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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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66)
  •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2.08.11 1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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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다가 어느 나쁜 사기꾼 하나 만나 일시에 집도 경매로 날아가고 빚더미에 앉아 사표를 쓰겠다는 그를 보자니 참으로 사는게 허망하게 느껴졌다. 나도 빌려준 돈으로 속이 쓰렸지만, 한순간에 전 인생이 무너진 그녀 앞에서 내 돈 이야기는 꺼낼 수도 없었다. 나는 내 방을 나가는 S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어떻게든 우리 직원이 당한 불행이니 그냥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우리 학교 교직원 중에서 돈을 빌려준 사람은 다 내 방으로 오라고 했다.

“S 씨에게 예상치 않게 닥친 불행으로 여기 있는 분들도 빌려준 돈을 받을 수 없어 다들 마음이 상했을 줄 안다. 나도 여러분들보다 훨씬 많은 돈을 빌려준 사람으로서 그건 나도 마찬가지 심정이다. 그러나 우리 아픔이 어찌 S의 불행과 비교가 되겠는가. 집도 경매로 넘어가서 요즘 교회 뒷방에서 애 둘과 함께 지내고 있다고 하고 또 며칠 전 들은 얘기로는 이혼까지 당했다고 한다. 시어머니가 빚쟁이들이 시집까지 쳐 들어올까 봐 아예 아들에게 이혼하라고 강요해서 엎친 데 덮친 격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집도 날아가고 남편을 위해 일자리를 마련하다가 사기당한 충격만으로도 견디기가 힘든 데다가 이혼까지 당하고 학교에는 사표까지 제출한 상태이다. 그러니 S에게 무조건 빚을 갚으라고 사지로 몰고 가면 그녀에게 남은 일은 죽음을 택하는 일밖에 없을 것 같다. 어떻게 우리가 S를 죽게 내버려 둘 수 있겠는가? S는 자신의 퇴직금으로 우리 빚을 갚겠다고 하더라. 그런데 알다시피 병원 직원들한테도 갚을 빚이 있다고 하니, 어떻게 퇴직금을 우리 빚 갚는 데만 몽땅 쓸 수 있겠냐. 그러면 밖의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S에게 가만히 있지 않을 건 뻔한 일이다. 나는 여러분이 백번 양보해서 각자 자기가 받을 돈의 40%씩만 받고 이 건은 끝낼 것을 제안한다. 소위 그렇게 빚잔치를 하고 끝내자는 것이다. 내가 듣자 하니 50, 100, 150, 300만 원이 제일 큰 액수로 들었다. 나는 못 받는 돈이 여러분과 비교할 수 없는 액수이지만, 이렇게 해서 S의 부담을 덜어주고 고통 분담을 해서 이 건을 마무리 하고자 하는데 어떠냐?”

사람 하나를 살리는 일이라고 생각되었기에 단도직입적으로 강요 아닌 강요를 할 수 밖에 없었고, 다행히 교직원들은 내 말을 따라주었다. 나는 S를 불러 퇴직금에서 남은 부분은 외부 사람들에게도 조금씩 갚으라고 권하고 어떻게든 추운 겨울에 난방할 수 있는 곳으로 옮겨야 어린아이들이 살 수 있지 않겠냐고 했다. 그녀는 펑펑 울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한겨울 난방이 안되는 교회 구석방에서 영문 모르고 떨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희망이 없어 밤새도록 교회 바닥에 엎드려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기도만 한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하나님도 무심 하시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남보다 근면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던 사람에게 사기, 이혼, 사직, 아파트 경매 등 보통 사람들에게는 평생 한 건도 생길 수 없는 모든 고통과 불행이 이 여인에게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은 내게도 큰 충격이었다. 나는 S에게 따뜻한 방 한 칸이라도 구해서 아이들을 교회 냉방에서 데리고 나오라고 하며 방 한 칸 전세가를 알아보라고 했다. 알아본 결과 지하 방 하나 전세가 천만 원이라고 하기에 나는 그녀가 내게 퇴직금으로 갚은 천만 원을 도로 내주면서 이 돈을 가지고 가서 방 하나를 구해서 어린아이들과 살아 보라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깜짝 놀라서 손으로 막으며 “제가 교수님께 지은 죄가 얼마인데 다 갚지도 못하고 일부 밖에 드리지 못한 돈을 제가 어찌 도로 받아 방을 얻겠어요? 말도 안 돼요.”라며 펄쩍 뛰었다. 나는 “자기는 지금 세상 어떤 체면과 도리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어린 아들 딸을 교회 냉방에서 구해 내는 일이야. 지금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어디 있어?” 하고 반강제로 밀어 수표 한 장을 손에 쥐여 주었다. 그녀는 “이 고마움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하며 손으로 눈가를 훔쳤다. 

그녀가 방은 하나 구했지만 사표를 낸 마당에 애들 둘과 교회에서 나오면 당장 먹고 살 일이 걱정되었다. 직장도 없이 세 식구가 무엇을 먹고살 것인가가 또 하나의 내 숙제가 된 듯했다. 나는 정명실 교수를 불러서 S가 사직을 했으나 NCLEX-RN 프로그램 직원으로 채용해서 여전히 내 옆에서 하던 일을 하도록 하라고 했다. 그러면 신분이 공무원이 아닐 뿐 이전에 하던 일들을 그대로 다 할 수 있어 업무도 잘 파악하고 있는 S가 일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서 일단 매달 나오는 월급으로 먹고사는 일은 해결되기에 안도감이 들었다. 

몇 달이 지나서 나는 S에게 지하 방 한 칸에서 사는 게 어떠냐고 물 었다. 한참 뜸을 들이더니 그녀는 “교수님 은혜로 잘 지내고 있어요.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직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아파트에서 살 때 화장실을 편하게 쓰다가 지금은 화장실을 가려면 집 밖으로 나가서 볼 일을 보게 되어있는 주택이라 아이들이 어두워지면 화장실이 무섭다고 안 가고 울고 참다가 실수하는 것이 마음 아파요.”라고 했다.

충분히 이해가 갔다. 아파트에서 생활하다가 주택에 화장실도 없는 방 한 칸이니 어른도 불편할 텐데 어린애들이야 너무 당연하게 두려움을 느끼겠다 싶었다. 나는 다시 그녀에게 “화장실이 딸린 지하가 아닌 방 하나를 얻으려면 얼마인지 알아보라고 했다. 알아본 결과 2천만 원이면 화장실이 딸린 방 하나를 구할 수 있다기에 내가 천만 원을 찾아서 주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둘만 아는 것으로 하고 그 방을 계약해서 애들이 무서움없이 화장실을 다니면서 살도록 해주라고 했다. 내가 비밀로 하라고 한 것은 그렇지 않아도 우리 교수들이 내가 너무 사람을 잘 믿어서 손해를 보고 산다고 평소에도 나에게 경고성 농담을 해 온 때문이었다. 그런데 S에게 큰돈까지 떼이고도 다시 도와준 사실을 알면 나를 바보 같다고 또 한마디 할 것이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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