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나무 桜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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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나무 桜木
  • 정홍용 안남화인산림욕장 대표
  • 승인 2019.04.11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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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ental cherry
정홍용 안남화인산림욕장 대표

봄을 봄답게 확실하고 화려하게 알리는 꽃은 아마도 자타가 공인하는 벚꽃일 것이다. 만개한 벚꽃은 보는 이의 눈을 황홀하게 하고 만인의 마음을 풍요롭고 안정되게 만든다.

벚나무는 영어로 Oriental cherry라고 하는데 분포지역이 영명(英名)이 암시 하듯이 역시 동양인 한국, 중국, 일본이며 원산지는 한국이다. 일반적으로 벚꽃은 일본꽃 이라고 경원하고 하대하며 경멸의 대상으로 우리의 생활 속에 여러 방면으로 부정적 의미로 사용해 온 말이 ‘사쿠라’이다.

우리가 흔히 벚꽃은 일본 국화로 알고 있지만, 사실 사쿠라(벚꽃)는 일본 국화(國花)가 아니고, 일본 국화는 국화(菊花)다.

일본 황실을 상징하는 문장(紋章)이 바로 국화이며 옛날 일제가 발행한 지폐나 동전에도 국화가 새겨져 있음을 쉽게 볼 수 있다. 튤립이 네델란드를 상징하듯이 벚꽃은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꽃으로 역사와 문화에는 물론 가슴속 깊이 각인된 일본을 상징하는 꽃이다.

그 나라 꽃도 문화의 일환으로 그들이 진출한 곳에는 꽃도 함께 따라가는 것이 자연적인 현상이므로 일본은 진해에 군항을 설치하면서 벚나무를 옮겨다 심었다. 그것이 오늘날 군항제로 발전하여 4월 초에는 해군통제부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일본은 일.미(日美) 우호의 상징으로 워싱턴 DC의 포토맥강을 따라 동서에 위치한 곳에 1912년 벚나무 3,000그루를 기증하여 포토맥 공원(Potomac park)을 조성해 주어 매년 봄이면 워싱턴 DC 시민을 비롯한 전국에서 벚꽃의 향연을 보러오는 명소로 만들었다.

옥천군도(郡道) 37호선을 따라 옥천 IC에서 안내까지의 벚꽃길은 1970년 대말 수북리 수몰에 따라 보은행 새로운 길 조성에 필자의 선친께서 군(郡)에 희사금으로 조성한 것이 벚꽃제의 밑거름이 되었다.  원래 조건은 옥천에서 고향인 안남까지 심기로 한 것이 안남을 안내로 착각하여 심고 말았다. 튤립 시즌에 네델란드 국적기인 KLM을 타면 스키폴(Schiphol) 공항 착륙 전에 5~7분간 튤립밭 상공을 선회하며 형형색색으로 수놓은 꽃의 진수를 보여주는 특별 서비스를 제공해 줌은 승객에 대한 배려와 자국의 선전일 것이다.

벚나무는 꽃이 아름다워 관상수로 뿐만 아니라 가로수로도 세계인의 많은 사랑을 받으며 퍼져 나가고 있다.

재질은 연하면서도 질기고 잘 썩지도 않으며 광택이 나고 무늬가 아름답고 가공성도 뛰어나 고급 가구재, 악기재, 정밀 기계의 목재 부분에 활용되고 있다.

일본 왕벚나무가 사실은 우리나라 제주도 한라산에서 가져간 것으로 DNA 검사에서 판명되어 일본학계를 놀라게 했다.

팔만대장경의 65%가 벚나무 목재로 쓰여졌다고 하니 벚나무가 얼마나 우수한 나무임을 묵시적으로 입증해 주고 있다.

벚나무 종류는 수종에 달하지만 그 중에서도 산벚나무(Bird's cherry)는 문자 그대로 새가 먹고 배설한 것이 발아하여 만고풍상을 겪으면서 성장하여 벚나무 중 목재로서는 으뜸으로 여겨 고가로 대접을 받는다. 일본 야마가타(山形)현 아마가타 공항에 내려 정면으로 나오면 탐스러운 사꾸란보(サクランボ=체리 열매)가 그려진 대형간판이 앞을 가로막는다.

야마가타는 체리 산지로 유명하며 봄이면 체리꽃이 장관을 이루고, 6월 중순이면 전국각지에서 체리 맛을 보러 모여든다.

일본에서 일반 가구로는 가리모꾸(カリモク)가 가장 유명하지만 의자, 벤취, 소파로는 덴도(天童) 목공이 제일 명성이 있는데, 체리로 둘러싸인 야마가타현 덴도시(天童市)에 위치해 있다. 2013년 필자와 벤택 가구 한기만 사장이 함께 간 덴도목공측에서 기업 비밀이라며 상. 하층 관람 통로를 따라 견학할 수 있지만 내부는 접근을 금하고 있었다. 천황이 견학 왔을 때도 일반인처럼 관람코스를 고수했다는 일화도 소개하며 이제는 도요타를 비롯한 벤즈, BMW 등의 최상급 고급 차종에 벚나무로 핸들을 만들어 납품하고 있단다.

1990년 아마가타에 갔을 때 체리가 너무나 탐스럽고 고가여서 묘목을 300주 사서 비행기에 실었더니 통관은 동서가구에서 알아서 해주었다.

고향인 안남에 150주를 심고, 150주는 동서가구 위 사장 화성농장에 심었다.

몇 년 후 꽃은 피어도 열매가 맺지 않더니 나중에는 고사해 버렸고, 동서가구 위 사장 것은 꽃도 피고 열매도 맺는가 하더니 역시 고사해 버렸다. 야마가타 위도가 38도 선에  걸쳐 있어 우리와 거의 비슷해 안심을 했었는데 아마도 기후와 토질 관계로 적응이 안 된 것 같았다.

중국 찡따오(靑島)와 엔타이(煙台)에 거래가 많아서 매년 6월 10일을 전후하여 체리 시즌에 일부러 맞추어 방문하여 도로 연변과 시장에서 팔고 있는 체리를 사다 정찬시에 즐겨 먹곤 했다. 그러나 중국 체리는 크기도 작고 당도가 덜해 싼 것이 비지떡이지만 그래도 미련을 못 버려 매년 때맞추어 가게 되었다.

1987년 스위스를 2개월간 여행하면서 바로 이웃인 리히덴슈타인(Lichtenstein)도 여행할 기회를 잡았다.

마침 4월 중순이라서 스위스에 접한 설산 아래 마치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명장면처럼 온갖 노란꽃과 체리가 만개한 곳을 지나게 되었다. 너무나 경치가 아름답고 날씨마저 포근하여 체리밭에 쉬고 있으니 농장주가 와인을 갖고와 함께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헤어지면서 수확철에 다시 오면 대환영하겠다 하여 다음 해 오스트리아 출장 중에 시간을 내어 6월 말에 재방문했다. 일본산, 미국산보다 크고 당도도 높은 체리를 무한정으로 내왔고, 그의 사려 깊은 배려로 톰 존스의 ‘고향의 푸른 잔디(Green Green Grass Home)’을 들으면서 재회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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