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돌․고인돌․몽재묘표석․지재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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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돌․고인돌․몽재묘표석․지재서당
  • 김대현 수필가
  • 승인 2023.03.23 15: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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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재(김장)묘표석
몽재(김장)묘표석
지재서당
지재서당

지난 해 8월 옥천향토사연구회 회원들과 함께 내 고향 장수리 말밍이 자연부락을 찾았다. 말밍이는 조선시대 청산현 남면 무회리로 1929년 행정구역 조정으로 무회·점동·소구리미와 합쳐 옥천군 청성면 장수리에 편성되었다. 옛날 장수가 이곳에 태어났는데 훗날 큰 인물이 될 것을 알고 디딤돌로 눌러 죽이니 함께 있었던 말이 함께 울다가 죽었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선돌 1호는 보청천가에서 500m 동네 입구에 있으며 2m 크기의 거정((巨晶) 화강암 입석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정월 초이튿날 이른 아침 산제를 지냈다 살생과 육식을 하지 않고 생기 복덕을 지닌 제주를 선정하여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했다. 나도 어린 시절 구지산 아래 황토흙을 파서 동네 양길가에 뿌렸던 기억이 난다. 선돌 2호도 동네 한가운데 개울가에 50cm 정도의 작은 성기 모양의 화강석 입석이다. 여성들이 많이 만져 반질반질하다. 다산의 기원이리라 본다. 

고인돌 1호는 고 김무호 씨 집 뒤 거북 모양으로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있다 선돌 2호와 20m 가까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무슨 관계가 있으리라 본다. 우리 집 가까이 있어 유년 시절 그 옆에 살구나무가 있어 맛있게 주어 먹었던 추억이 있다. 마침 우리 집 아래에 살고 있는 이창용 씨의 복숭아 선별작업을 하여 회원들에게 복숭아 대접하였던 것이 고향의 정과 맛을 느꼈다. 이어 고인돌 2호는 구지산 끝자락 뒷동산 정상 2m 정도의 길이의 바위이다. 1970년대 어떤 도굴꾼이 야밤에 도굴해 지금 45도 기울어져 있었다. 조도형 회원이 동덩어리를 발견하여 옥천군 관계자에게 의뢰하기로 했다. 어린시절 이 바위에 앉아 보청천 강 건너 드넓은 황금 물결치는 들녁과 그 뒤로 저점산성과 굴산토성을 즐겨 바라보곤했다. 몽재(김장) 묘표석은 조선 인조때 김장생(사계)의 문인으로 우암·동춘당과 함께 동문수학한 초야에 묻혀 후학을 가르친 산림학자시다. 병자호란때 스승따라 강화도까지 갔었다고 족보에 실려있다. 부모 묘 옆에 초막을 지어 9년 동안(스승,왕,부모) 시묘살이를 한 효심이 지극하여 후에 조정으로부터 통훈대부 추증을 받았다. 저서에 ‘훈몽서지행방편’이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우암 5대후손 대제학을 지내신 송환기 묘비명을 지으셨다. 지금도 그때 심은 노송 7그루가 그 산소을 지키고 있다

지재서당은 구지산 북쪽 끝자락에 조선 중종 때 김옥정 선생이 세우신 500여 년된 서당겸금릉김씨재실이 있다 2022년 10월 충북도문화재 100호로 지정되었다. 조선말까지도 금릉 김씨 종친의 자녀 뿐 아니라 인근 어린이들을 무료로 가르침으로써 청산지역에 예와 학을 심어주는 배움의 터였다고 전해진다. 매년 음력 10월 7일 이곳에 경향 각지에서 종친들이 모여 시사를 지냄으로써 추원보본(追遠報本)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지재의 기록을 보면 ‘금릉김씨대동세보’에는 1810년(순조 10년) 경오년 음력 3월 16일에 건물을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와 더불어 건물의 용마루 좌측 망와에서 발견된 ‘庚子五月’(경자오월)이라는 명문에 주목해 건축연대를 추정해 볼 때 경자년은 김옥정의 노년기인 1540년이거나 이달 선생이 지재에 머물면서 한시 ‘목련’을 지었을 시점인 1600년 경자년으로 추정한다. 필자는 금릉김씨 30대손이다 그 감회를 적어본다. 필자는 옥천향토연구회 회원, 금릉김씨 종친회장. 시인으로 지재(止齋)서당 충북도문화재 지정 헌시 옥천학문의 꽃 피우소서를 적어본다.    

               
책 읽는 소리 靑山 새벽 깨우고 구지산 언덕 여명이 밝아오네

금릉 김씨 500년 배움의 터전 아직도 그날의 책 읽는 소리 낭낭한 목소리 들려라

유림 옥정 선생 벼슬 마다하시고 향리에 묻혀 주경야독 후학 가르치는 낙(樂)으로 살으셨지요

청산 학문의 밭 일구시고 옥천 仁, 義, 禮, 智 뿌리셨지요.

탁계 스승 미호 선비 ‘止齋지재’ 현판 써주시니 그 뜻 깊어라

‘어진 사람 산 좋아 그곳에 머물고 숲 꾀꼬리 노래하며 그곳에 있네

忠, 信, 孝, 敬 착함에 머물러야 하나니 사람들이여, 이 머뭄의 참뜻 알고 힘 쓸지어다

청산향교 유림 소풍 오시고 만명 미루나무 숲, 은모래 강변 보청천 바라보며 학문 논하시고 음풍농월 하시던 곳, 아! 삼당시인, 孫谷손곡 ’牧丹목단‘ 시 남기고 떠나셨지요.

몽재, 우암 즐겨 찾으시고 예창 선생 이곳에서 3년 후학 가르쳤지요.

목재 한옥 비바람 견디며 살아온 지 500여 년. 아! 이제야 문화재로 지정되니

그 기쁨 어디에 비하리오 금릉 김씨 긍지요 충북 옥천 경사 아닌가

靑山처럼 푸르고 보청천 강물처럼 흘러 옥천 학문 꽃 다시 영원토록 피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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