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76)
상태바
‘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76)
  • 송지호 작가
  • 승인 2022.11.24 13: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동생들은 큰형을 아버지보다 더 어려워했고, 시누이들 역시 오빠 말이라면 그대로 따랐다. 그런 권위 있는 큰아들의 아내인 형수와 올케인 나를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세상 막내며느리들이 모두 힘 안 들고 행복하게 사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자기 하기에 따라 행, 불행이 결정되는 것이지 맏며느리냐 막내 며느리냐에 따라 결혼생활의 행복이 결정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설득

어느 날 남편 고향인 이리에 사는 한 아주머니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 깜짝 놀라서 무슨 일로 그렇게 먼 곳에서 오셨냐고 물었다. 1989년 당시 지방에서 혼자 형편이 어려운 그 아주머니의 아들을 남편이 대기업에 취직을 시켜준 일이 있었다. 아주머니는 맏아들이 대학 졸업 후 취직을 못 하고 있어 애간장이 탔었는데, 이제 좋은 직장에 취직이 되었으니 그 은혜를 어찌 갚겠냐며 감사의 인사를 하기 위해 상경했다고 하였다. 큰아들이 직장이 없어 막막하게 지내던 암울한 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날아갈 것 같이 기쁘다며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좋은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눈 끝에 아주머니가 일어서면서 엉거주춤 봉투 하나를 꺼내 남편에게 내밀었다. 그 순간 분위기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남편은 정색하며 아주머니의 손을 가로막으면서 말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아주머니가 사례를 해서도 안 되고 내가 절대 로 받아서도 안 되는 이유를 말씀드릴게요. 아주머니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아끼고 사랑하는 큰아들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사회에 첫발을 딛게 된 첫 직장의 취직을 우리는 진정한 마음으로 모두가 축하해 줘야 합니다. 그것이 부모로서 또 세상의 어른들이 취해줘야 할 일인데, 왜 어머니인 당신이 사랑하는 아들의 첫 취업을 돈 주고 산 것으로 만들어 아들의 인생을 불행하게 망치려 합니까? 그건 부모로서 할 도리도 아니고 어른인 우리가 어린 자식 세대에게 해서는 안 될 짓입니다. 만일 아주머니 아들이 나중에라도 이런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인생이 얼마나 슬프고 절망적이겠습니까? 내 인생에서 첫 직장이 겨우 돈과 바꾼 취업이었구나 생각하면 세상을, 어른들을 얼마나 원망하며 살아가겠습니까? 아들의 희망에 찬 첫 직장의 꿈을 어른들의 잘못으로 그 꿈을 그렇게 비참하게 무너뜨려서야 되겠습니까, 그런 뜻에서 절대로 어머니는 소중한 아들을 위해서라도 이런 봉투로 제 호의를 저버리시면 안 되니 도로 넣어 주세요.” 나는 아주머니를 설득하는 남편의 표정에서 진정 어른스러움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에 대한 진정한 도리가 무엇인지 그대로 볼 수 있었다. 전에도 유사한 감정을 느낀 적은 많았지만 나는 그때처럼 내 남편이 훌륭해 보이고 존경스러워 보였던 적이 없었다. 물론 평소에도 그런 성격과 인격을 알고는 있었지만, 돈을 앞에 두고 그렇게 인간적이고 아름다운 설득을 통해 봉투를 내민 어머니의 잘못된 손을 진심 으로 고맙고 부끄러운 손으로 만들어 스스로 거두게 한 남편의 내공, 그 힘이 자랑스러웠다. 

내가 결혼한 지 불과 두 달 정도 된 어느 날 남편과 팔짱을 끼고 충정로 길을 걷고 있었다. 그때 앞에서 큰 시동생이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순간 남편은 내게 얼른 팔짱 낀 내 팔을 빼라고 해서 얼떨결에 나도 모르게 팔을 뺐다. 시동생과 마주하고 지나간 후 생각하니 나는 조금 화가 났다. “결혼한 부부가 팔짱 끼고 걷는 것이 무어가 그리 잘못된 일이라 그렇게 팔을 빼라고 그랬냐?”고 따져 물었더니 “동생들 앞에서는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내심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남편 생각이 그렇다는데 어쩔 수도 없었다. 그러다가 길을 걸으며 우연히 아 래를 내려다보니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이 길 앞에 놓여 있었다. 나는 그야말로 무심코, 엉겁결에 그 지폐를 주워서 남편에게 천 원짜리가 길에 떨어져 있어 주웠다고 말했더니 그 말을 듣자마자 큰소리로 그 돈을 왜 주웠냐고 야단을 하며 있던 자리에 도로 갖다 놓고 오라는 것이었다. 느닷없는 남편의 호통에 순간 당황도 하고 슬그머니 화도 났지만 엉겁결에 돈을 주웠던 터라 얼떨떨하여 남편 말대로 되돌아가서 돈이 있던 자리에 천원 지폐를 내려놓고 돌아섰다. 길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돈을 길에 놓고 오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는 눈길을 느끼며 부아가 났다. 나는 그날 집에 돌아와서 기어이 한마디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나도 지금까지 남보다는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해 온 사람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길에 돈이 떨어져 있으면 보통 다들 줍는 거 아니냐? 훔친 것도 아니고 길에 떨어져 있는 돈을 그냥 밟고 지나쳐 가는 것도 이상하지 않냐, 그 돈을 주운 것이 뭐 그리 큰 잘못이나 저지른 것 처럼 화를 내고 그랬냐?”

집에 와서 따져 물었다. 그랬더니 남편이 타이르듯 설명했다. “돈이든 물건이든 흘린 자리에 그대로만 놔두고 아무도 건들지 않으면 그 물건을 잃어버린 사람은 대개 자기가 왔던 길을 그대로 되돌 아가서 찾아볼 수도 있다. 만일 아무도 그 물건을 건드리지 않고 그 자리에 있는 채로 놔두면 주인이 잃어버린 것을 찾아갈 수가 있는데 누가 주워서 가져가면 그 주인은 그 물건을 도로 찾을 수가 없지 않냐, 그러니까 절대로 길에 떨어져 있는 물건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주인 없는 물건은 세상에 없는 법이니 줍지 말고 그대로 두어야 한다. ” 고지식한 남편의 말을 듣고 보니 또 남편 말이 옳았다. 그 후부터 나는 절대로 길에 떨어져 있는 물건을 줍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두 아들을 키우면서도 절대로 길에 떨어져 있는 물건은 주인이 있는 것이니 주워서 너희가 가지면 안 된다고 가르쳤다. 큰아들도 압구정 구정초등학교에 다닐 때 몇 번이나 길에서, 운동장에서 돈을 주워서 학교 바로 앞 파출소에 주인을 찾아주라며 맡기고 왔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