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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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임
  • 지옥임 수필가
  • 승인 2023.01.19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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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생일을 축하한다면서 5남매가 모여들었다. 자식들이 한자리에 모이니 어렸을 때는 좁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결혼시켜 예쁘고 귀여운 손자들이 늘어나니 방이며 거실이 꽉 착 느낌이다. 정신없긴 해도 눈길 돌리는 곳마다 아이들의 재롱에 웃음보가 터진다. 

오랜만에 만나 그런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한마디라도 더 하려고 귀가 시끄럽더니 어느 순간 조용하다. 

웬일인가 싶어 둘러보니 큰 사위를 비롯하여 아들딸 모두가 휴대폰에 넋이 나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길거리나 버스 안에서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휴대폰에 빠져 있던 젊은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럴 때마다 눈살을 찌푸리고 혀를 찼다. 

그런데 중년의 나이가 된 내 자식들이 똑같은 짓을 하고 있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마디가 나온다. 

“나이가 40 들이 넘어 가지고 무슨 짓들이여” 잔소리를 하니 모두들 지금 시합 중이니 조용히 하란다. 

슬그머니 화가 나서 그만두지 못하겠느냐고 하자, 제일 어른이라고 하는 큰 사위가 “어머니, 요즈음은 무엇이든지 잘해야 사회생활도 잘해요” 하며 낄낄거린다. 

아이들과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보더니 남편이 “애들아, 우리 사다리 타기나 할까?” 하며 사다리 타기 게임을 제안한다. 

내 말에는 들은 척도 하지 않던 자식들이 좋다면서 남편의 제안에 동의한다. 내가 잔소리를 하는 동안 방에서 무엇인가 심사숙고하는가 싶더니 달력 뒤에다 사다리를 정성스럽게 그려가지고 나온 것이다. 

지는 쪽이 치킨과 피자를 사기로 했다. 내게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던 큰사위 내외가 걸렸다. 그러자 억울하다며 이번에는 윷놀이를 하자고 한다. 한쪽에서는 그런 것이 어디 있느냐고 했지만 큰 사위를 이길 자신이 없는지 이내 수긍한다. 

윷놀이에는 큰 사위와 둘째 사위가 졌다. 번번이 꼴찌를 면지 못하는 큰 사위는 모든 것이 어머니 때문이라면서 어머니가 책임지라고 억지를 부린다. 한 번만 더하면 일등할 자신이 있다고 생떼를 쓰는 큰 사위를 놓고 모두가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다. 따지고 보면 이런 것도 게임이나 다를 바가 없는데 왜 용납이 되는지 알 수 없다. 

게임은 모든 것에 중독성이 있는 것 같다. 젊었을 적에는 화투에 정신이 나간 남편과도 무던히도 많이 싸웠다. 주위에서 가산을 탕진하는 사람들도 여럿 보았다. 

나도 어렸을 적에는 엿 내기 나일론 뽕이라는 화투를 쳐본 적이 있다. 혼자 독박을 쓰고 나면 억울해서 또 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자꾸만 하다 보니 한 해 겨울이 지날 때면 엿값으로 꽤나 많은 돈이 나가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아직도 게임에 대해서 부정적이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서는 한 번도 해 본 일이 없는 도박을 나이 들어 남편 앞에서 과감하고 당당하게 시도해 본 적이 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갔을 때다. 꿈의 도시라는 말에 걸맞게 세상에 이런 곳이 있나 싶었다. 분위기에 따라 한 게임 해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냥 가면 어쩐지 억울할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도박의 도시, 휘황찬란한 겜불장 구석의 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젊어서와는 달리 성실하고 모범적인 남편은 게임을 시도하는 내 모습에 기가 막혔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같이 간 일행들 모두가 하지 말라며 만류를 했지만 나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다. 

10불을 종잣돈으로 시작했다. 잃어봐야 10불인데, 하며 허황된 꿈에 기분이 들떴다.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느 여배우의 어머니가 이곳에 와서 대박을 터트려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안고 약간은 흥분된 마음으로 시작했다. 게임기가 나의 사심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것처럼 처음에는 잔돈푼이지만 꽤나 많이 쏟아져 가슴이 두근거렸다. 갑자기 돈부자가 된 것처럼 행복했다. 

옆에서 염려하는 일행들의 성화에 못 이겨 그만두려는 찰나에 누군가가 “이제 본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한다. 푼돈 얼마에 황홀했던 꿈은 순식간에 조각이 나고 약간은 허탈했다. 너무 짧은 순간이기에 게임을 통해 얻은 것도 잃은 것도 없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달려가던 오락실이나 휴대폰 게임, 전통을 이어오는 윷놀이, 진짜 도박에 빠져 평생을 헤어날 줄 모르는 화투나 카드, 수많은 게임들 모두가 뜬구름을 잡는 허상이다. 요행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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