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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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타는 사람들
  • 손수자 수필가
  • 승인 2022.07.28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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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유난히 맑고 투명하다. 바다가 하늘을 그대로 닮았다. 쪽빛 맑은 바다에 흰 파도가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낸다. 바위에 부서지는 새하얀 물보라가 마음을 뒤흔든다. 이런 날에는 7번 국도를 마다하고 해안도로를 지나다닌다. 그곳에는 갈매기가 많은 영진리 해변, 작은 고깃배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남애항이 정겹고 서핑을 즐기는 모습을 지척에서 볼 수 있는 인구 해변도 있다. 다양한 풍경과 삶을 만나는 일은 또 다른 소득이다.

양양에는 파도를 타는 사람이 많다. 언제부터인가 양양의 인구 앞바다가 서핑의 명소가 되었다. 서핑은 우리나라에서는 파도타기라 불리는 운동 종목으로 보드를 이용하여 수면 위를 내달리며 각종 묘기를 부리는 해양 스포츠다. 

차에서 내려 백사장을 천천히 걸었다. 짭짜름한 바닷바람이 무척 상쾌하다. 마침 서핑용 보드를 든 젊은 부부와 초등학교 저학년쯤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즐겁게 이야기하며 내 옆을 지나간다. 그들에게 “바닷물이 차지 않느냐? 어린아이도 보드를 탈 수 있느냐?”라고 물었더니 그들은 서핑 슈트를 입으면 겨울에도 파도타기를 할 수 있다고 한다. 그 많은 운동 중에 하필 위험한 파도타기를 택했느냐고 다시 묻자 파도를 타지 않은 사람은 서핑의 맛과 멋을 알 수 없다면서 가볍게 인사를 하고 바다로 들어갔다.

그들이 파도 타는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아이를 보드에 태워 밀어주고 두 손으로 물을 헤쳐가게 한다. 아이 혼자서 보드에 오르내리도록 돕기도 한다. 아이가 파도를 탈 수 있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좋겠다. 아이와 엄마는 얕은 물가에서 보드 타기를 익히고 아버지는 파도타기에 능숙하다. 보드에 배를 깔고 유유히 헤엄치다가 파도가 일면 잽싸게 보드에서 일어나 파도를 타고 내닫는다. 파도가 솟구쳤다가 하얗게 부서질 때쯤에는 몸을 절묘하게 날려서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다. 보기에 아찔하다. 저리되도록 얼마나 많은 역경이 있었을까. 파도에 휘감기어 물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짠 바닷물도 여러 번 들이켰을 것이다. 그 힘든 과정을 헤쳐나왔기에 저렇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으리라. 

파도를 익숙하게 타는 젊은 여자도 있다. 서핑한 지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지만 보드 위에서 자유자재로 파도를 가르며 내닫는다. 그 모습이 아름다워 시선을 뗄 수 없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저러한 건강미가 아닐까. 그녀는 아마 험한 세파가 밀려와도 울며 허우적거리거나 쓰러지지 않고 멋진 인생을 살 것만 같다. 

어린이들이 세상의 파도를 헤쳐갈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앞으로 끊임없이 다가올 크고 작은 파도를 잘 감당할 수 있을지…. 부모의 품에서 안주하기보다 세상의 파도를 스스로 헤쳐 나가도록 자립심을 키우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지난 여름, 동호리 해수욕장에서 물놀이하던 여섯 살배기 손자가 눈에 선하다. 고사리 같은 손등에 모래를 수북이 쌓아 올리고 다른 손바닥으로 토닥토닥 두드리며 “두껍아 두껍아, 새집 줄게 헌 집 다오”라며 두꺼비집을 짓던 모습, 제 어미의 손을 잡고 파도와 쫓고 쫓기며 즐거워하던 모습, 제 아비가 손자를 번쩍 들어 깊은 물에 들어가자 겁먹던 표정, “진오야, 괜찮아 괜찮아!”를 외치는 제 어미의 목소리에 힘을 얻고 그제서야 제 아비가 머리 위로 높이 올렸다가 물에 풍덩 넣어도 겁내지 않고 즐겼다. 그래, 그렇게 이겨나가는 거야. 이제 세상의 파도타기도 터득하게 되겠지.

흔히들 인생을 파도타기에 비유한다. 인생은 파도타기 선수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류시화 시인이 “삶의 지혜는 파도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파도타기를 배우는 것이다. 우리는 파도를 멈추게 할 수 없다. 관계의 절정은 함께 힘을 합해 파도를 헤쳐가는 일이다”라고 쓴 글을 읽고 공감했다. 밀려오는 거대한 파도를 혼자 힘으로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손잡고 함께 헤쳐가노라면 모두 파도타기 선수가 되지 않을까. 

내 삶을 뒤돌아본다. 지나간 날에는 풍파를 겪는다고 여겨졌던 삶이 이제 와 보니 출렁이는 물결이었을 뿐이다. 내가 헤엄을 잘 치지 못하지만 세월의 파도타기는 곧잘 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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