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근처 임도를 걷는다. 빰을 스치는 초겨울의 싸늘한 공기가 정신을 맑게 한다.
계곡 물소리가 청량감을 더한다. 임도 옆 작은 물웅덩이에 이르니 버들치들의 안부가 금궁하다. 웅덩이를 들여다본다. 물속에 떼 지어 놀던 버들치가 보이지 않고 물구나무로 서 있는 나무들이 나를 반긴다. 거꾸로 서 있어도 힘들지 않은 모양이다. 저들은 내가 거꾸로 서 있다고 하지 않을까.
물속에 비친 내 모습이 궁굼하여 허리를 굽혔다. 물속에 잠긴 깊은 하늘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현기증이 난다. 물속 내 얼굴을 들여다 본다. 누,코, 입은 윤곽만 보일뿐 어둑하다. 내 작은 키가 더 작달막하다. 물웅덩이 저편 물속에 거꾸로 서 있는 나무들은 저리 선명하고 멋지다. 수선화의 전설을 떠올린다. 물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얼굴에 반하여 물에 뛰어든 나르키소스, 해가 나를 비끼어 다행이다.
물에 비친 우중충한 내 모습에 내가 반할 리 없으니 말이다. 나를 나르키소스에 비유한 표현에 웃음이 난다.
법정 스님의 수상 집 ‘산중 한담’의 ‘거꾸로 보기’라는 글이 생각났다.
그는 어린 날 친구들과 놀이를 하 때처럼 가랑이 사이로 산을 내다보았다. 하늘은 호수가 되고, 산은 호수에 잠긴 그림자가 되고, 그 모습이 하도 아름답고 신기해서 일어서서 바로 보고, 다시 거꾸로 보기를 반복하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아낸다. 우리가 인식하고 잇는 것은 대부분 고정관념이라는 것이다. 보는 각도를 달리하면 사람이나 사물의 새로운 면이 보인다. 상대를 선입견에서 벗어나 따뜻한 열린 눈으로 바라본다면 시들한 관계도 생기를 얻게 될 것이라고 했다. 나를 반성하면서 읽었던 글이다.
법정 스님처럼 ‘거꾸로 보기’를 체험할 기회가 있었다. 숲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어린이 숲 체험교육프로그램 작성을 위하여 설악산에서 선행 체험을 하게 되었다.
거기에 참여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학교 교육과정과의 연계성이 궁금하여 설악산으로 갔다. 그들이 작성한 프로그램을 살펴보고, 좀 더 참신한 내용이 없을까 궁리하다가 법정 스님의 ‘거꾸로 보기’를 떠올렸다. 어색하고 쑥스럽지만. 내가 시범을 보였다. 권금성을 오르내리는 케이블카, 설악산 봉우리, 옆에 서 있는 나무, 지나가는 사람들,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들이 정말로 새롭게 보였다.
파란 하늘의 뭉게구름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런데 내 가랑이 사이로 본 풍경들은 거꾸로 있지 않았다. 하늘은 하늘이고 산은 산이었다. 느낌만 새로웠을 뿐 이다. 바르게 서 있는 풍경들에 대한 내 고정관념이 거꾸로 보이는 것,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있었을까.
나는 내 고정관념으로 인해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만든 틀에 자신을 비롯하여 너무 많은 사람을 가두곤 한다. 그 틀은 사회 규볌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거, 나 스스로 만든 규볌이다. 전해오는 관습이기도 하다. 그러한 것들로 내 삶의 소신이라는 틀을 만들었다. 내 틀 안에서 숨 막히게 자라온 아들들은 ‘엄마는 자신에게 관대하고 남에게는 냉철하다.“라고 말한다. 나는 그 반대라고 주장하지만, 나를 반대편에서 바라보는 두 아들의 판단이 옳을 수도 있다.
내가 만든 틀이 친구의 마음을 다치게 한 일이 있었다. 지난 여름에 서울에 사는 친구들이 양양으로 이사 온 우리 집에 왔다. 우리는 밤이 새도록 정담을 나누었다. 첫사랑 이야기를 풀어놓을 때는 들뜬 소녀의 감성으로 되돌아갔다.
이야기가 무르익어 갈 무렵, 내내 침묵을 지키고 있던 M이 고민을 털어 놓았다. 사촌 오빠가 소개해준 분으로부터 청혼을 받은 내용이었다. 우리는 친구에게 축하의 말을 건네면서도 나름대로 진지하게 생각햇다. 어느 친구가 그분과 친구처럼 지내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M은 떳떳한 관계여야 되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친구의 성품을 대변하는 말이었다.
그녀의 재혼 문제에 대하여 의견이 분분했다. 그때, 나는 삼십여 년을 홀로 살아온 맵시, 마음씨 예쁜 친구 J가 생각 났다. 그녀는 30대에 남편과 사별한 후, 좋은 혼처를 마다하고 홀로 남매를 잘 성장시켜 가정을 이루게 했다. 지금은 취미생활과 봉사활동을 하며 늘 명랑하다.
설중매를 연상시키는 J의 삶이 내 틀 안에 너무나 반듯하게 서 있었다. 나는 M의 재혼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진정한 사랑에는 희생이 따르기 마련인데 마음 여린 친구가 정년퇴직 후 새로운 삶을 감당해 낼 수 있을지 염려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 경우를 가정법으로 제시하며 신중하게 결정하기를 권했다. 잠자코 우리의 의견을 듣고만 있던 M이 입을 열었다. 나를 보고 서운하다고 했다. 아마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자기 입장을 가장 잘 이해해줄줄 믿었던 거 같다. M이 ”너희들 10여 년동안 혼자 밥 먹어 봤니?“라고 말햇다. 그 말을 듣자 가슴이 먹먹햇다. 그러고 보니 M이 남편과 사별한 지 어언 10년이 훌쩍 지나지 않았는가. 방안네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물속에 거꾸로 서 있는 나무는 땅 위의 나무가, 땅 위에 서 있는 나무는 물속의 나무가 거꾸로 서 있다고 서로 비난할 일이 아닌 것 같다. 나를 상대방의 처지에 세워보는 아량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을 털어뫃았다가 오히려 상처만 입고 간 친구 M에게 미안하다. 친구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한 나를 진정한 친구로 여기고 있을까.
M의 목소리가 듣고싶다. 그날 이후 소식이 없어 궁금한 터이다. 열아홉 살 교대 입학 때부터 이순을 넘긴 지끔까지 끈끈한 우정을 이어온 지기지우가 아닌가. 안부 전화를 걸어야겠다. 물소리, 새소리도 들려주어야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거꾸로 서 있는 나무들이 나에게 다가온다. 나도 그들 곁으로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