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령산] 기자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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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령산] 기자로 산다는 것
  • 김병학 편집국장, 언론학박사
  • 승인 2023.03.02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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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태어나 처음으로 기자(記者)라는 수식어를 갖게 된 건 스물 넷 대학 시절 학보사다. 

군대를 갔다 오고 시작한 대학생활이어서인지 누구보다 열심이었고 말마따나 군인정신(?)까지 가세해 하루 해가 너무도 짧게 느껴졌을 정도였다. 

게다가 지금이야 잘 모르겠지만 당시만 해도 ‘학보사 기자’ 하면 그래도 나름 실력이 있고 똑똑해야 학보사에 들어갈 수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던 시절이기도 했다.(사실이 그러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름하여 수습기자(일명 올챙이 기자)로 시작한 학보사 기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묘한 느낌을 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학보사 기자는 대학을 졸업하고부터는 ‘학보사’라는 꼬리표가 사라지고 정식으로 ‘취재기자’라는 또 다른 수식어가 붙었다. 그리고 그렇게 붙은 수식어는 필자 나이 60 중반이 내일 모레인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다.

조금 눈치가 빠른 사람은 눈치를 챘겠지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할 40여 년이라는 세월 동안 기자로서의 삶을 살아 오는 과정이 어찌 평지만 있었겠는가. 

때로는 권력(권력이래야 고작 도지사나 국회의원 정도이지만)과 맞서 견디기 힘든 시련을 겪어야 했고 때로는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하고자 구사대(求社隊)라고 하는 조폭들과 맞짱 아닌 맞짱을 떠야 했으며 때로는 난소암에 걸린 7살 어린 소녀의 회복을 위해 동분서주 모금운동을 펴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을 지내오다 보니 시쳇말로 ‘공중전에 수상전 지하전’까지 어지간한 상황은 거의 맞닥뜨려 보았다(전쟁만 빼고).

그래서일까, 지금도 필자에게는 나름 법칙 아닌 법칙이 하나 작동하고 있다. 이는 어쩌면 나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마치 자동적으로 작동되는 프로그램마냥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그런 메카니즘이 살아 숨쉰다는 점이다. 이러한 메카니즘은 아마도 대학 시절 지도교수에게 배운 ‘기자정신’이 연연(連延)히 이어져 온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 그러한 ‘기자정신’을 시험하려는 움직임이 나를 흥분시키려 하고 있다. 이른바 ‘도담노인요양병원’ 사건이 그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사실 냉정하게 말해 ‘도담’ 사건은 필자와 무관한 일이다. 

하지만 기자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이상 더 이상 남의 일로 치부하기에는 내 양심이 아니, 지나온 삶의 흔적이 허락칠 않는다. 도담이 대단한 권력자나 자본가라서 그러는게 아니다. 최저임금이라도 벌기 위해 꼭두새벽에 시린 손을 불며 출근하는 조리실에 근무하는 힘없는 사람들과 남들 다 기피하는 환자들의 고름을 닦아주고 운동을 시켜주는 천사와도 같은 사람들을 상대로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하는 그런 사람(?)들을 그냥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게다가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은 기사를 썼다고 기사를 쓴 필자를 협박하는 강자(?)는 아무리 양보해 생각해도 그냥 지나치기에는 필자의 인내에 임계점을 넘어서고 만다. 

설상가상 자신이 던진 말에 심적 충격을 받은 나머지 특정인이 운명을 달리 할 정도로 심적고통을 겪었다는 주위 사람들의 공통된 지적에도 불구하고 정작 본인만은 아무런 죄의식이 없으니, 이는 실로 개탄을 넘어 사회적 평가를 받아야 할 문제임에 분명하다 하겠다.

언젠가 한 지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김 기자님, 누군가를 그렇게 통째로 드러내는 기사를 쓰면 후환이 두렵지 않으세요”라고.

너무도 당연한 지적이다. 그리고 아무나 내뱉을 수 없는 섬뜩한 지적이다. 필자도 사람이다. 때로는 무섭기도 하고 겁도 난다. 

하지만, 필자의 판단에 이것만은 고쳐져야(사라져야) 한다라고 판단이 설 때는 다르다. 해당 기사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설령 일신상의 위해(危害)를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발본색원하여 (동물이 아닌) 사람이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기자의 존재가치라고 일러 준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은 과거에도 몇 번 겪었기에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도 곁들여 준다. 그리고 한 마디 더 덧붙여 준다. “그런 것 걱정했다면 진작에 기자의 길을 포기했을 거라고”. 

필자에게 있어 기자란 개인적인 존재가치보다는 공동체를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자라는 직업은 아무나 선택해서도 안되고 일단 선택을 했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정도(正道)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게 필자의 지론이다. 스승으로부터 그렇게 배웠고 지금도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40년이라는 세월동안 이 길을 걸어왔고 앞으로도 이 길을 걸어갈 것이다. 사람들이 기자를 하릴없이 공인(公人)의 범주에 넣어준 게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인생이란 언젠가는 자연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나보다는 불특정다수를 위해 살아보는 것도 조금은 남다른 가치를 갖는게 아닐까. 

더욱이 ‘양심’이라는 단어를 잊고 살아가는 특정 소수들에게 이러한 단어를 회상시켜 주는 것도 기자로써 지녀야 할 의무가 아닐까. 그리고 어쩌랴, 이게 필자의 운명이자 숙명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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