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61)
상태바
‘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61)
  •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2.06.30 11: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고 싶었던 말을 그에게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내 말을 들은 친구 남편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놀랍네요. 저는 처음에 오라는 전화를 받고 틀림없이 만나면 돈 이야기를 하려는 것으로 당연히 생각했어요. 사실 지호 씨보다는 훨씬 소액을 빌려준 친구들이 나한테 떼로 몰려와 난동을 부리며 내가 사는 집문서를 내어놓으라는 거예요. 나는 그들에게 내가 집문서를 준다면 가장 큰 피해 본 사람한테 넘겨야지 왜 1/10도 안 되는 소액 피해자에게 주겠냐고 못 준다고 했더니 그간 몇 번씩이나 그 친구들이 집으로 찾아와 나를 괴롭히더군요. 그래서 오늘 나는 당연히 돈 얘기가 나올 것을 각오하고 왔는데 돈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우리 부부 걱정을 이렇게 해주시니 정말 무어라고 고마움을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사실은 이혼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지호 씨 이야기를 듣고 나니 제가 잘못 생각한 부분도 있구나 싶네요. 우리 부부 문제를 본인보다도 그렇게 진심으로 생각해 주셔서 정말 고맙고 저도 혜숙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돌아갔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나고 미국에서 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 혜숙이와 혜숙이 남편이 보낸 편지였다. 가슴이 두근거림을 누르고 빠르게 읽어 갔다. 혜숙이 남편이 나를 만나고 간 후 미국 수속을 시작했고 신림동 집을 팔아서 항공권, 미국에서 둘이 살 집 보증금, 우선 먹고 살 정도의 생활비 등을 제외하고 아주 소액이지만, 통장과 도장을 동생한테 맡겨 놓았으니 찾아 쓰라며 동생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나는 친구와 남편이 다시 합쳐서 예전의 부부로 돌아갔다는 소식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편지에는 보내준 한약을 달여 먹고 지금은 건강해졌다는 다행스러운 소식도 있었다. 

‘그래, 혜숙아. 행복하게 잘 살아. 넌 그럴만한 자격이 있어. 남한테 해로운 말, 나쁜 짓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이 살아왔던 누구보다 깨끗하고 맑은 마음을 가졌던 친구니까. 어디 가서든 행복하게 잘 살아줘. 그것만으로 나에게 진 빚은 다 갚는 거야.’

편지를 가슴에 꼬옥 안았다. 그 후에 혜숙이는 아들 필립을 낳고 남편과 생선가게를 하며 잘 지낸다는 소식과 함께 필립의 돌 사진도 보내 주었다. 지금은 소식이 끊어진 혜숙이가 이 글을 읽고 혹시 연락이라도 올까?

복덕방 귀부인의 딱한 사연에 
그만 첫 아파트 계약금을…

9남매의 맏며느리로 결혼하여 3년간 시댁에서 13식구와 함께 살다 시어머님께서 “이제 3년 살았으니 너도 분가해서 둘이 재미 있게 살아봐라.” 하시는 말씀에 어쩔 수 없이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분가했다. 1975년 크리스마스에 이사했는데 강남구 삼성동 해청아파트였다. 그런데 5층짜리 아파트의 5층 집에서 어린 아기를 데리고 걸어 올라다니기가 불편해서 2차 분양하는 같은 아파트 좀 더 낮은 층으로 옮길 계획으로 복덕방에 내놓았다. 

며칠 후 저녁 9시 반이 된 늦은 밤에 복덕방에서 임자가 있으니 빨리 계약하러 나오라는 전화가 왔다. 부리나케 준비하고 상가에 있는 그 복덕방 문을 열고 들어가니 웬 귀부인 같은 아주머니가 나를 맞으며 아파트 매매서류를 준비하고 매수자를 소개했다. 그 당시 아파트는 평당 30 만 원이었다. 해청아파트는 강남구청 뒤에 있는 아파트로 강남에서 최초로 지은 민간 아파트였다. 아파트가 처음이라 그때 분양한 아파트 평수가 28평형이었는데 우리 집에 와 보면 40평이냐고 물을 정도로 아파트에 대한 개념이 없는 초창기 시절이었다. 나는 주는 대로 계약금 60만 원을 받았고 매수자가 나가고 복덕방 아주머니와 둘만 남았다. 

몹시 궁금했다. 왜 이런 늦은 시간에 귀부인 같은 여자가 복덕방에 혼자 앉아 있는지가 몹시 이상했다. 나는 그녀에게 “아주머니는 귀부인 같아 보이는데 어째서 이런 늦은 밤에 복덕방을 지키고 있으세요?”라 고 물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깜짝 놀라 내가 실수했나 하고 당황해서 “미안해요. 괜한 말을 했나 봐요.” 했다. 그러자 손을 저으며 “사실은 저의 남편이 사업을 해서 그간 남부럽지 않게 살았지요. 그런데 갑자기 남편 사업이 부도가 나서 빚더미에 앉게 되었어요. 어쩔 수 없이 남편이 진 빚의 이자라도 내주려고 제가 이렇게 복덕방에서 일하고 있는데, 한 달에 받는 35,000원 월급으로는 달러 빚 이자도 다 못 내는 지경이지요. 정말 누가 달러변으로 쓴 돈만이라도 갚아준다면 몸이라도 팔고 싶은 심정이에요.” 

그 순간 아주머니가 너무나도 딱했다. 무엇보다 그녀의 마지막 말이 내게는 큰 충격이었다. 아니 같은 여자로서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얼마나 돈이 필요하면 저 여자는 돈 때문에 자기 몸을 팔고 싶다고까지 할까? 달러 이자로 내는 돈이 얼마냐고 물었더니 50만 원이라고 했다. 50만 원을 누가 5부 이자만 받고 빌려주면 우선 숨통이 트일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엔 증권회사 환매체에 맡겨도 연 36% 주던 시절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내가 조금 전에 받은 60만 원이 있으니 빌려주고 싶은데, 오늘 내가 처음 본 아주머니를 뭘 믿고 돈을 빌려주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깜짝 놀란 그녀는 “아니 지금 받으신 집 계약금을 어떻게 나한테 주신단 말에요?” 하더니 자기 언니가 이 상가 끝에 있는 H 슈퍼를 운영한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믿기지 않았다. 어떻게 언니가 슈퍼까지 할 만큼 경제 사정이 괜찮은데, 동생이 망했는데 50만 원 정도도 도와주지를 않아 동생 입에서 듣기조차 거북하고 민망한 말이 나오도록 놔둘 수 있나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정말 언니가 슈퍼를 운 영하는지 확인하고자 같이 가보자고 했다. 그녀는 나를 데리고 H 슈퍼로 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