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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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65)
  •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2.07.28 1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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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게 이런 설명을 했더니 물을 것도 없이 무조건 가장 사람들 발길이 드물고 개발이 절대로 되지 않을 곳을 사서 아버지를 모셔야 제대로 공기 좋은 곳에서 마음 편하게 휴양할 수 있다며 유구로 결정했다. 부동산에서는 유구는 보기 드문 깊은 시골이라 향후 땅값도 오르지 않고 팔기도 힘들 것이니 당연히 같은 값이면 수년간 휴양도 하실 수 있고 그러다가 그 후에 개발이 되면 큰돈이 될 수 있는 수도권 시흥 땅을 사지 그러냐면서 강력하게 추천했다. 그러나 그런 부동산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거꾸로 개발이 절대로 안 되는 조용한 시골에서 아버님이 휴양하시도록 하자는 정반대의 발상이었다. 

나는 남편 말대로 유구 땅을 사기로 하고 토요일 오전 근무를 마치고 오후에 서울에서 출발하여 유구로 갔다. 과연 듣던 대로 유구 가는 길은 포장도 되지 않은 비포장도로로 돌멩이들이 그대로 깔려있어 가고 오는데만도 많은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차가 계속 덜컹거려 너무 힘들었다. 도착해서 둘러보니 산으로 둘러쳐진 기와집 한 채에 논과 밭 그리고 조그만 개울까지 있어 아버님께서 휴양하시기에 제법 좋은 조건이었다. 그 길로 돌아와 계약하고 그 후 아버님은 유구로 가셔서 관리인과 함께 농사도 지으면서 소일하셨다. 거의 15년을 유구에서 지내시면서 건강도 좋아지셨다. 

그런데 이런 우리 부부의 순수한 효심이 나중에 큰 장애가 되어 어려움을 겪게 될 줄은 몰랐다. 남편이 한국수자원공사 사장으로 선임되어 공직자 재산 등록을 할 때 이 유구 땅이 문제가 된 것이다. 유구 시골의 논과 밭은 현지인이 아니면 살 수가 없게 법으로 규정되어 있어서 남편 주소를 잠시 유구로 옮겨 땅을 구매한 것이 문제였다. 자세한 소명서를 제출한 후에도 이 땅 문제가 한참 해결이 안 되어 시끄러웠으나 유구 현지에 내려가서 아버님이 사시는 것을 확인하고 또 주민들에게 확인을 거친 후에야 투기 목적이 아님이 판명되어 취임할 수 있었다. 억울하게 그런 곤욕을 치른 후 아버님께서 서울로 올라오시고 두통거 리가 된 유구 땅을 팔기 위해 부동산에 내놓았으나 팔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 유구 땅으로 인해 이번엔 내가 다시 곤욕을 치러야 했다. 내가 NMC 간호대학 학장으로 발령이 났을 때도 안기부에서 모든 조사를 거쳤는데 재산등록에서 또 남편 명의의 유구 땅이 똑같은 문제로 걸려 해명하느라 온통 난리를 겪어야 했다. 부동산 아저씨의 말이 맞았다. 유구 땅은 땅값도 오르지 않고 내놓아도 팔리지도 않을 것이라 했는데 애물단지가 된 땅은 2019년 현재까지도 팔리지 않고 있어 그 동네 사람들이 무료로 땅을 쓰고 있다. 그 땅을 소개했던 부동산에서는 그때 같은 값이었던 시흥 땅은 10년 정도 지나 상업지구로 지정이 되어 땅값이 수 십 배가 올랐다며 그때 자기 말을 들었어야 했다고 한마디 했다. 

땅을 산 지 거의 40년이 지났어도 팔리지도 않는 땅을 무조건 택하라고 하는 남편이나 그 말에 순종하고 가서 산 나나 똑같이 이재(理財)와는 거리가 먼 세상 답답한 바보들임이 틀림없다. 최근 들어 많은 장관 후보자들의 청문회를 보며 장관 자리를 할 만한 공직자가 겁 없이 축재를 위한 부동산 투자를 한 인사들을 보며 세상 사람들은 참 똑똑하게들 사는구나 하는 생각으로 쓴웃음을 짓게 된다.

우선 애들 데리고 지낼만한 방 한 칸이라도 구해봐요

NMC 간호대학은 여느 대학과는 다르게 교수와 교직원들이 가족처럼 지냈다. 대부분 직원이 성실하고 협조적이며 내 일 네 일을 가리지 않고 서로 도왔다. 내 방에서 나를 돕고 있는 여직원 S는 유난히 성실하고 참한 성격이었고 일 처리도 꼼꼼해서 교직원 사이에 신뢰받는 직원이었다. S 씨가 결혼한 후에도 미대를 나온 남편이 직장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지내는 것에 모든 교직원이 안타까워하던 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S 씨가 내 방에 들어와서 긴히 할 얘기가 있다면서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직장 없는 남편을 위해 제가 오랫동안 고민하던 끝에 합판대리점을 권유하는 분이 있어서 대리점을 차려주면 남편이 할 일이 생겨 남편 일이 해결될 것 같아서요. 그러면 남편 직장 걱정도 안 하고 돈도 벌게 되어 금전적으로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저도 애가 둘이다 보니 저 혼자 벌이로는 힘에 부치거든요. 그런데 그 대리점을 내자니 돈이 많이 부족해서 염치없이 교수님께 말씀드리는 것이니 저를 좀 도와주세요.” 

지금까지 남에게 그런 아쉬운 소리 하는 것을 본 일이 없는 S 씨가 하기 어려운 말을 하는구나, 생각했다. 직장이 없는 남편을 위해 열심히 무엇이라도 챙겨주는 모습이 갸륵하고 기특한 생각도 들었다. 그런 그에게 나는 차마 안 된다고 할 수 없어서 알았다고 답했다. 며칠 후 나는 돈을 건네주면서 대리점이 잘 되어서 남편 일도 해결되고 수입도 생겨 가계에 보탬이 되면 좋겠다고 덕담을 했다.

그 후 몇 달이 지났다. 교수 한 분과 직원이 내 방 밖에서 S 씨가 계획했던 대리점 건이 중간 소개인이 사기를 쳐서 다 무산되어 버리고 자기들 돈 빌려준 것만 못 받게 되었다며 소란스러웠다. 나는 S 씨를 불러 그게 무슨 소리냐고 자세히 물었더니 믿었던 중간 소개인이 대리점 내준다고 한 돈을 다 갖고 튀어버려 너무 충격을 받아 어떻게 수습할지 대책이 없다고 했다. 집까지 은행 대출받은 건으로 경매로 날아가게 되었다고 했다. 또 우리 학교 교직원 몇 명과 병원 직원들에게도 소액씩 빌려서 넣은 돈도 다 날려버렸다고 울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우선 사표를 내고 퇴직금을 받아서 일부라도 빚을 갚아야 할 것 같다며 사직하겠다고 했다. 그동안 학교 안팎으로 성실한 사람으로 믿음을 주고 살아온 S는 남편 일을 해결해 보려는 자기를 믿고 의심없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빌려준 가까운 사람들에게 진 빚 때문에 무엇보다 괴로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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