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회 충북도민체육대회’ 동메달 획득 옥천군 황선건 선수 - “어머니의 계란 한 판이 오늘의 나 존재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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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회 충북도민체육대회’ 동메달 획득 옥천군 황선건 선수 - “어머니의 계란 한 판이 오늘의 나 존재케 해”
  • 김동진 기자
  • 승인 2022.09.08 11: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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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세에 ‘포환던지기 동메달’ 획득
충북도민체육대회 ‘1위만 12회’
육상 트랙‧필드 종목 보강 필요
어느 분야든 ‘멘토’가 중요
‘제61회 충북도민체육대회’ 포환던지기에 출전해 동메달을 획득한 황선건 선수
‘제61회 충북도민체육대회’ 포환던지기에 출전해 동메달을 획득한 황선건 선수

“고등학교 3학년 때인 1985년, 육상 5종 경기에서 ‘한국 주니어 신기록’을 냈다. 당시 많은 대학이 러브 콜을 보내 왔다. 하지만 지도자의 길도 염두해 훌륭한 지도자를 선택하고 싶었다. 그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멘토가 중요했다. 고민 끝에 김기봉 지도교수를 찾았다. 그에게서 지도를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국 부산의 경성대학교를 선택했다”

옥천 육상 남자 일반 포환던지기 대표 선수인 황선건(57) 선수가 또 한 번 큰일을 해냈다. 지난달 17일 ‘제61회 충북도민체육대회’ 사전경기로 열린 육상 남자 일반 포환던지기 옥천군 선수로 출전한 황 선수는 50대 후반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동메달을 획득하는 녹슬지 않은 저력을 과시했다.

그의 동메달이 더욱 값진 이유는 나이도 나이지만 대회를 코 앞에 두고 짧은 시간 동안 벌어진 일련의 시련들을 이겨낸 보이지 않은 탄탄한 멘탈이 잠재해 있었다. 

“우선 한 달 전 그동안 근무해 오던 병원의 원장이 갑작스레 별세하는 큰 일이 발생했다. 원장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병원 문마저 닫고 말았다. 순전히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난 일이었다. 동시에 실업자 신세가 되고 말았다. 설상가상 코로나라는 복병이 찾아 와 큰 시합을 앞두고 무려 1주일을 집에 틀어 박혀 있어야만 했다. 모든 게 한 달 새 일어난 일들이었다”

그는 1982년 전국소년체육대회 중등부 포환던지기에서 메달을 획득하며 두각을 나타낸 뒤 고등학교에서 육상 5종 경기 ‘한국 주니어 신기록’을 작성하며 일약 스타가 됐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경성대학교에 진학해 10종 경기 선수로 전국종별육상경기선수권대회 우승을 비롯 1위 4회, 2위 6회 등 우수한 성적을 남기며 부산에서 25년간 선수와 지도자 생활을 했다. 전국체육대회는 1986년부터 1993년까지 출전했고 1990년부터는 포환던지기 선수로 ‘충북도민체전’에 꾸준히 참가해 1위 12회(원반던지기 1회), 2위 6회 등 대회 때마다 입상하는 아주 특별한 성적을 남겼다. 특히 방위병 복무 중 육상 10종 경기 전국대회에서 얻은 우승은 상무에 못 간 한을 대신해 줬다.

그렇다고 단순히 운동에만 매달리지는 않았다. 보다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실력을 배양코자 학업에 대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결국 한 단계 깊이 있는 육상인을 육성하고 싶어 같은 대학 석·박사과정에 들어갔다. 그는 그때도 학생과 선수라는 두 마리 토끼를 좇으며 끝내  2012년에 이학박사(체육학)학위를 취득하는데 성공했다. 지금은 옥천군체육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 건강관리는 어떻게 했는지

지금까지 술‧담배를 전혀 안 했다. 10종 경기는 아침 일찍 시작해 제일 늦게 끝나는 경기라 어지간히 부지런해서는 안 된다. 첫째 날 5종목, 이튿날 5종목 이렇게 이틀 동안 총 10경기를 치룬다. 지금까지 롱런할 수 있었던 비결도 규칙적인 생활과 꾸준한 연습이 밑바탕이 되었다. 그러나 그보다는 그동안 아무 걱정없이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힘이 되어준 사랑하는 가족의 응원과 격려 덕분이었다. 지금도 근력운동은 젊은 사람들 못지않게 하고 있다.

운동선수로서 
자신만의 루틴이 있다면 

정답은 연습밖에 없다. 구르는 돌은 이끼가 끼지 않고 가동되는 기계는 녹이 슬지 않는 것처럼 42년 동안 꾸준히 한눈팔지 않고 노력해 온 결과다. 

배우 이순재 씨가 ‘60년 이상(배우생활)을 해도 굉장히 긴장된다’는 말을 했다. 이번 시합 역시 전날 밤에 잠을 자는데 굉장히 뒤척였다. 아무리 훌륭한 선수도 시합을 앞두고는 긴장하기 마련이다. 오랜 선수 생활로 노련미는 있을지 몰라도 막상 선수로 뛸때면 자신감보다 긴장감이 앞선다.

운동하러 갈 때는 자동차를 안 타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하루에 1만 보를 걷고 주로 근력운동을 한다. 이런 루틴이 계속 반복되면서 긴장이 완화된다. 

사람들은 시험을 못 치면 “시험문제가 어려운 게 아니라 공부를 안 한 거다”고 한다. 경험적인 측면에서 볼 때 그 말이 맞다. 이번 대회 직전 코로나로 일주일 동안 집에 있으면서도 근력운동만큼은 꾸준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으로 운동을 하다 보니 근력운동이 가볍게 느껴졌고 운동하면서 메달을 딸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부상이나 슬럼프는 
어떻게 극복했는지 

10종 경기 100m 종목에서 10초대 기록으로 들어갔을 때 근육 부상을 입었다. 그때 굉장한 부담을 느꼈다. 그럴때면 대부분의 운동선수들이 술‧담배를 하는데 나는 오히려 책을 봤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육상 5종 경기 전국대회 우승과 3학년 때 내 생일날 KBS배에서 우승했을 때다. 그 인연으로 부산의 경성대학교를 입학하게 됐고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2003년 모교인 경성대학교에 외팔이 장애인 투창선수가 있었다. 그는 일반 선수와 동등하게 경기를 했다. 그때 그 선수를 지도해 전국체육대회 때 MVP로 탄생시킨 일이 기억에 남는다.

동메달 획득한 소감은

한 해 한 해 마음이 무겁다. 선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경기에 나갈 나이가 아니다. 바람이 있다면 옥천군 육상실업팀을 중·장거리 분야로 구분되어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트랙과 필드 종목을 더 보강한다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옥천체육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개인적인 소망이라면 지도경력을 바탕삼아 필드에 직접 나가는 것보다는 후진 양성에 도움을 주는게 맞지 않을까 싶다. 

지금의 황 선수를 있게 한 근원은

선수 시절, 시골에 돈이 없다 보니 어머니가 계란 한 판을 삶아주셨다. 당시 어머니께서는 나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힘이었고 보약이었다. 아버지 없이 고생하시는 어머니의 계란 한 판은 지금도 삶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대학 4년 내내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최고로 어머니에게 효도한 것 같다.     

황선건 선수가 ‘제61회 충북도민체육대회’ 포환던지기에 출전해 경기에 임하고 있다.
황선건 선수가 ‘제61회 충북도민체육대회’ 포환던지기에 출전해 경기에 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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