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그리고 싶은 풍경화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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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그리고 싶은 풍경화 (Ⅱ)
  • 손수자 수필가
  • 승인 2024.06.20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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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16호 ) 에 이어


어느 날은 할머니가 밭에서 일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할아버지 턱밑 옷이 흠뻑 젖어 있더란다. 새로 이사온 이웃 사람이 음료수병을 따서 할아버지께 드리고 갔는데 음료수병을 입에 대고 마시려고 하였으나 손이 떨려 애만 쓰시고 입가로 흘리기만 했다. 
할머니는 “에이고,불쌍해라!”라는 말을 연발하며 “3년만 더 살다 가면 얼마나 좋았겠냐.”고 아쉬워했다. 할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내자는 자녀들의 말을 한사코 거절하고 할머니가 끝까지 모신 게 여한이 없다고 하셨다. 그날은 할아버지가 보신탕 한 그릇 먹으면 병이 다 나아서 벌떡 일어날 것 같다고 하셨단다. 할머니는 보신탕 재료를 사다가 뒤꼍 화덕에 솥을 걸고 끓였다. 그것을 보기 위하여 할아버지가 있는 힘을 다해 마당으로 기어 나와 엎드려 계시더란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방으로 모시고 정성껏 끓인 보신탕을 입에 넣어드렸다. 할아버지가 몇 숟갈 맛있게 드시더니 그만 먹겠다며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우셨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한 술이라도 더 드셔야 기운을 차린다며 잠에 빠져들려고 하는 영감을 흔들어 깨워 더 드시도록 애썼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할머니 무릎을 베신 채 평안한 얼굴로 영원히 잠드셨다고 했다. 돌담이 둘러쳐진 옛날 집에 정적만 감돌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시름시름 앓으시던 할머니를 아들이 모시어서 갔고, 노부부가 살던 집은 다른 사람에게 팔렸다. 그 집의 새 주인은 이사 오기 전에 집수리를 대대적으로 했다. 의자 두 개가 놓였던 흙마루에 나무 마루가 놓이고 커다란 유리문이 둘러쳐졌다.
그 집뿐인가. 산촌의 옛날 집이 개조 되거나 현대식 전원주택이 속속 들어선다. 누구네 어르신을 요양원에 모셨다는 소식도 간간이 들린다. 
요즘 그 할아버지처럼 가족의 품에서 세상을 하직하는 어르신이 얼마나 될까. 병이 좀 깊으면 노인요양 입소자격 기준에 의하여 요양원에 들어가거나 재가 서비스를 받게 된다. 할아버지를 지극정성 간호하셨던 할머니도 요양원에 들어가셨다는 소식이 들린다. 인간미 넘치던 예스러운 산촌 풍경이 무채색으로 덧칠해지는 느낌이다.
이제는 옛날 집 흙마루에 의자 두 개가 놓여 있던 풍경을 볼 수 없다. 그 의자에 노부부가 나란히 앉아 있던 정겨운 모습, 그 고즈넉한 산촌의 정취는 사라졌다. 사라진 풍경은 내 기억 속에서나 되살아 날 뿐이다. 그것은 미래에 내가 다시 그리고 싶은  풍경화 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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