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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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마음
  • 김병학 편집국장, 언론학박사
  • 승인 2022.03.10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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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평택에서 옥천군 동이면 청마리 먹절로 삶의 터전을 옮긴 권진영 청년. 올해 서른 세 살인 권 씨는 친구 한 명과 동생 등 총 3명이 옥천으로 귀촌을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동안 다니던 직장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의 연속이었고 더욱이 언젠가는 그만 둬야 한다는 한시성 일자리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결심했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내가 해보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 하며 사는게 훗날 후회하지 않는 삶이 될 것이라는 사실에 친구와 동생 모두 찬성했다. 그래서 먹절로 짐을 옮겼다.

하지만 그러한 권 씨의 마음은 현실과 상당 부분 동떨어진 모습을 보였다. 물론, 마음먹은대로 쉽게 풀리지만은 않으리라 각오는 했다. 하지만 해도 너무한 사건이 발생했다. 살 집을 구할때까지만 해도 그런대로 잘 풀렸다. 그런데 다음 순서가 문제였다. 분명 길을 내준다는 조건을 달고 맹지를 샀는데 막상 길을 내달라는 요구를 하자 ‘내가 언제 그랬느냐, 인근 토지 소유자의 동의서를 받아오면 길을 내주겠다’고 딴 소리를 했다. 

억장이 무너졌다. 사람믿은 자신들만 바보가 되고 말았다. 그런 그녀들을 주위에서는 ‘바보’라느니 ‘세상 물정 모른다’느니  도움을 주기는커녕 비아냥 대기에 바빴다.

더욱이 난생 처음 남의 땅을 빌려 지은 농사가 잘될리 만무했다. 생각했던대로 모든 농작물을  산짐승들의 배만 불리고 말았다.

이러한 일련의 고통을 겪고 나자 옥천이 싫어졌다. 그래서 짐을 쌀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 역시 뜻대로 되지 않았다. 속아 산 땅을 내놓았으나 아무리 싸게 판다한들 길도 없는 맹지를 어느 누가 사겠는가. 이제는 오기로라도 버티기로 했다. 순전히 자신들과의 싸움에 들어간 것이다.

결국 이러한 아픔을 눈치챈 한 지역신문이 팔걷고 나섰다. 급기야 옥천군 수장인 김재종 군수와의 면담이 이뤄졌다. 많은 말들이 오고 갔다. 물어보고, 따지고 싶은 말들도 많았다. 하지만 면전에 대놓고 부정적인 말들만 뱉을 수는 없었다. 다행히 자신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준 김 군수가 그들을 안았다. 

“5만 옥천군민의 대표를 맡고 있는 내가 미안하다. 지난 세월 겪었던 일들을 생각하니 남의 일로 느껴지지 않는다. 문제는 지금부터 풀어나가면 되는 것이다. 군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해주겠다. 같이 노력해 보자”고 다독였다. 순간 마음에 고였던 응어리가 풀렸다. 물론 군수의 말이 얼마만큼이나 실현에 옮겨질런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하고 싶은 말을 했기에 실낱같은 희망의 불빛도 보였다.

권 씨 등은 말했다. “우리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김재종 군수님이 우리의 딱한 사정을 알고 마치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안아주고 헤아려 주니 얼마나 힘이난지 모르겠다”고. 김 군수 역시 “권 씨 등이 겪은 일들은 비록 사인 간에 발생한 일일망정 옥천이 좋아 옥천에서 꿈을 실현코자 들어온 엄연한 옥천군민인데 어떻게 모른체 할 수 있겠는가, 분명 그들도 나와는 촌수없는 부녀지간이나 마찬가지다”라고 했다. 진정 아버지와 딸의 관계가 느껴졌다. 김 군수의 따뜻한 인간애가 묻어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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