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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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똥
  • 권예자 수필가
  • 승인 2022.06.16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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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커피가 가장 맛있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럴 때 내 대답은 한결같다. 

“안개 자욱한 날 옆 사람이 마시는 커피.” 

사실이 그렇다. 커피는 내가 마실 때도 좋지만 남은 마시는데 나는 못 마시는, 향기로 느끼는 커피처럼 욕심나는 것은 없다. 그것이 축축한 늦가을 아침이라면 더욱 그렇다. 

나는 커피 애호가는 못되지만 자주 마시는 편이다. 수필이나 시의 첫 행을 쓰거나 글이 완성되어 탈고하면서 마신다. 좋은 책의 첫 페이지를 넘기기 전에도 마시고 작가의 모습을 연상하면서도 마신다. 특별히 미각이 발달하거나 고급스럽지도 못해서 어떤 종류는 좋고 또 어느 것은 싫다는 구별도 없이 가까이 있는 커피를 즐긴다. 사람 대하는 일도 커피 마시듯 편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몇 년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코피 루왁(Kopi Luwak)이 인터넷을 장식한 적이 있었다. ‘Kopi’는 인도네시아어로 ‘커피’를, ‘Luwak’은 말레이 사향고양이를 뜻한다. 

이 커피가 유명해진 것은 영화 <버킷 리스트>에서 주인공 잭 니컬슨이 즐겨 마시는 커피로 여러 번 언급된 영향도 있다. “얼마나 맛있는 커피면 시한부 선고를 받은 병실에까지 마실 준비를 해갔을까?”하는 호기심이 수요심리를 자극했나 보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호텔이 한 잔에 4만 원에 팔기 시작하자 그보다 싼 고양이 똥 커피를 파는 곳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향고양이는 잡식동물이다. 인간보다 발달한 후각을 지닌 그들은 인간이나 기계로 구분할 수 없는 잘 익은 고품질의 커피 열매만 골라 먹는단다. 그런데 열매의 겉껍질과 내용물은 소화하는 반면 딱딱한 속 알갱이는 그냥 배설한다. 그 커피콩을 물에 잘 씻어 건조한 후 커피를 만들어 보니 그 맛과 향이 일품이더란다.


이렇게 뛰어난 향과 맛뿐 아니라 숲에서 야생으로 살아가는 르왁의 배설물은 채취도 힘들고 워낙 적은 양이다 보니 그 희소성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가 된 셈이다. 마셔본 이들의 평은 가지가지다. 어떤 이는 “입안 가득 퍼지는 꽉 찬 달곰함과 은은하게 유지되는 신선한 듯 고소한 향이 정말 최고”라고 표현했고, 또 어떤 이는 “뭐 별다를 것 없더라.” 하니 마셔보지 못한 나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코피 르왁의 높은 인기가 인간의 욕심에 불을 댕겼다. 인도네시아 주민들이 야생의 사향고양이를 잡아다 집단 사육하기 시작했다. 작은 공간에 그들을 가두고 커피 열매만 먹이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우리에 갇혀 들판을 뛰어다니지도 못하는 고양이로부터 채취한 커피가 과연 최고의 커피일까? 게다가 예멘의 원숭이커피, 베트남의 다람쥐커피 등 동물의 배설물을 이용한 여러 종류의 커피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가짜도 많다고 한다.

그래도 하찮게 여기는 배설물에서 음식물을 생산한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처음 고양이 똥을 잘 관찰하고 그것으로 커피를 만들어본 사람이 없었다면 이처럼 독특한 커피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동물의 배설물이 유용하게 쓰이는 것은 커피만이 아닌 것 같다. 코끼리 똥으로는 종이를 만든다. 하루에 50kg의 변을 보는 코끼리 똥에는 섬유소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섬유소 10kg이면, A4용지 660장의 종이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코끼리 똥으로 종이를 만드는 스리랑카의 ‘막시무스(MAXIMUS)사’는 ‘밀레니엄 코끼리 보호소’에서 코끼리 똥을 가져와 햇볕에 잘 말려서 24시간 동안 푹 삶아 살균한 다음 종이를 만든다. 이 과정에서 불쾌한 냄새는 모두 사라지고 섬유소만 그대로 남게 되어 오히려 풀 냄새와 같은 좋은 향이 나기도 한단다. 나무를 자르지도 않고 화학물질도 넣지 않는다니 이만한 친환경 제품도 없을 것이다.  

『똥으로 종이를 만드는 코끼리 아저씨』라는 동화책은 코끼리 똥 종이로 제작되었다. 서로 살기 위해서 다투던 코끼리와 인간이 어떻게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살게 되었는지 그 과정이 코끼리 똥 종이 제작과정과 함께 동화로 엮여 있다. 작가는 투시타 라나싱헤(Thusitha Ranasinghe) 막시무스사의 대표다. 코끼리 똥으로 만든 제품의 수익금은 일자리를 만들고 코끼리보호소 운영비로 쓰인다. 

편견없이 종이를 보면 좀 투박하지만 은은한 빛깔과 자연이 만든 문양이 오히려 고급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래전부터 우분지(牛糞紙 소똥종이)를 만들어 쓰기도 했고 지금도 마분지(馬糞紙 말똥종이)를 쓰고 있다. 

나연이는 첫돌이 지나자 두 살 터울의 오빠와 함께 대전에 내려와 우리와 살다가 다섯 살 봄에 서울로 올라갔다. 그 애는 변기에 앉아 변을 보고 나면 그걸 열심히 들여다보면서 “참 예쁘다. 예쁜 애야 안녕! 잘 가”하며 인사를 하였다. 그 모습은 귀여웠지만 나는 질색하며 빨리 물을 내리라고 재촉하곤 했었다. 

하지만, 그런 편견없는 마음과 자세한 관찰이 코피 르왁이나 코끼리 똥 종이를 생산해 내는 근원이 아닌가 싶다. 결국 우리의 풍요로움은 누군가의 관심과 실험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의 노고에 감사하면서 나는 천천히 카푸치노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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