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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옥임 수필가
  • 승인 2022.01.20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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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잊고 살았는데 갑자기 그 친구가 생각났다. 항상 제일 친한 친구라고, 너만 있으면 부러울 것이 없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를 하던 친구다. 가게에서 일을 할 때에는 출근하기가 무섭게 제일 먼저 그 친구의 목소리를 들어야 마음이 안정되곤 했다. 슬플 때나 기쁠 때나 같이 웃고 울며 반세기를 동고동락했다. 

건강 때문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 집에 들어 앉으면서 서자취급을 했다. 그리곤 골방에다 쑤셔 박고 모른 척 한 지가 벌써 5년이나 되었다. 가끔은 그립고 생각이 날 때도 있었지만 텔레비전에 밀려 가족들 모두가 시끄럽다면서 그 친구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오늘은 식구들도 다 나가고 혼자 있으니 그 친구 생각이나 오랜만에 여기저기 찾아보니 붙박이장 한쪽 구석에서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쓰고 있다. 마치 원망이라도 하듯 나를 바라본다. 얼른 집어 들고 ‘미안해 그동안 모른 척해서 정말 미안하다’ 혼자 말로 중얼거린다. 헤어졌다 만난 가족처럼 반갑다. 그동안 삐져 말문이라도 닫았으면 어쩌나 하고 얼른 스위치를 꽂았다. 그 친구의 생동감 넘치는 목소리는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다. 나는 그동안 늙고 나태해져 고음이던 목소리가 저음이 된 할머니로 변했는데…

반세기 동안 그 친구는 여러 모양으로 나를 도와주었다. 내가 세상 살아가는데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고 미련하다고 지혜와 상식을 가르쳐 주고 사회와 경제 문화 등 다방면으로 나를 가르쳐준 선생님이기도 하다. 글을 쓰는 작가의 길도 그 친구가 다리 역할을 했다. 참으로 고마운 친구다.

어렸을 적, 라디오는 부잣집에서나 있을 뿐 아무 데서나 볼 수 없는 재산목록 1호이기도 했다. 내가 그 친구의 목소리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60여 년 전으로 기억된다. 

마루 기둥에 매달아 놓은 스피커라는 네모난 상자였다. 면사무소에서 마을에 전달할 사항이 있으면 스피커를 통해 방송했고 정규방송을 전달하는 시골 마을의 유일한 공중매체이기도 했다. 이른 새벽이면 농어촌 시간이라면서 농사를 짓는데 또는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데 유일한 정보센터 역할을 했다.

“어허 느덜 여태자나” 

아버지가 이른 아침 사방에 널려있는 전답을 한 바퀴 돌아 집에 돌아와 스피커를 틀면서 “어허 느덜 여태자나” 하는 아버지의 목소리와 함께 낭랑한 목소리로 하루를 산뜻하게 출발시킨다. 그리고 ‘김삿갓 북한방랑기’라는 프로가 멀리 논밭에까지 울려 퍼지면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고 점심때가 된 것을 짐작하곤 했다. 저녁이 되면 연속극이 너무 재미있어 잡음이 나는 스피커에 매달려 요리조리 방향을 맞춰가며 듣기도 했다. 스피커를 통해 꿈을 꾸고 꿈을 키우며 새 노래가 나오면 얼른 따라 적어가며 배우기도 했다. 그래서 그 시대에 유행했던 노래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항상 흥얼거리며 지금도 부르고 있다.

우리가 처음 라디오를 장만하게 된 것은 내가 스피커에 귀 기울이는 모습을 본 약혼자가 사다준 때문이다. 

귀한 것을 선물 받아 너무 기뻤지만 수줍어서 신랑감한테는 고맙다는 내색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기가 살아서 동네가 시끄러울 정도로 볼륨을 크게 올려 라디오가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도 했다. 친구들이 마냥 부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때가 언제 있었던가 싶게 아득하기만 하다.

오랜만에 라디오를 듣고 있자니 먼길 돌고 돌아온 아름다운 추억의 시간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쳐 지나간다. 오늘 라디오를 켜 놓은 것을 알아차리기라도 했는지 이 친구와 함께했던 그 정서는 아무 데서도 찾아볼 길이 없다. 라디오와 입을 맞추며 목이 터져라 노래를 따라 부르던 젊은 날, 그 시절이 한없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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