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는 자식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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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는 자식과 같다
  • 김동진 기자
  • 승인 2022.08.11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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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농장’ 황명자‧김종환 대표 부부
“과일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남편은 가는 곳마다 과일나무를 심어 놓았다”고 말하는 황명자 대표.
“과일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남편은 가는 곳마다 과일나무를 심어 놓았다”고 말하는 황명자 대표.

가난은 물려주지 않겠다는 신념에 농사와 해외 노동, 구멍가게, 식당 일까지 하면서 억척같은 50년의 삶을 살아온 동갑내기 부부가 있다.

옥천군 군서면 상중리 ‘형제농장’ 황명자(여, 73) 대표와 김종환(73) 대표. 황 대표의 고향은 구일리, 김 대표의 고향은 상중리다.

황 대표는 “부모가 맺어준 인연인데 이 사람 버리고 딴 데로 가서 이보다 못한 집안을 만나면 어떻게 하나 싶어서 죽으나 사나 살아온 게 지금까지 50년을 살아왔다”고 했다.

황 대표의 옆에는 남편이 있을 땐 남편이 일을 해주고 남편이 자리를 비우면 아들들이 주말이면 찾아와 돕는 이젠 행복한 농부의 집이 되었다. 그 덕에 황 대표는 삼양초 19회 동창들과 1년에 한 두번씩 만나 옛날 살아온 얘기를 추억 삼는 여유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상중리에 새부자 탄생

담배 농사짓는 집안에 시집 와 끼니도 겨우 때우는 궁핍한 집안임을 알고 도망갈 궁리도 했다. 담배 농사 수확 철이면 시아버지 보증 빚에 찾아오는 채권자로 농사를 지음에도 여섯 명의 시동생들과 함께 생활함에 가난을 벗어날 길이 없었다. 

황 대표는 “남편이 이렇게 다 고생시키느니 내가 혼자 나가서 고생하면서 돈 벌어서 식구들 고생을 안 시키겠다며 서울로 가서는 토목을 배워서 사우디로 건설 노동자로 갔다. 사우디에서 1년 동안 돈 벌어서 시아버지 빚 다 갚고는 다시 사우디로 갔다. 그 후 2년 동안 집에 생활비만 조금 보내고 700만 원이라는 큰돈을 모아서 왔다. 그때가 1970년대이다. 그 돈으로 땅 4마지기를 샀다. 남편이 건축일을 해 해마다 땅을 사고 또 샀다.”며 “자식들 고생 안 시키고 가난은 안 물려주려고 배를 굶어 가며 허리띠를 졸라 매고 노력해서 땅을 장만하는 재미로 살았다”고 했다.

당시 ‘김종환’이는 부모 재산 손톱만치도 안 받고 노력을 해서 땅을 많이 장만해 상중리에 새 부자가 나왔다는 소문이 났다. 부부의 억척같은 인생은 한 푼이라도 허투루 쓰지 않고 땅을 사는데 집중하는 악착같은 삶을 살았기 떄문이다. 

황 대표는 “벼농사 1,600평과 1,600평의 비닐하우스, 335평의 대지에 대추나무까지 심어 놓았다. 남편이 한국에 있으면 나는 일 안 시키고 혼자 일을 도맡아 했다. 나는 따라가서 보조역할만 했다. 남편은 그렇게 자상하게 잘했다. 촌에서 농사지어봐야 돈벌이가 되나. 그래서 7년 간 직장도 다녔다”.

농사는 올케가 판매는 시누이가

농사는 잘 지어도 파는 게 고민이다. 다른 농부들과 달리 시누이와 올케 사이가 친자매처럼 좋아 농사와 판매가 서로 죽이 척척 맞아 황 대표가 농사짓고 대전의 시누이가 판매하는 형태로 수십 년을 이어오고 있다. 전문 장사꾼도 아닌 시누이의 마당발과 사람됨에 비록 초보적인 판매형태이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다. 그리고 벼농사로 지은 쌀은 농협에 전량 수매로 유통한다. 특히 지난해에 벼 수매등급으로 특등급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황 대표는 “시누이가 대전에 사는데 주민들한테 미리 주문을 받으면 그곳에 다 판매를 한다. 작물이 깨끗해 상품성이 좋아 잘 팔린다. 내가 재배부터 포장까지 깔끔하게 잘해서 가지고 간다. 들깨 같은 경우 기름이 많이 나온다고 또 주문을 받는다. 사실 8kg 사면 10kg으로 듬뿍 준다. 그만큼 많이 주니까 또 사게 된다. 우리 시누이가 착해서 대전에서 인심을 얻었다. 내가 피땀 흘려서 농사지었더라도 사서 먹는 사람은 그게 아니다. 조금이라도 더 주면은 좋아 한다”.

농사만큼 잘 키운 자식 농사

아내를 극진히 생각하는 남편은 밭이 있는 곳에는 아내가 좋아하는 딸기 등 과수를 곳곳에 심어 둔다. 어떤 날은 아내를 위해 딸기를 따다 씻어서 갖다 주는 배려도 잊지 않는다. 지금은 혼자 농사를 짓지만 남편이 트랙터 등 각종 장비들을 마련해 줬다. 그래서 벼농사는 기계로 하고 아들들이 아버지를 닮았는지 며느리까지 주말마다 내려와 일손을 돕는다.

황 대표는 “내 자식이나 작물이나 똑같다는 생각으로 농사를 짓는다. 자식 잘되고 자손들이 건강하게 잘 되길 바란다”고 했다.

남편에 대한 감동 사연

김 대표는 건설 일을 하면서도 성격이 좋아 남한테 해로운 소리 못하는 마음씨 좋은 사람임에 황 대표가 감동한 일화가 있었다.

황 대표는 “남편이 집 짓는 공사를 하다 보면 업자가 돈이 없어서 못 주는 경우가 생긴다. 한 번은 업자 집에 돈을 받으러 갔는데 업자는 도망갔는지 집에 없고 그 가족은 땟거리가 없어 굶고 있어 오히려 쌀을 사주고 왔던 일이 있었다. 남편은 하청을 맡아 인부들 품삯은 우리 돈으로 다 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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