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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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51)
  • 조종영 작가
  • 승인 2022.01.13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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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 죽이나 정사(政事)로 죽이나 살인은 마찬가지

귀양지에서 쓰는 상소

조헌은 귀양지 길주에서 일본에 사절단을 보낼 것이란 소식을 들었다. 당시 조정은 동서 붕당(東西朋黨)으로 갈리어 당쟁이 극심한 시기였다. 왜국의 사신으로 온 귤강광(橘康光)이 조선에 통신사 파견을 요청했으나 바닷길이 험하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뜻을 이루지 못한 왜 사신은 조선침공의 뜻을 공공연히 밝히며 협박을 하고 돌아갔다. 이러한 무례에도 조정은 전혀 깨닫는 바가 없어 보였다. 

작년 12월에 왜국 사신 평의지(平義智)와 중 현소(玄蘇)가 또 입국했다. 이미 공주 제독으로 있을 때에 두 차례 상소를 올려서 일본에 통신사를 보내는 것은 의리를 모르는 야만국에 머리를 숙이는 굴욕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속셈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린 바가 있다. 그러나 선조는 대신들의 허물을 탄핵한 내용에 분노하여 아예 상소문을 불살라 버렸다. 조헌은 왜국 사신의 오만방자함이 점점 도를 넘고 있으며 그것이 조선침략의 전조임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의 애끓는 상소를 눈여겨보는 사람도 없었고 오히려 임금과 대신들의 노여움만 커갔다. 

결국 조정에서 일본의 통일을 축하하는 사절단을 파견하기로 결정하였고 유배지에서 이 소식을 들은 조헌은 즉시 의관을 정제하고 사절단을 보내서는 안 된다는 세 번째 청절왜사소(請絶倭使疏)를 준비한다. 

1589년(선조 22년) 12월 조헌의 나이 46세,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3년 전이다. 상소문은 왜국의 사신이 조선에 들어와 공공연히 거친 말로 우리의 국경에 침범할 것이라고 운운해도 이러한 간사함을 꺾는 이가 한 사람도 없는 한심한 조정에 대한 한탄으로부터 시작된다.

“신이 엎드려 듣건대 형(荊) 나라 사람이 세 차례나 월형(刖刑 발꿈치를 베는 형벌)을 받고도 후회하지 않은 것은 그 안고 있는 바가 옥(玉)이기 때문이며 장준(張俊)이 적소(謫所 귀양지)에서 열 번이나 상소하고도 그치지 아니함은 그의 품은 바가 충성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신이 전후의 사정을 진술하여 아뢴 바가 비록 어리석고 망령되오나 이목(耳目)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 가지로 통분(痛憤)할 일이 온데 요로(要路)에 있는 사람이 가리어 두고 혹시 성상께서 깨달을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멀리 듣건대 왜국의 사신이 와서 반년 동안이나 관사(館舍)에 유련(留漣)하면서 거친 말로 우리에게 통신(通信)을 요구한 바가 군사를 일으켜 가지고서 국경을 침범하겠다는 것이었는데도 온 조정이 두려워 떨면서 원호(元昊)의 간사함을 꺾는 이가 한 사람도 없으니 조선의 사기가 이와 같이 좌절되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하였습니다”

조헌은 전쟁의 승패가 군사력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우리나라는 자고로 도의가 있는 나라(道義之國)이다. 도의의 힘은 만갑(萬甲)보다 강하고 어진 자는 하늘이 돕는 법이며 우리나라는 천하에 상대가 없는 인의를 근본으로 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일본의 군사적 강대함에 위축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조헌의 사상은 인도(人道)와 평화정신이었다. 만약 저들이 예의를 갖춰 사절과 박물(薄物)을 보내온다면 우리는 공자의 가르침을 전해주고 문명 된 도(道)로써 그 야만 됨을 변화시켜야만 할 것이라고 하였다. 

“예부터 나라 승패의 형세는 군사의 강하고 약함만으로는 따질 수가 없습니다. 춘추시대에 열후(列侯) 중에서 초(楚) 나라가 제일 강하였는데도 제(諸) 나라 환공(桓公)이 관중(管仲)을 시켜서 의리를 잡아 말하니 소릉(召陵)에서 싸우지 않고 동맹하였으며 항우(項羽)는 싸움을 잘하여 천하의 무적이었음에도 한(漢) 나라 고조(高祖)가 동공(童公)의 말을 들어 명분 있는 출병을 하니 해하(垓下)에서 군졸을 잃고서는 비가(悲歌)를 부르고 스스로 목 찔러 죽었으니 대개 시역(弑逆)의 죄를 진 자는 하늘과 땅이 이를 용납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바람을 불게 하고 번개를 치게 하는 재능이 있다 하더라도 인도(人道)가 불순한 바이면 하늘도 또한 이를 돕지 않습니다. 따라서 도의(道義)의 기운이 만갑(萬甲)의 군사보다 강함을 알 수 있으며 인자무적(仁者無敵)은 맹자께서 밝게 가르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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