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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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50)
  • 조종영 작가
  • 승인 2022.01.06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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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 죽이나 정사(政事)로 죽이나 살인은 마찬가지

운천(雲天)의 기러기에 편지를 부칠 수 있다면
 
조헌이 유배지인 길주 영동역에 도착한 것은 6월 중순이었다. 그가 5월 8일에 옥천을 떠나 길주 영동역까지 38일을 걸어오며 각 고을을 지날 때 지방 수령과 여러 사람들이 술과 음식과 시(詩)로 위로하고 관찰사 권징(權徵)도 아들을 보내 위로해 주었다. 

당시 귀양지에서의 노역은 대부분 역관과 밀통하여 그 노복(奴僕)으로 하여금 대신하도록 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조헌은 힘든 노역을 몸소 감당하면서 “조정에서 노역을 시키는 것은 죄를 지은 사람을 다스리려고 하는 것인데 이를 모면할 것을 구한다면 이는 임금의 명을 어기는 것이다”며 스스로 노역을 마다하지 않았다. 

귀양 온 그의 심중은 어떠했을까. 그는 한마디 내색조차 하지 않았으나 길주에서 우인(友人)의 편지에 답을 하였는데 그 답장에 조헌의 숨은 뜻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고 유사(遺事)에 기록하고 있다.

“구구하고도 어리석은 내 계책은 온 나라 안의 모든 사물이 그가 차지할 바를 갖게 하고자 함이었는데 도리어 내 집안의 노인이나 어린 것들이 먼저 그 자리를 잃게 되었으니 20년간 성현의 글을 읽었으되 깊고 얕은 물을 건널 때에 적의(適宜)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여 이 화(禍)를 밟았으니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허물하리오. 김백윤(金伯胤)의 기묘당적(己卯黨籍)을 이제 초록해서 보내니 그 안의 사정과 물태(物態)가 소연(昭然)하고 역력하다. 첨현(僉賢)들이 일찍이 이 기록을 보았더라도 일일이 체험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찌 다시 진동(陳東)의 말을 하랴. 송옥(宋玉)이 굴삼려(屈三閭) 원(原)을 초혼(招魂)할 때도 감히 명쾌하게 말을 하지 않았으니 그 뜻이 초나라 조정에 있음을 알겠고 기묘문생(己卯門生)들이 중력(衆力)으로 시애(撕捱)했으나 그 능력이 대란(大亂)에 미치지 못하여 흐르는 화가 을사사화에 이르고 계속하여 금일에 이르러 우리의 사우(師友)들이 당했으니 어찌 차마 말할 수 있으랴”

조헌이 타고난 효자였다는 것은 이미 언급한 바가 있다. 그는 열 살 때 모친을 잃고 엄한 계모 아래서 자랐다. 일찍이 지방관으로 나가기를 스스로 요청한 것도 계모를 모시기 위해서였다. 계모에 대한 그의 효성은 죽을 때까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그는 영동역(嶺東驛) 기둥에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沃土移居趙汝式 옥천 땅에서 온 조여식
今方俟罪嶺東驛 이제 영동역에서 죄를 기다리네
山中有母不能養 산속에 계신 어머니 봉양할 수 없으니 
海上新魚難自享 바닷가 새로 나온 물고기 혼자 먹을 수 없구나
請見北來南去人 보시오 남과 북을 오가는 사람들
須陳晝思夜夢頻 낮 생각 밤 꿈이 빈번함을 꼭 전해 주기를
尺書倘寄雲天雁 만약 운천(雲天)의 기러기에 편지를 부칠 수 있다면
白飯靑芻爲君辦 그대 위해 백반청추(흰 쌀밥과 푸른 채소)를 마련하리라 

그는 길주 유배 중에 30여 편의 시를 남겼는데 그중에 여러 인사들과 주고받은 것도 있고 길주 목사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6편이 들어있다. 영동역에서 귀양살이를 하는 중에 길주 목사에게 감사하며 보냄이란 제목의 시 중에는 자그마치 100구(句)가 되는 장시(長詩)도 있다. 그 내용에서 길주 목사와 매우 가까이 지낸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길주 목사 문몽헌(文夢軒 1535~1593)은 유광(有光)의 아들로 1570년 식년무과에 급제한 사람이었다. 후에 강원도 방어사를 지내고 임진왜란 원종공신에 책록된다. 천리 타향 변방의 자유롭지 못한 귀양 생활에서 두 분의 관계가 돈독했던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다음은 두 분의 관계를 드러내는 장시의 일부분이다.

幸出磨雲嶺 다행히도 마운령을 벗어나서
欣逢仗義人 기쁘게도 의리를 지키는 사람을 만났네
示心傾蓋久 마음을 보이며 술잔을 기울인지 오래인데
悶俗白頭新 시속(時俗)을 걱정하니 흰머리가 새롭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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