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삼모사(朝三暮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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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삼모사(朝三暮四)
  • 김병학 편집국장, 언론학박사
  • 승인 2021.09.16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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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사육사가 원숭이에게 도토리를 주며 말했다. “앞으로는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를 줄게” 그러자 원숭이들은 몹시 분개하며 난동을 부렸다. 그러자 사육사가 말을 바꾸어 “미안, 미안. 그러면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를 줄게” 그러자 원숭이들이 좋아했다.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나,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나 뭐가 다른가. 실제로 원숭이들이 받아 먹는 도토리 숫자는 7개로 매한가지다. 이는 당장의 눈앞에 나타나는 일에만 집착하는 어리석음을 비웃는 우화다.

‘와우각상’(蝸牛角上)이라는 말도 있다. 중국 위나라에 혜왕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제나라와 동맹을 맺었는데 어느 날 상대가 일방적으로 동맹을 파기하고 말았다. 화가 난 혜왕은 어떻게든 복수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중신들을 모아 대책을 논의했다. 그러자 지금 즉시 전쟁을 벌여야 한다는 자도 있었고 그들과 평화적으로 해결하자는 두 그룹으로 나뉘어졌다.

이때 대진인이라는 현인이 혜왕에게 물었다. “폐하, 달팽이라는 미물을 알고 계십니까?” “그거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소” “그 달팽이의 왼쪽 촉각에 촉이라는 나라가 있고 오른쪽 촉각에 만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이들이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이 싸움으로 수만 명의 사상자를 내고 15일 만에 겨우 전쟁을 멈출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가 어디 있소” “하오면, 이 이야기를 사실에 비유해 볼테니 제 말씀을 좀 들어 보십시오. 폐하께서는 이 우주의 상하사방(上下四方)에 끝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 끝은 없다고 생각하오” “하오면, 이 무한한 세상을 다스리는 자가 보기에 지상의 나라들은 하찮은 존재로 보일 것입니다” “음, 과연 그렇겠군” “그 수많은 나라 가운데 위나라가 있고 위나라 안에 도읍이 있으며 그 도읍 안에 폐하가 계십니다. 그렇다면 폐하와 만나라의 왕은 어떤 차이가 있겠습니까?” “별 차이가 없을 것 같구려” 헤왕은 대진인이 물러간 뒤에도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사실 끝없는 대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지극히 하찮은 일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장자는 하찮은 일에 얽매이지 말라며 ‘현실 초월’이라는 말을 썼다. 

어느 누군들 소소한 일에 신경을 쓰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모두가 큼직하고 그럴듯한 일에 신경을 쓰려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세상살이라는게 큰 일만 발생하는게 아니다. 어쩌면 지극히 작은 일을 해결해야만 큰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지극히 작은 것에 목숨을 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앞에서 말한대로 큰 일을 이루기 위해 사소한 일을 해결하려는게 아니라 사소한 일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리기에 하는 말이다.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이곳 옥천 역시 하루에도 크고 작은 일들이 수없이 발생하고 해결된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하루가 아니라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해결은커녕 마치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것처럼 영원히 풀리지 않는 미완의 숙제로 남기도 한다.

흔히들 하기 쉬운 말로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산다고 지지고 볶으며 살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말들을 즐겨 사용한다. 그렇다. 세상이 좋아져서 100년을 산다한들 사소한 일로 남의 눈에 눈물나게 한다면 그게 무슨 장수이겠는가. 아무리 비싼 보약을 먹고 천문학적인 재산을 가졌다한들 자신보다 못한 자의 주머니나 엇본다면 이 또한 불쌍하기 그지없는 인생이다.

민족 고유의 명절 추석이 며칠 남지 않았다. 가을장마가 지속돼 설령 보름달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더라도 아침에 도토리 3개를 먹든 저녁에 4개를 먹든, 나라의 지도자든 작은 조직의 지도자든  결국은 지극히 작은 어느 한 곳에 머무를 뿐 그 이상 그 이하의 삶도 없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

비록 가진게 적고 배운게 적어도 밝은 보름달마냥 마음만은 보름달보다 더 크고 넓은 그런 올 추석이 되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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