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를 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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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를 캐며
  • 손수자 수필가
  • 승인 2022.06.23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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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감자 캐는 날. 몸뻬를 입고 장화 신은 차림에 차도르가 달린 모자까지 쓰니 작업 준비 완료다. 누가 보아도 도시에서 살다가 온 새내기 농사꾼이라고 여기지 않을 듯싶다. 흙 속에서 영근 감자와 얼굴을 마주할 기대로 텃밭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손에 쥔 호미도 덩실거린다.

호미로 조심스레 흙을 헤집었다. 호미질할 때마다 동글동글한 감자가 드러난다. 감자에 묻은 흙을 면장갑 낀 손으로 살살 닦아내니 뽀얀 살갗이 풋풋하다. 아직 어미의 탯줄에 매달려 있는 아기 감자가 앙증스럽다. 늦둥이를 캘까 말까 하다가 흙 이불을 덮어 주고 토닥거린다. 

종종 호미에 찍힌 감자가 나온다. 세상 빛 보기도 전에 상처부터 받은 감자에 미안하다. 능숙한 농부를 만났더라면 이런 불상사는 면하지 않았을까. 

호미에 찍히는 것이 감자 뿐이면 다행이련만 가끔 지렁이도 희생된다. 지지리도 운이 나쁜 녀석은 두 동강 난 몸으로 괴로워한다. 그 고통이 얼마나 클까. 진저리를 치며 얼른 흙을 덮어 주는 내 죄책감이 지렁이의 괴로움 못지 않으리라. 

감자를 캐서 감재(감자의 강릉 사투리)적을 부쳐 먹을 생각하니 지레 군침이 돈다. 감자를 강판에 갈아 베 보자기로 물기를 짜내어 따로 담아 놓으면 하얀 녹말이 가라앉는다. 물을 따라 버리고 그 녹말을 감자 간 것과 섞어 풋고추를 송송 썰고 애호박을 채 썰어 넣어 기름에 지져내면 쫀득쫀득한 고향의 그 맛, 강릉 전통의 감재적이다. 

어느 분이 감자전과 감재적을 구분해 놓은 글을 읽고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다. 감자를 믹서기로 갈아 프라이팬으로 부친 것은 감자전이고 강판에 갈아 무쇠 솥뚜껑에 지져낸 것이 강릉 감재적이라 했다. 요즘은 무쇠 솥뚜껑 대신 두툼한 프라이팬을 사용하는 여건이다.

감재적을 즐겨 먹는 나에 비해 남편은 맛만 보고 젓가락을 내려놓곤 했다. 충남 동면이 고향인 그는 어릴적 감자전을 먹지 못했다고 한다. 감자는 찌거나 반찬으로 해 먹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감재적을 아주 즐겨 먹는다. 

감재적 뿐만 아니라 싱싱한 생선은 비린내 난다고 입에 대지도 않던 그가 생선 매운탕, 조림은 물론 회도 즐긴다. 강릉이 고향인 아내 덕분에 남편 입맛이 변했고 나 또한 남편을 통해 소금에 절인 생선만 먹을 수 밖에 없었던 내륙지방 사람의 식성을 이해하게 되었다.

감자를 다 캘 무렵, 두런두런 사나이들의 말소리가 들리더니 “야~, 감자 봐라” 라는 감탄사를 발한다. 그 말소리에 내 호미질이 신명이 난 듯 춤을 춘다. 

그런데 곧이어 들리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 “감자 한 상자를 2만 원 주고 사면 실컷 먹는데 뭘…” 라고 말을 받는다. 

힐끗 쳐다보니 중년쯤 되는 남자 셋이 지나간다. 이웃 펜션에 놀러 온 사람들인가 보다. 2만 원의 가치밖에 되지 않는 감자 한 상자를 하찮게 여기는 것인지, 아니면 땡볕에서 애쓰는 산골 여인이 안쓰러워서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으나 내가 땀 흘려 캐는 감자는 감히 금액에 견줄 바 아니다. 감자와 함께 갖가지 추억을 캐는 나를 저들이 어찌 알까. 호미질이 즐겁기만 한 데…. 

아버지가 흘리시던 땀과 사랑, 어머니의 손맛이 탱글탱글 영글었다. 화덕에 둘러앉아 감재적이 어서 익기를 바라며 군침 흘리던 동생들, 마당에 펴놓은 멍석에서 은하수를 바라보며 야식으로 먹던 따끈한 감자와 옥수수 그리고 감자 한 바가지와 꽁치 오징어 몇 마리를 맞바꾸던 어촌의 아주머니, 알록달록 줄무늬 내복값 대신 감자를 받아 갔던 방물장수 아주머니의 힘겨운 모습까지도….

다 캐낸 감자를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 펴 놓는다. 감자의 젖은 몸이 마르면 상자에 담아 정 깊은 이들에게 보내주어야지. 

감자를 캐며 내 사유의 뜰을 거닌 추억의 순간들도 함께 담아 보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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