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봉사활동에 몸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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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봉사활동에 몸담아
  • 김수연기자
  • 승인 2020.09.10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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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부터 시작해 30여 년간 이어온 봉사
한평생 봉사활동을 통해 정과 사랑을 나눴던 오영숙씨
한평생 봉사활동을 통해 정과 사랑을 나눴던 오영숙씨

 

옥천에서 나고 자란 옥천 토박이 오영숙(86) 씨는 1970년대부터 봉사활동을 시작해 2000년대 초반까지 쉬지 않고 이어온 옥천 봉사단체 역사의 시초같은 존재다. 오영숙 씨가 처음 봉사활동에 발을 들이게 된 건 서른다섯 살 때의 일이다. 그녀는 어떻게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됐다고 회고했지만, 기자는 특히 모두가 함께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 타인을 위한 마음으로 진행한 봉사활동은 그녀 마음 깊은 곳의 인류애 덕분이었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봉사활동에 쏟아야 하는 노동력과 시간을 아까워 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1970년대 옥천에는 다섯 개의 봉사 단체가 있었다. 지금이야 한 단체에 소속된 봉사회·지부만도 십수 개라지만 당시는 코앞에 맞닥뜨린 보릿고개를 어떻게 넘길지 고민하는 게 더 중요한 시기였기에 봉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지금보다 훨씬 적었을 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영숙 씨는 당시 옥천에 있던 다섯 개의 봉사단체 중 두 개의 단체, 한국 부인회와 적십자에서 활동했으며 특히 한국 부인회에서는 회장직을 맡아 앞장서 옥천 관내의 봉사활동을 진두지휘했다. 당시 그녀가 주로 한 활동은 옥천의 하천 정비, ·연탄 나눔, 불우이웃돕기 등이었다. 심지어 교통수단도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는데 거주지인 옥천 읍내뿐만 아니라 털털거리는 차를 타고 닦이지 않은 길을 지나 청산·청성에서도 봉사활동을 진행했으니 본인은 그냥 한 것뿐이라고 표현했지만, 봉사활동에 대한 그녀의 열의는 가히 대단했다고 볼 수 있다.

오영숙 씨는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에 대해 구술해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기억을 더듬어 유원지에서 봉사한 날을 꼽았다. 당시 금강 유원지에 나가 봉사활동을 하던 날, 유원지에 정차한 버스 승객 중 응급 환자가 생겼던 것. 그녀는 그 날을 회상하며 그 사람 얼굴도 기억이 안나고 멀미였는지 급체로 인한 토사곽란인 것인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기억하는 것은 응급 환자가 있다는 얘길 듣고 모두가 벌떼처럼 달려들어 한마음으로 응급처치를 한 후 상태가 호전돼 떠나는 걸 보고 한마음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오영숙 씨는 2000년대 중반 봉사단체 회장직을 며느리에게 일임한 후 봉사활동에서 은퇴했다. 그녀의 나이 일흔 전후였다. 3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변하지 않고 사랑을 나눴던 오영숙 씨의 휴식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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