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여름을 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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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여름을 울다
  • 권예자 수필가
  • 승인 2022.07.21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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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가 운다. 여름이면 숙명처럼 운다. 아니 숙명적으로 운다. 태풍이 한차례 지나자 매미의 울음소리가 메마르게 높아졌다.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매미는 유충에서 성충이 되기까지 땅속에서 5~10년을 살다가 성충인 매미가 된 후로는 보통 일주일, 오래 사는 종자라도 보름 정도를 산다고 한다. 그 기간에 연인을 만나 사랑하고 종족 보존의 의무도 다하고 떠나야 하니 얼마나 다급하겠는가. 그래서 구애하는 수놈은 암놈이 알아듣고 자신에게 응해 줄 때까지 목이 터져라 우는 모양이다.

매미 수컷은 배 아래쪽에 특수한 발성기관을 가지고 있어 소리를 내는데 체온이 높아야 소리를 낸단다. 온도와 조도(照度), 습도가 적당하여야 하므로 구름이 짙게 끼고 비가 오면 잘 울지 않는다. 또 종류에 따라 아침나절에 우는 매미가 있는가 하면 저녁에 우는 것도 있다. 

울음소리도 발성기관의 구조와 처한 상황에 의해 다르다. 일기 변화에 따라 다르고 다른 수컷들과 집단을 이루기 위한 집합 음이 다르다. 교미하기 전에 내는 짝짓기 음, 천적인 거미, 사마귀, 말벌 등 다른 동물에 붙잡히거나 어려움에 부닥칠 때 내는 소리가 다르단다. 근접해서 울고 있는 동종 수컷을 방해하기 위한 소리도 보고되었다 한다.

매미는 식물에 피해를 많이 주는 곤충이다. 유충은 나무뿌리에서 수액을 빨아먹고 성충은 햇가지 속에 알을 낳아 나무를 말라 죽게 한다. 그런데도 별로 미움을 받지 않는 것은 저 절박한 울음소리 탓이 아닐까 싶다. 

옛사람들은 매미를 빛과 어둠의 영이라 여겼다. 중국에서는 부활, 불사(不死), 영원한 젊음, 행복, 색욕과 악덕의 억제로 보았으며, 장례 때 입 안에 넣는 옥 매미는 불사를 보증한다고 여겼다. 그리스에서도 불사를 뜻하며 매미는 피를 흘리지 않고 이슬만 먹고 산다 생각하여 아폴론 신에게 제물로 바쳤다.

매미의 전설은 슬프다. 그리스 신화의 에오스는 태양이 뜰 때 장밋빛 손가락으로 어둠의 장막을 걷어내는 새벽의 여신이다. 그녀는 준수한 외모를 지닌 트로이아의 청년 티토노스를 사랑하여 납치했다. 그리고 그를 영원히 자신의 곁에 두기 위하여 제우스를 찾아가 그가 영원히 죽지 않는 신이 되게 해달라고 청했다. 그녀는 허락을 받았지만 기쁨에 들떠 영원한 젊음을 유지할 수 있게 해달라는 부탁을 잊고 말았다. 

둘은 행복했지만 세월이 갈수록 티토노스는 늙고 쇠약해져 갔다. 늘 젊기만 한 아름다운 여신 에오스로서는 티토노스가 점점 귀찮게 여겨졌다. 그러나 그를 차마 내치지 못하고 자신의 궁궐에 가두었다. 티토노스는 그곳에서 비참하게 살았다. 죽지도 못하는 그는 너무 늙은 나머지 점점 쪼그라져 인간의 모습을 잃고 매미처럼 말라비틀어진 채, 버들 바구니에 담겨 에오스를 찾으며 울고 또 울었다. 그것을 가엾게 여긴 에오스는 그를 매미로 만들었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도 있다. 시빌레는 아폴론 신전에서 신탁을 전하는 어여쁜 사제였다. 무슨 소원이든 한 가지를 들어주겠다는 아폴론의 말에 영원한 삶을 요구했다. 그러나 젊음을 함께 구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아폴론은 만일 그녀가 처녀성을 자신에게 준다면 변치 않는 젊음을 주겠다고 제안했으나 자신을 너무 사랑한 시빌레는 그것을 거절했다. 그녀는 늙어갈수록 쭈그러들어 마침내 매미와 비슷해져서 아폴론 신전 안에 걸린 새장에서 새처럼 달려있게 되었다. 울 기력도 없이 삶에 지칠 대로 지친 그녀는 신전에 찾아온 아이들이 “시빌레, 무엇을 원하나요?”라고 물으면 “죽고 싶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오늘은 매미가 더 억척스럽게 운다. 말복이 가까우니 그도 다급해진 모양인지 밤인데도 베란다 방충망에 매달려 찌르듯 운다. 저렇게 울고 또 우는 수매미는 아무래도 티토노스의 슬픔을 몸속에 품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시빌레로 대변되는 암매미는 울지도 못하니까. 이래서 수다스러운 아내와 사는 남자들은 매미를 좋아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 모양이다.

신화를 읽다 보면 그들의 세상은 불사(不死)와 불로(不老)를 빼면 인간 세상과 흡사하다. 사랑, 용기, 패륜, 질투, 믿음, 배반, 음모, 허욕, 복수에 이르기까지. 신화 또한 인간이 만들었으니 어찌 안 그렇겠는가. 이렇게 선대들은 신화를 통하여 인간을 일깨워 왔다. 

지나친 허욕이 비극의 시발점이 된다는 것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인간인 티토노스나 시빌레가 영원한 삶을 얻었다는 것 자체가 원초적인 비극을 잉태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도 우리는 유전인자를 변형해서라도 더 오래, 더 젊게 살기를 바란다. 이러다 언젠가는 시빌레처럼 “죽고 싶어”라고 말하는 세상이 올까 두렵다. 

바짝 마른 몸매에 눈만 커다란 매미가 베란다 너머에서 나를 들여다보며 운다. 왜 그런지 몸에 소름이 쫙 돋는다. 나는 또 얼마나 많은 허욕을 부리며 살아왔고 살아가는 중인지…. 매미 울음소리를 들으며 자신이 한심스러운 후끈 오싹한 여름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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