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에 남은 정지용 족적- 芭蕉立夏 -
상태바
거제도에 남은 정지용 족적- 芭蕉立夏 -
  • 김묘순 문학평론가
  • 승인 2020.08.13 11: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지용의 흔적이 거제도에 남아있다. 깜짝 놀랐다. 반가웠다. 눈앞이 훤해졌다.
김묘순 문학평론가
김묘순 문학평론가

 

芭蕉立夏

庚寅五月O 靑馬宅

靑谿(낙관)

지용 (낙관)

 

芭蕉立夏’. 청계(화가 정종여의 호)의 그림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큼직한 선과 굵은 농담이 화면에 가득하다. 아주 과감하고 호탕한 그림이다.

오른쪽에 파초를 화폭 가득 채우고, 왼쪽 아랫부분에는 병아리 두 마리를 그렸다. 병아리 한 마리는 선명하게 다른 한 마리는 희미하게 처리하였다. 왼쪽 윗부분에 위의 내용이 적혀 있다. 물론 모두 세로쓰기를 하였다.

정지용의 낙관은 양각으로 지용을 세로로 새겨 찍었다.(출처:거제시 둔덕면 청마 기념관 1층 전시실. ‘O’는 글자 모양을 확신할 수 없어 ‘O’로 표기)

청마는 통영에 청마문학관이 있어서 통영 출생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경남 거제시 둔덕면 방하리에서 태어나 2살 때 충무로 이주하였다. 이곳에 청마 기념관과 생가가 있다.

청마 기념관에는 정지용의 시에 감동을 받던 무렵(22), 청마는 유치진과 함께 회람지 소제부를 발간하였다고 적고 있다. 청마는 평양에서 사진관을 운영(1932)하고 정지용과 인연을 맺었던 조벽암의 주선으로 화신연쇄점(1934)에서 일하였으며 통영협성상업학교(1937), 통영여자중학교(1945) 교사로 취임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1940년대 후반 조벽암의 건설출판사에서 정지용이 하숙(졸고, 정지용의 하숙집, 옥천향수신문, 2017. 5. 18, 11면 참조)할 때 유치환이 이곳을 자주 드나들었다는 구술(조성호 1942-2019)이 있었다. 정지용의 시를 좋아하였고 그를 따랐던 청마는 19505월 정지용과 청계를 맞는다.

정지용은 청계와 함께 195057일부터 625일 부산, 통영, 진주를 여행한다. 이 여정에서 정지용은 기행록을 쓰고 청계는 삽화를 그려 국도신문에 총 18편의 글을 싣게 된다. 이 기행의 여정 중, 정지용은 청계와 함께 통영에 있는 청마의 집을 방문한다.

청마는 정지용의 시를 좋아하였다. 그러니 청마는 기뻐하며 정지용과 청계를 문화유치원 2층 서재로 모신다. 당시 청마의 부인이 문화유치원을 운영하였고 청마는 이 문화유치원 목조건물 2층에서 작품을 쓰기도 하고 사진 작업을 하기도 하였다고 전한다. 정지용은 이때 청마의 안내를 받으며 제승당, 충렬사, 미륵산 등을 둘러보며 6편의 기행문을 쓴다.

 

술은 내일부터 안 먹는다. 오늘은 마시자! 어찌 두()러누웠는지 불분명하다. 술 깨자 잠도 마저 깨니 빗소리가 토드락 동당 거린다. 가야금 소리 같은 빗소리. “청계야! 청계야! 비 온다! 비 온다!” - 남해오월점철(국도신문, 1950. 5. 12) 중에서, ( )와 문장부호(. 마침표)는 필자 주.

 

기행 중 정지용은 빗소리를 듣는다. “가야금 소리같은 빗소리가 토드락 동당거리며 내려앉는다. 그는 특유의 목소리로 청계를 부른다.

청계야! 청계야! 비 온다! 비 온다!”.

이 소리가 그립다. 정지용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청마 기념관과 생가를 분주히 오가는 사이.

김묘순! 김묘순! 비 온다! 비 온다!”

우산을 편 사내가 있었다. 고마운 사람이다.

굵은 빗방울이 함석지붕에 알밤 떨어지는 소리를 내며 청마생가에 안전하게 착지한다.

그 빗소리 속에 정지용이 청마를 부르는 소리와 한 사내가 여인을 부르는 소리가 섞여 흐른다.

芭蕉立夏!

여름 문턱에 선 파초처럼 우리는 광합성 할 수 있는 날을 꿈꾼다.

 

 

*8월14일부터 매주 목요일 10시 

장소:훈민정음

김묘순 원장님 지도 정지용과 놀자 수업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