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녹산과 당 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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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녹산과 당 현종
  • 김병학 편집국장, 언론학박사
  • 승인 2021.12.16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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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성의 권력 뒤에는 늘 여성이 존재했었다. 그러한 이유로는 남성이 겉으로는 강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러한 남성을 보듬어 주고 안아주는 모성애가 작용해 그러한 결과로 인한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그래서 줏대없고 나약한 남성을 빗대어 ‘여자 치마 폭에 싸여 있다’라고 하는건 아닐까. 자칫 잘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나락의 늪으로 빠져드는데도 말이다.

때는 755년 중국 당 왕조 시대, 역대 최고의 흥성을 누리던 당 왕조를 몰락의 길로 이끈 결정적인 하나의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절도사 안녹산이 양국충과의 권력 다툼에서 밀려나자 그를 토벌한다는 명분으로 15만 대군을 이끌고 낙양을 함락한 ‘안사의 난’이 그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사건 뒤에 한 여인이 있었다는 것. 즉 그의 의모(義母) 양귀비가 존재했던 것이다. 

페르시아와 돌궐의 혼혈이었던 안녹산은 일찍기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따라 돌궐 부락에서 생활했다. 그러다 716년 돌궐에서 당으로 망명한 그는 당나라가 소수 민족을 변방의 군사로 모집할 때 군에 들어가 우연한 계기를 통해 당 현종의 눈에 들어 평로절도사로 발탁되었다. 사실 특별한 가문도 아니고 뛰어난 재주도 없었던 그였다. 그런 그였음에도 불구하고 무한한 권력과 부귀 나아가 권세까지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안녹산의 타고난 아부와 충성(?)이 아니었을까.

오죽했으면 그의 뚱뚱한 배를 보고 현종이 “그대의 배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어있길래 그리도 큰가”라고 묻자 “오직 폐하에 대한 충성만 들어 있을 뿐입니다”라고 했을까.

문제는 당 현종의 눈에 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당 현종의 애첩인 양귀비 눈에부터 들어야했다. 그래서 안녹산은 양귀비를 포섭하여 궁중 출입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그녀의 수양아들이 되기로 결심한다. 이 때 양귀비 나이 스물 아홉에 안녹산의 나이 마흔. 아무리 수양아들이라지만 아내보다 나이가 많은 안녹산의 처지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었다. 그래도 양귀비가 황제의 아내이므로 큰 무리가 없다고 생각해 현종은 이를 허락하고 말았다. 그만큼 안녹산에 대한 현종의 마음은 굳건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천보 10년(天寶, 751년) 정월 1일, 안녹산의 생일에 당 현종과 양귀비가 각각 대량의 의복과 보물 등을 하사했다. 이러한 대우는 왕족이나 귀족들조차도 평생에 한 번 누릴까말까 하는 파격적인 대우였다. 그로부터 3일 후, 연회에 초대된 안녹산은 양귀비가 만들어 놓은 커다란 기저귀를 두르고 아기 흉내를 내며 궁녀들과 어울려 놀았다. 양귀비와 궁녀들이 즐거워하는 웃음소리가 후궁 밖으로 퍼져 나갔다. 그 소리를 들은 현종은 친히 왕림하여 그에게 또 다른 선물을 내렸다.

이처럼 양귀비와 안녹산이 특수한 관계를 만들어 간 덕분에 안녹산은 조정에서 점점 더 큰 대우를 받게 되었다. 현종은 안녹산에게 철권(鐵券 신하가 특권을 누릴 수 있음을 증명하는 증서)를 내린데 이어 그를 동평군왕으로까지 봉했다. 당 왕조에서 일개 장수를 왕으로 봉한 일은 전례없던 일이었다.

이렇듯 자신의 출세를 위한 일이라면 상황이 어떠하더라도 인사권자인 현종의 눈에 들어 결국 안녹산은 하북도채방처치사와 하동절도사 등 수많은 관직과 함께 10만 병력을 거느리게 되었다.

문제는 이 때부터 시작됐다. 지난 세월 모든 자존심과 체면을 내팽개치고 권력을 잡은 안녹산은 도당을 결성하고 본격적으로 세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상사라는 게 마음먹은대로만 되지 않는 게 자연의 순리, 언제부턴가 꿈틀거리기 시작한 안녹산 반란군 사이에서 내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안녹산은 자멸의 길을 걷고 있었다. 장안 함락 후 안녹산은 건강이 매우 악화되었고 성격까지 광폭해져 지배자로서의 위엄을 상실한 상태였다. 이에 예전부터 안녹산에게 반감을 품은 엄장이 태자 안경서(安慶緖)와 환관 이저아를 부추겨 안녹산 암살을 모의한다. 더욱이 태자 안경서는 안녹산이 애첩 소생의 아들을 사랑해 황제 자리가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결국 안녹산은 아들 안경서에 의해 잠자던 중 살해당하고 말았다.

비록 양귀비라는 여인을 의모로까지 삼아가며 자신의 출세를 향한 안녹산이었지만 결국은 자기가 낳은 자식한테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바로 이게 사람살이다. 아무리 힘들여 높은 자리에 오르고 막강한 권력을 쥐었다한들 흐르는 세월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요 시도때도없이 달려드는 정적들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쓸 수 없는게 인간이다. 천둥치고 바람만 조금 강하게 불어도 불안에 떨며 전전긍긍하는 인간이기에 훗날 비참한 죽음을 맞지 않으려거든 살아 생전 나눌 수 있는 건 나누고 도와줄 수 있으면 도우며 살아가는 게 바람직한 삶일 것이다.

더욱이 자신의 간까지 빼줄 것 같은 아부와 거짓 충성에 매료된 일부 지도자들을 보면 어쩌면 안녹산의 전철(前轍)을 밟지나 않을까도 심히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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