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투 세계 챔피언 ‘이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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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투 세계 챔피언 ‘이열우’
  • 오현구기자
  • 승인 2021.05.27 1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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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피언 벨트를 착용한 이열우 선수
챔피언 벨트를 착용한 이열우 선수

 

이열우 선수는 1967년 옥천군 동이면 적하리의 철봉산 아랫동네인 용죽 마을에서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동네 앞에는 넓은 들이 있어서 벼농사를 주업으로 하고 작은 동산 사이의 밭작물도 있어 마을 사람들은 빈곤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선수의 집은 그렇지 않았다. 변변찮은 농토가 없어 품팔이와 일용직 노동으로 생계를 잇는 형편이었던 것.

놀이터가 변변치 않았던 어린 시절의 이 선수는 뒷동산에서 나무썰매타기, 못치기, 자치기, 딱지치기 그리고 금강 변에서 친구들과 물놀이를 하며 물고기를 잡는 것이 일과였다. 그러다 보니 어릴 적부터 친구들과의 시합에서 이 선수는 키가 작은데도 경쟁에서는 선두에 있었다.

이 선수의 바로 위 형인 석우는 복싱을 했다. 그 모습을 자주 보게 된 이 선수는 자연스레 복싱에 관심을 가진다. 형을 따라 복싱을 해보니 자신에게 맞는 운동이라 생각하고 뒷동산에 모래를 넣은 군대 배낭을 걸어놓고 매일 꾸준하게 복싱에 대한 꿈을 키워 갔다.

옥천고등학교에 진학한 이 선수는 체육부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복싱을 시작했다. 학교가 끝난 후에는 대전 한밭체육관에 가서 복싱 연습과 훈련을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병행했다. 그리고 얼마 후 제62회 전국체육대회에 충청북도 코코급(제일 경량체급) 대표로 선발됐다. 처음 출전하는 대회여서 좋은 성적을 위해 죽기 살기로 했으나 연습 때와 실전은 달랐다. 2회전에서 탈락하며 좌절을 맛본 것.

당시 옥천고등학교 체육 교사인 박기현은 대전에 있는 염동균 체육관과 옥천고등학교의 자매결연을 맺어 이 선수가 훈련할 수 있도록 했다.

억척스럽게 연습하는 이 선수의 모습을 보고 관심을 가진 염동균 관장은 집중적으로 훈련을 시켰다. 그리고 후원까지 아끼지 않았다.

옥천고등학교를 졸업한 이 선수는 대전 누나의 집에서 머무르며 염동균 관장에게 훈련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이 선수의 재능과 노력을 본 염 관장은 그가 서울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 서울에 있는 ‘극동 프로모션’으로 이적시켰다.

1989년 3월 19일 오후 2시,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극동프로모션에서 주선하는 ‘세계 WBC 플라이급 타이틀’ 경기가 벌어졌다. 시합 상대는 멕시코 국적의 챔피언 ‘헤르만 토레스’

이 경기에서 이 선수는 9회전 2분 14초 만에 헤르만 토레스를 KO로 물리쳤다.

WBC 플라이급 세계 랭킹 6위에 있던 이 선수는 한 체급을 낮춰 도전한 경기에서 초반 적중 타를 터뜨리지 못해 고전했다. 하지만 4회전부터 라이트와 스트레이트가 적중하면서 경기의 흐름이 우세해졌다. 7회전에는 이 선수의 오른쪽 훅에 상대방의 마우스피스가 빠져 나왔으며 9회전 들어서는 상대의 안면과 복부에 소나기 펀치를 계속 적중시키자 주심은 경기를 중단시키고 이 선수의 KO승을 선언했다.

옥천군민 1만여 명은 세계 챔피언에 오른 이 선수를 위해 공설운동장에서 환영대회를 열었다.
옥천의 이열우 선수는 유명우, 김용강, 문성길의 뒤를 이어 경량급 세계 챔피언이 됐다. 이로써 우리나라가 세계 복싱 경량급 최강국임을 다시 한번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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