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블로그] 도끼 두고 만언소 꺼내 상소 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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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블로그] 도끼 두고 만언소 꺼내 상소 올려
  • 김동진기자
  • 승인 2021.11.25 1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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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군 군북면에 있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42호로 지정된 물에 비친 ‘이지당’ 모습
옥천군 군북면에 있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42호로 지정된 물에 비친 ‘이지당’ 모습

멀리서 옛집을 바라본다. 그 아래로 흐르는 개울은 얼마나 많은 유구한 역사를 날랐을까. 

가을 반영에 비친 옛집은 그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집 떠난 주인을 기다렸다.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를,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지만 그저 담담하다. 집 앞에 큰 나무, 그 굳은 절개는 주인을 닮았는지 수백 년을 견디며 하늘 향해 굳건히 뻗어 있다. 그가 다녔을 뒷길 따라 난 산책로도 변함없이 그대로다.

만추가 지났다. 맑은 냇가는 여전히 아름다운 반영을 보였다. 봄 인양 착각 속에 역사의 문을 열고 시간을 거슬러 본다.

한 사내가 백의에 도끼를 어깨에 메고 옥천을 나섰다. 그 사내가 도착한 곳은 한양 대궐. 그는 두툼한 봇짐을 풀더니 무언가를 꺼냈다, 만언소(萬言疏)와 도끼를 꺼내고는 상소를 올리고 머리를 풀어헤친 채 큰절을 한 후 도끼를 옆에 두고 가부좌를 틀었다. 결연한 의지로 목숨을 내어놓은 듯 큰소리로 전하를 외치며 상소를 읽어갔다. 사람들은 웅성웅성 그저 예삿일이 아니란 듯 모여서 구경했다.

얼마나 간절했으면 그 먼길을 걸어서 찾아와 읍소했을까. 하지만 그의 충절은 험난한 귀향살이, 아버지의 임종조차 옆에 하지 못한 불효에 목메어 눈물만 흘렸다.

큰 역사의 소용돌이에 그의 충절은 더욱 빛이 났다. 나라가 있고 백성이 있어야 임금이 있는 법, 그의 구국의 일념은 목숨을 초개같이 내 던지며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하얀 옷에 선혈을 뿌리며 동지들과 함께 산화한 것이다. 

수백 년이 흘렀다. 그의 집 앞에 흐르는 개울은 지금도 유유히 흐른다. 아무런 소식도 없는데 그의 집은 그저 물속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주인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이젠 뜨문뜨문 찾는 손님만이 주인 없는 집을 찾는다. 바위에는 이지당, 집에는 그가 쓴 각신서당이라는 현판 글씨가 그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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