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우정기(尋牛亭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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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정기(尋牛亭記)
  • 김용현 법학박사, 시인
  • 승인 2022.03.17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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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욱 까욱 까마귀가 울고 있다. 까치들 등쌀에 기를 못 펴더니 전봇대 위에 있던 까치집을 없앤 뒤 까치들이 뜸해지자 까마귀들이 세상을 만났나 보다.

까마귀는 한국 전역에 사는 텃새로 평야·산지·농경지·하천 또는 시가지 등에서 살며 깊은 산의 침엽수나 상록수에 둥지를 튼다. 또 까마귀는 몸 전체가 흑색이지만 보라색 또는 청색의 광택이 나며 잡식성으로 동물 사체나 음식물 찌꺼기를 가릴 게 없이 먹지만 주로 곤충을 잡아먹는다.

우거(寓居 남의 집이나 타향에서 임시로 몸을 부쳐 삶. 또는그런 집)가 있는 비단가람 가에는 새들이 참 많다. 강가라서 물고기도 풍부하고 그곳 농민들이 추수할 때 낱알을 많이 흘려 새들에게는 천국과 같은 곳이다. 그래서 까치는 계속 개체 수를 늘려가더니 이곳을 지배하는 조류로 자리매김하였다.  

때로는 까치와 까마귀가 공중전을 벌인다. 정자에 앉아 조용히 사색에 잠겨 있노라면 까치란 놈이 요란스럽게 짖어 댄다. 눈을 떠 보면 여러 마리 까치들이 한 마리 까마귀를 공격하고 있다. 까치들이 떼로 달려들어 까마귀를 물고 쪼아대는데 여간 격렬하지가 않다.

이곳에는 까마귀가 한 쌍 사는데 까치들은 까마귀가 한 마리만 있는 틈을 타 싸움을 건다. 상대방이 약해졌을 때 공격하는 것이 마치 까치들도 손오병법을 아는 것 같다. 여럿이서 동시에 또는 순차적으로 공격해대면 덩치 큰 까마귀도 어쩌지 못하고 빠진 깃털을 팽개친 채 도망을 친다. 승리감에 도취된 양 까치들은 깍깍대며 하늘을 누빈다.

무엇이 진리인지 몰라 진리를 찾아보자는 뜻

우거 마당가에 전통양식의 정자를 짓고 심우정(尋牛亭)이라 이름 지었다. ‘심우’는 문자 그대로 소를 찾는다는 뜻인데 35년 넘게 법원관리관 등으로 근무하였고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을 뿐만 아니라 여러 해 동안 대학에서 강의를 했어도 무엇이 진리인지 아직도 모르겠으므로 이를 찾아보자는 뜻이었다.

사찰 벽에는 ‘심우도’(尋牛圖)라는 단청화가 있다. 이는 진리를 찾는 과정을 소에 빗대어 그린 것으로 참다운 진리를 찾는 것이 마치 소를 길들여 타고 오는 것처럼 어렵다는 것이리라.

우거는 금강변인 옥천군 청성면 합금리에 있다. 예로부터 이곳 강변에는 풀이 무성해 가축을 기르기가 좋았으므로 소를 기르는 목장이 위아래 두 곳에 있었는데 사람들은 마을 이름으로 ‘위쇠뜰’, ‘아래쇠뜰’이라 불렀단다.

마을 입구 장승 옆에 서 있는 유래비를 보면 합금리라 지은 것이 일본 강점기 때였다고 한다. 우리 글을 말살시키고 일본식으로 마을 이름을 바꾸면서 일본인 면서기가 소를 지칭하는 ‘쇠’를 무쇠로 오석(誤釋)해 쇠 ‘金’자와 위아래 마을을 합쳤다는 뜻으로 합금리라 했다고 한다.
우리 말에 쇠뿔, 쇠고기처럼 소(牛)를 일컫는 말 중에 ‘쇠’라는 말을 쓰는데 이왕에 한문화하려면 ‘합우리’(合牛里)라고 했어야 맞다. 참 무식한 일본인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이 같은 연유로 정자 이름에 소 ‘牛’자를 넣어 심우정이라 지었던 것이다. 

우거에는 늘 친구들이 놀러 온다. 벗 중에는 총을 잘 쏘는 친구가 있는데 그는 가끔 사냥한 꿩 몇 마리 또는 산토끼나 멧돼지고기를 들고 온다. 그 친구가 집 앞 전봇대 꼭대기에 있는 까치집을 보더니 ‘이런 것은 바로 연락해야 한다’며 한전에 신고한다. 전봇대에 감긴 양철판 위 전화번호로, 기호와 숫자를 불러주며 위치를 가르쳐 준 것이다. 까치집을 없앤 뒤 까치들은 기가 죽고 놀림을 당하던 까마귀가 기를 펴 날고 있다.

스트레스 팍팍받는 도시 벗어나 사시사철 꽃 보고 싶어

정자에는 박새들이 둥지를 틀었다. 기왓장 틈 사이로 들락거리는 것이 여간 귀엽지 않다. 또 강가 골짜기 중턱에는 학들이 무리를 지어 둥지를 틀고 여름을 난다. 학은 강변 자갈밭에 서서 물끄러미 강물을 들여다보다가 잽싸게 물고기를 잡는다. 물속에는 쏘가리, 송사리, 누치, 피라미, 미꾸라지, 다슬기 등 물 반, 고기 반이다.

이곳에 우거를 마련한 것은 스트레스 팍팍 받는 도시의 일상과 사람들의 틈을 벗어나 주말만이라도 텃밭을 일구며 젓대를 마음대로 불고 조각이나 하자는 뜻이었다. 그래서 마당에 사군자인 매화·춘란·황국·구갑죽(龜甲竹)을 심고 사시사철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는 것을 볼 수 있도록 온갖 기화이초(奇花異草)도 심었다.

꾀꼬리가 울다 보면 어느새 계절이 바뀐다. 여름 골짜기 수풀에서는 지난 봄 태어난 노루 새끼 울음소리가 암녹색 짙은 녹음 속을 구르고 밤이면 소쩍새 울음소리가 애간장을 녹인다. 도시에선 볼 수 없는 반딧불도 지천으로 이리 날고 저리 날며 여기저기서 여름을 먹고…

가을에는 잘 익은 단감이 빨간 마당 너머 물감을 푼 듯 오색단풍이 산수화를 그리고 겨울에는 동백꽃, 포인세티아 훔쳐보는 외로운 앞산 자락 앙상한 줄기 뒤로 백설이 쌓여 묵화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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