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인천강지곡 12권 등 역사적
가치 높은 수만 점 유물 창고
보은군은 탐내는데 옥천군은 ‘글쎄?’
“유물 소장고 절실” 애끓는 심경
역사를 알아야 현재를 바르게 살아갈 수 있다. 선조들의 삶은 곧 지금을 만든 초석이기에 그 초석을 바탕으로 우리는 더 진화된 방향으로 나가게 되는 것이다. 조상들이 살아온 내력을 보존하고 지키는 것은 결국 후손이 해야 할 본분이다. 옥천에 30여 년 동안 유물, 유적을 수집해온 사람이 있어 찾아가 보았다. 안내면 용촌리 가산박물관은 박희구(74) 관장이 수십 년 간 모아온 유물 유적으로 차고 넘쳤다. 한 개인이 모은 것이라고 하기엔 방대한 양이었다. 그곳엔 신미대사가 간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국내외 유일본 ‘월인천강지곡 12권’을 비롯해 고려 불교의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무구정광 다라니경인 ‘대반야바라밀다경’(고려 1046년 붓으로 쓴 불경), 1420년 조선 최초 옥천에서 간행한 ‘상설고문진보대전(유생들의 교과서)’ 등이 수집 보관되어 있었다. 박 관장은 “이제까지 개인적으로 이 모든 것을 수집하고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지만 이제 나이도 들고 누가 이 유물을 보존해 나갈지 걱정”이라고 했다. 이제 개인 차원이 아니라 군 차원에서 수장고를 짓고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유물을 안전하게 보장해 후손들에게 조상의 숨결을 전해주고 싶다는 그의 바람을 옥천군이 받아들일지 지금으로선 미지수다. 가산박물관에 관한 박희구 관장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허물어져가는 박물관
전시실이라고 하기엔 방치된 느낌이 들었다. 전시실 전등은 들어오지 않았고 먼지가 가득했다. 넘치는 유물, 유적은 제 빛을 발하지 못하고 불꺼진 전시실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또 다른 전시실은 간이로 지어진 건물 안에 있었다. 들어가는 진입로는 풀이 무성했다. 간신히 들어간 제2의 전시실은 새들이 다녀갔는지 여기저기 배설물이 떨어져 있었다. 박희구 관장은 “하루라도 들리지 않으면 이렇다”며 비를 들고 치우기 시작했다. 70 중반의 그가 혼자 이 모든 것을 지켜내기엔 힘에 부쳐 보였다. 그는 “젊었을 적엔 혼자 힘으로도 충분했는데 이젠 힘이 든다”며 “아침 내내 주변의 풀을 베고 정리했지만 표도 안난다”고 안타까워했다. 가산박물관의 수많은 유물, 유적이 먼지에, 새들의 배설물에 장마철의 습기에 몸살을 앓고 있는 현장이었다. 선조들의 숨결이 우거진 잡풀 속에 사라져가는 것을 지켜보는 박희구 관장의 눈빛은 씁쓸함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가 30여 년간 수집해온 유물, 유적을 보관할 수장고가 필요하다고 옥천군에 간청한 제안은 아직 답이 없는 상태라고 했다.
△30년간 모은 고서가 1만권
박희구 관장이 처음부터 골동품을 모은 건 아니었다. 그는 44세 되던 해 대전에서 안내면 답양리에 들어와 안내기도원을 설립한다. 어느 날 벼를 훑어내리는 ‘홀테’가 버려지는 것을 보고 안타까움을 느낀 박 관장은 고물상에 가서 그것을 사다 놓는다. 어린 시절 귀한 것으로 생각해 왔던 물건이 고물상에 그대로 버려지는 것이 씁쓸했기 때문이라고. 그 후 정기적으로 골동품 가게를 돌며 유물을 사 모으게 된다. 처음에는 그림을 사 모았다. 그림은 진품이 아닌 것이 너무 많아 어느 순간 고서 쪽으로 관심을 돌린다. 이렇게 30여 년간 모아진 고서가 만권이 넘는다. 박 관장은 “이러한 고서 중에는 중요한 자료가 많다”며 “대반야바라밀다경은 문화재 등록을 신청해 놓고 문화재 지정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또한 ‘상설고문진보대전’은 1420년 이호 군수에 의해 조선 최초 옥천에서 찍은 인쇄물로 유생들의 교과서로 쓰인 중국의 시문집이다. 이것은 옥천의 중요한 자료라고 강조했다.
박희구 관장은 “힘들게 모아 보존하려고 애썼지만, 우리 세대가 지나가면 다 잊어버릴 것”이라며 “귀중한 유산을 그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스럽고 안타깝다”고 전했다.
그는 옥천군에 고문서 1만 권을 보존할 수장고를 지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수장고가 지어져 고문서들이 안전하게 보관되길 바라는데 아직까지 이에 대한 어떤 대답도 듣지 못한 상태”라며 아쉬워했다.
△귀중한 보물들 군에서 지켜야
가산박물관은 2008년 박물관으로 허가를 받는다. 박 관장은 그동안 모아둔 고문서와 유물 유적을 전시하며 개인박물관으로서 면모를 갖추기 위해 여러모로 공을 들인다. 이곳에 전시된 목판, 옥쇄, 마패, 전통문양 등을 이용해 다양한 옛것을 체험하고 문화재를 이해할 수 있는 프로그램 활동을 펼쳐나가기도 한다. 1950년 대 초등학생들이 사용했던 공책을 한 자리에 모아 전시회를 한 적도 있다.
그는 이제까지 다양한 활동으로 가산박물관을 알리고 우리 선조들이 사용했던 유물을 보고 배울 기회를 줌으로써 역사를 기억할 수 있도록 노력해 온 것.
박 관장은 “돈이 많이 들어갔다. 내가 나이도 있고 개인으로서의 능력은 여기까지”라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앞으로는 군 차원에서 30여 년간 수집하고 보관한 역사적 유물과 유적이 그대로 사라지지 않도록 관심을 가져달라”고 간청했다.
△월인천강지곡 12권 소장
“얼마 전 보은군수와 직원 다섯 분이 찾아와 월인천강지곡 12권을 보은군에 맡겨 신미공원에 유치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제안했다. “나는 보은이 아니라 옥천군에서 유물·유적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수장고를 지어 도난과 화재로부터 이를 지켜줄 수 있기를 바란다. 행여 불이라도 나서 사라지면 이것은 대한민국의 역사적 증거가 사라지는 거나 마찬가지다. 개인박물관 지원법이 있지 않은가. 나이 들어 더 이상 이를 지켜갈 힘이 없다”고 박 관장은 안타까운 심경을 재차 토로했다.
현재 월인천강지곡 12권에 대한 논문을 준비 중인 이상주(전 중원대학교 한국학과) 교수는 “월인천강지곡 12권은 신미대사가 지은 것으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가능성을 부정할 수 도 없는 상태”라며 “충분한 고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만약 이것이 진품이라고 판명되면 이것은 대단한 문화재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가산박물관에는 월인천강지곡 뿐 아니라 양적으로나 분야별로 엄청난 양의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며 “그 어디에도 개인의 힘으로 이 정도의 문화유산을 수집한 분은 드물다. 그동안 군이 너무 무심했다. 지역에서 문화 분야에 군민 대상을 줘야 할 분”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박 관장의 제안에 군 관계자는 “사설박물관 시책에는 학예사보조금과 운영프로그램 지원만 있을 뿐 시설에 대한 사업지원은 없는 상태”라며 “타 시군 사례를 살펴 지원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