소개했다.
그는 “인천시체육회가 수탁관리하고 있는 열우물경기장에서 ‘옥천이원복숭아 홍보판촉행사’를 열었다. 그날 준비해온 복숭아 500상자를 완판했는데 행사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며 “내년엔 복숭아 2천 상자를 팔 수 있게 더 열심히 뛰겠다”고 약속했다.
△ 고향에 식품회사 설립
지난 6월 이원면 이원리 명예이장으로 위촉된 이 회장. 옥천의 경제발전에 발 벗고 나섰다.
이 회장은 지난해 이원농공단지에 건강식품회사 ‘원웅식품’을 설립했다. 원웅식품은 여주, 구찌뽕, 돼지감자, 율무, 양파 등 다섯 종류 재료로 건강음료 ‘여주의 하루’를 생산하고 있다.
이 회장은 “고향 경제발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한다”며 “앞으로 옥천에서 생산되는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다양한 건강식품을 개발해 옥천농민과 윈윈할 수 있는 아이템을 찾아보겠다”고 포부를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시 한 번 약속드리지만 말로만하는 고향사랑이 아닌 행동하는 고향사랑을 실천하겠다. 인천과 옥천의 가교역할을 톡톡히 해내겠다”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