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신한 소파가 사람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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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신한 소파가 사람을 잡는다
  • 정일규 한남대학교 스포츠과학과 교수
  • 승인 2022.09.22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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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많은 사람에게 일종의 로망처럼 여겨져온 것이 있다. 그것은 직장에서 돌아와 피곤한 몸을 푹신한 소파에 기대어 쉬는 것이다. 과거에는 집에서 TV를 보면서 몸을 맡길 수 있는 푹신한 소파가 부유와 풍족함의 상징처럼 여겨졌을 때도 있었다. 

지금도 직장에서 온종일 바쁘게 일하다가 집에 돌아와 푹신한 소파에 몸을 기대어 쉬는 것은 열심히 일한 자신에게 베푸는 일종의 소박한 호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 컴퓨터 앞에서 구부정한 자세로 온종일 앉아서 일하면서 혹사당한 몸에 더 나쁜 악영향을 미치는 일이다. 

푹신한 소파에 몸을 기댄 자세를 생각해보자. 이때 엉덩이는 소파의 푹신함 때문에 가라앉으면서 골반이 뒤로 돌아가는 골반의 후방경사(pelvic posterior tilting)가 일어난다. 다시 말해서 소위 ‘꼬리뼈로 앉는 자세’가 된다. 꼬리뼈로 앉으면 골반이 뒤로 돌아가면서 골반의 바닥을 이루고 있는 골반기저근이 단축되면서 긴장도가 높아지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자세가 지속되면서 주변의 근막이 뻣뻣해져 자율신경조절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즉 골반기저근이 위치하는 주변 부위에는 미주신경이라고 하는 부교감신경의 밀도가 매우 높은데 이는 장이나 방광 등의 조절이 영향을 받게 됨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골반의 후방경사와 그로 인한 골반기저근의 긴장은 부교감신경을 억제하고 교감신경의 흥분도를 높이는 작용을 한다. 

골반기저근은 근막을 통해 척추와 골반에 걸쳐 있는 다열근이나 복부를 감싸고 있는 복횡근, 내복사근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소파에 꼬리뼈로 앉으면서 허리와 엉덩이 부위 근막이 일시적으로 늘어나면서 편안함을 느끼지만 그 자세가 점차 지속되면서 허리와 등이 둥그렇게 말리는 형태가 된다. 그러한 자세가 유지되는 상태에서 근막슬라이딩(fascia sliding) 운동은 전혀 일어나지 않게 된다. 이러한 자세로 한동안 TV를 보면서 골반 및 허리주변의 조직들이 유착되고 뻣뻣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즉 몸을 움직이는 것은 온몸에 걸쳐 그물망처럼 퍼져 있는 결체조직인 근막의 수분을 수시로 재배치하면서 그 조직의 점탄성 성질을 잘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 푹신한 소파에 몸을 맡기는 동안 인체의 정렬은 더욱 정상적인 상태를 벗어나게 되고 결국 요통, 고관절 통증, 고관절 기능이상, 천장관절증후군 등이 나타나는 것이다. 

또한 근막에는 무수히 많은 신경세포들이 분포되어 있는데 이들은 감각을 뇌로 전달하는 내부수용기(interoceptor)나 몸의 위치정보를 감지하여 전달하는 고유수용기들이 있다. 몸을 움직일수록 이들 신경에 대한 자극이 시시각각 뇌로 전달되면서 상호교통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몇 시간이고 푹신한 소파에서 거의 한 자세로 움직임이 없이 TV를 보는 가운데 이들 감각신경과 뇌의 상호작용은 일어나지 않고 뇌의 정보처리 기능과 말초의 고유수용성 기능은 쇠퇴하게 된다.   

그뿐만 아니다. 소파에 몸을 맡긴 자세, 즉 골반의 후방경사와 요추전만이 사라진 자세에서는 호흡근육인 횡격막이나 늑간근의 움직임이 제한을 받는다. 숨을 들여마실 때나 내쉴 때 횡격막의 움직임이 제한받으면 가슴상부와 목부위에 있는 흉쇄유돌근이나 사각근이 이를 보완하기 위해 관여하게 되는데 이는 교감신경계의 흥분도를 더욱 높이는 원인이 된다. 

사실 숨을 들여 마실 때는 횡격막이 아래로 내려가고 반대로 숨을 내쉴 때는 횡격막이 원래의 위치로 위로 올라가는 움직임에 맞추어 복강내압이 안정적으로 변화하는 것은 자율신경의 리드미컬한 조절에 매우 중요하다. 

즉 숨을 들여마실 때는 교감신경이 우세한 상태가 되었다가 숨을 내쉴 때는 부교감신경이 우세한 상태가 되는데 이러한 변화는 심장의 박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소파에 몸을 장시간 맡기는 것은 온종일 혹사된 몸에게 상금을 베푸는 일이 아니라 더 가혹한 벌을 내리는 일이다. 지친 내 몸에 휴식을 주려고 하지만 사실은 교감신경이 더욱 우세한 상태로 몸을 몰아넣어서 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중요한 조언을 하나를 하자면 ‘앉을 때는 꼬리뼈로 앉지 말고 좌골로 앉아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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