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공부 좀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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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공부 좀 해라
  • 김병학 편집국장, 언론학박사
  • 승인 2022.06.23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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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동물이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배움’이 아닐까. 

물론 동물들도 어미에게서 생존에 관한 여러 가지를 배우기는 한다. 하지만 그것은 배움이라기보다는 살아남기 위한 본능에 가까울게다.

사람은 다르다. 일단은 동물과 달리 사고(思考)를 할 수 있다는 능력과 함께 그것을 바탕으로 인생이라고 하는 커다란 그림을 그려야만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즉, 동물과 달리 수명도 길 뿐더러 상대방보다 더 편하고 안정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목표가 숨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 많은 돈을 벌려 혈안이 되고 더 많은 공부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배움’이란 뭘까, 또 어떻게 하는 걸까. 방법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학교를 통한 ‘배움’이다. 이는 과학적이고 체계화된 지식을 쌓는데는 이보다 훌륭한 방법도 없다.(인류 역사 이래 아직까지는)

그러나 그러한 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는게 걸림돌이라면 걸림돌이다.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라 정상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이라면야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서 ‘배움’이란 나이가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목마름으로 와 닿고 단 한시도 응어리가 떠나질 않는다.

랍비인 히렐이 젊었던 시절, 그는 ‘토라’(율법)를 연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뜨거웠다. 그러나 가난이라는 굴레는 그에게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일단은 돈을 벌어 수업료라도 마련한 후에 학교에 다니자고. 

그때부터 히렐은 체력이 허락하는 데까지 죽어라 돈을 모았다. 이윽고 얼마간의 돈이 모이자 그는 그가 벌어 들인 돈 가운데 절반은 생활비에 보태고 나머지 절반을 들고 학교 문지기를 찾아갔다. 

“제가 가진 돈 전부를 드리겠으니 제발 학교에 와서 공부만 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통사정을 했다. 히렐의 말에 감동을 했는지 문지기는 허락을 해 주었고 드디어 학교에 가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그동안 벌어 놓은 돈이 떨어지자 이제는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문지기가 학교에 들어오지 못하도록만 하지 않는다면 배고픈 것 쯤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물러설 히렐이 아니었다. 비록 수업료를 내지 못해 교실 안에서는 공부를 할 수 없을지라도 교실 창문 문지방 밑에 누워 교실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면 얼마든지 공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교실 안의 모습도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그날은 마침 ‘새버드(sabbath 안식일)’ 전야였다. 모든 것이 얼어 붙은 차가운 겨울이었다. 아침이 되자 랍비들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학교에 나갔다. 그런데 뭔가 어두운 느낌이 들었다. 아뿔싸, 창밖에 사람이 누워 있는게 아닌가. 그 사람의 몸에는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밤새 꽁꽁 얼어붙은 히렐이었다. 히렐은 그 자리를 남에게 들키지 않고 차지하기 위해 밤새 그 자리에 누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 이후 사람들은 가난해서, 또는 시간이 없어서, 아니면 형편이 안되서 공부를 못하겠다고 하면 “당신은 히렐보다 더 가난한가” “당신은 히렐보다 더 상황이 어려운가”라고 물었다.

그렇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비록 유태인의 공부에 대한 열정을 나타낸 에피소드라 할지라도 이보다 더 교훈적이고 가슴 뭉클한 이야기도 드물 것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공부는 너무도 쉽다. 아니, 공부할 기회는 얼마든지 널려 있다. 마음만 먹으면 장학금을 받아가며 공짜로도 학교를 다닐 수가 있고 마음만 먹으면 투잡 쓰리잡을 하면서도 공부를 할 수가 있다. 다만, 공부를 하려는 의지가 결여돼 있고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미꾸라지처럼 빠져 나가려고만 하기에 공부를 못하는 것이다.

이제 6‧1지방선거도 끝나고 본격적인 지방의회가 개원을 앞두고 있다. 당선자들의 학력이 초등학교든 중학교든 아니면 고등학교든 대학교든 나름의 학력을 소지하고 있을게다. 하지만 그러한 학력이 지방의회에 얼마만큼이나 도움을 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명색이 특정 지역을 대표하는 선출직 인물인데 지역민은 물론 공무원들보다 더 무식해서야 되겠는가. 선출직에 뽑혔다고 해서 목에 깁스만 할게 아니라 진정으로 존경을 받으려면 재산 자랑이나 잔머리 굴리는데 신경을 쓸게 아니라 머릿 속에 지식을 채워야 한다. 제발 ‘빈 깡통이 더 요란하다’라는 말을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식이 결코 자랑이 아니기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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