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사구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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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사구팽
  • 김병학 편집국장, 언론학박사
  • 승인 2022.03.17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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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할 때는 쓰고 필요가 없을 때는 과감히 버린다는 의미의 ‘토사구팽(兎死狗烹).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냥개가 필요하지만 일단 토끼를 잡고 나면 더 이상 사냥개가 필요없어 잡아 먹거나 버리는게 낫다는 사자성어다.

때는 중국 춘추시대, 월나라 왕 구천이 와신상담하고 재기하여 패자로 군림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은 단연 문종과 범려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문종은 월왕의 참모로써 뛰어난 활약상을 보여준 인물이다.

월왕 구천은 문종의 권고를 무시하고 군사를 일으켜 오나라를 공격했다가 참패하고 그만 포로가 되고 말았다. 이때 문종은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구천을 살려 내 가까스로 목숨만은 부지할 수 있었다. 그러한 구천은 3년 동안 오나라에 억류되어 있으면서 농사를 짓게 된다. 그 사이 문종은 월나라의 내정을 담당하고 생산력을 향상시켜 훗날 구천이 패자로 등극하기 위한 기반을 닦는데 전력을 다했다.

세월이 흘러 드디어 구천이 월나라로 돌아왔다. 이때 문종은 오나라를 멸할 7가지 계책을 내놓았다.

첫째, 오왕과 권신들에게 값진 보물을 주어 환심을 살 것, 둘째, 오나라의 양식과 각종 물자들을 사들여 국고를 텅비게 할 것, 셋째, 미녀를 바쳐 오왕을 미혹시킬 것, 넷째, 오왕에게 장인(匠人)들을 보내 왕궁 건설에 재력을 소모하게 할 것, 다섯째, 아첨 밖에 모르는 자들을 오왕의 모신으로 삼도록 할 것, 여섯째, 군신관계를 이간시켜 오왕이 충신들을 죽이도록 할 것, 그리고 일곱째, 이때 우리 월나라는 부지런히 재물을 축적하고 군사를 양성해 때가 되면 가차없이 오나라를 공격할 것.

이에 구천은 문종의 계책을 그대로 시행하여 마침내 오나라를 정복하고 부차로 하여금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했다.

구천이 패업을 이룩하자 모든 대신들은 궁중에 모여 잔치에 빠졌다. 그러나 당사자인 구천만은 그럴 수 없었다. 그러자 이를 지켜 본 범려가 탄식했다. ‘월왕은 대신들의 공로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게로구나. 장차 그들을 마음대로 부리지 못할까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는 게야’

결국 범려는 월왕의 거듭된 만류에도 불구하고 벼슬살이를 접고 은거에 들어갔다. 떠나기 전 범려는 문종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남겼다. 

“경께서는 오왕이 죽기 전에 남긴 ‘토끼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잡아 먹는다’라는 말을 기억하는지요. 이제 적국이 망했으니 모신들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오. 그대도 왕의 곁을 떠나지 않으면 장차 화를 면치 못할 것이오”

실제로 구천은 지난 세월 자신과 생사고락을 함께 한 신하들과 거리를 두었고 아예 만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이에 수많은 대신들은 관직을 내놓고 은퇴했다. 더불어 문종 역시 범려의 말이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는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구천이 문종의 병문안을 갔다. “지사(志士)는 육신의 죽음은 두려워하지 않지만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지 못하는 것은 견디지 못한다고 들었다. 그대는 오래 전 내게 일곱가지 계책을 내놓았다. 나는 그 중에 세가지 만을 이용해 오나라를 멸하고 패자가 되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네가지는 어디에 쓸 것인가?”

이에 문종이 “신은 마땅히 쓸 곳을 알지 못하나이다” “그렇다면 부디 명부(冥府 죽은 뒤에 심판을 받는 곳)에 있는 오나라 사람들에게 쓰도록 하라”

그리고는 그 자리에 검 한 자루를 놓고 나왔다. 거기에는 속루(屬鏤 옛날 오왕 부차가 오자서에게 내리며 자살을 명했던 칼)라 쓰여 있었다. 그제서야 문종은 하늘을 우러르며 탄식했다. “범려는 앞일을 꿰뚫어 보았으나 나는 아둔하여 화를 자초하였구나” 물론 문종은 그 검으로 자살했다.

바로 그거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는 법이다. 오늘의 적이 내일의 친구가 될 수 있으며 오늘의 친구가 내일은 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이 친구가 됐다고 해서 의미없는 충성은 금물이다.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있는 충성 없는 충성 다 바쳐본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그 사람은 ‘토사구팽’ 당하게 되어 있다. 그게 인생살이다. 

아첨하고 자리보전하기에 안간힘을 쓰기보다는 자신만의 분명하고도 확고한 삶의 철학을 지니고 살아가는게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권불십년(權不十年)이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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