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으로 눈물 닦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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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으로 눈물 닦기
  • 김묘순 문학평론가
  • 승인 2020.08.27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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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정희의 증언과 슬픈 단어들 -
김묘순 문학평론가
김묘순 문학평론가

 

최정희는 모윤숙과 다또상이라는 소형 자동차를 탔다.

어느 날 입원하고 있는 이광수의 문병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그 다또상에서 킬킬거리며 웃다가 다또상운전사에게 쫓겨났다. 그리고 그들은 그날 집까지 걸어가야만 했다.

운전사는 소형 자동차인 다또상을 업신여기는 사람에게 차를 태워줄 수 없다며 호통을 치고 화를 내며 길에다 차를 세웠다. 그들을 꼼짝없이 다또상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차에서 내려야 했던 이유는 정지용, 1938사내대장부가 야간 체조를 좀 했기로서니…」(옥천향수신문, 2020. 8. 20, 4)에서 연유되었다. 그들은 다또상’(정지용 별명)을 부르며 야간 체조에 대해 이야기하며 킬킬거렸다. 그런데 운전사는 그들이 탄 다또상을 업신여기며 비웃는다는 생각에 화를 냈다. 당황스러운 오해가 발생하고 말았던 것이다.

정지용의 별명 다또상과 그들이 탄 자동차인 다또상이 같기에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그들은 이렇게 일제강점기라는 어두운 시대를 웃음으로 눈물 닦기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최정희는 삼천리문학 편집을 하며 정지용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인연은 정지용이 사라졌던 시기까지 이어졌다.

625 한국전쟁 당시 정지용은 정치보위부에 자수하려고 갔다. 그러나 그 이후 그는 끝내 세상 밖으로 드러나지 못하는 운명을 맞는다. 어딘가에 그에 관한 자료가 숨어있거나 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답답하다.

최정희는 당시를 아래와 같이 증언한다.

 

(중략) 강압적으로 나오는 남자의 태도를 어디서 보았던지 정지용 시인이 불쑥 튀어 나섰다. 강아지 같은 사람이 뭘 잘못했다고 자수하라는 거요. 대한민국에서 가장 백지같이 산 사람일거요.

정지용 시인은 나를 감싸주었다. 정지용 시인은 이십 명 가까운 동료들과 자기는 자수하러 나서면서도 날더러는 그냥 있으라고 당부했다. 그러던 정시인은 돌아오지 못했다. 정시인은 자수하러 가면 돌아 못 오는 일이 있을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 찬란한 대낮, 문학과 지성사, 1987, 264.

 

이는 정지용이 월북이 아니라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

현재 월북과 납북으로 추정되는 자료들이 다수 남아있다. 그들 나름대로 설득력도 있다. 그러나 정확한 내막은 여전히 안개에 가려져 볼 수가 없다.

답답하다.

정지용은 이데올로기와 무관한 한국의 현대 시인이다. 그는 일제강점하에서도 우리말을 지키려 노력하였고 언어의 중요성에 대하여 가장 깊이 성찰하였던 인물이다. 그처럼 우리말을 지키기 위하여 우리말을 갈고 닦았던 조선어의 달필가는 드물 것이다.

글이 요지를 잃고 흔들린다.

가끔 정지용에 대한 글을 서술하려면 마음에 균열이 심하게 생길 때가 있다.

최정희가 정지용을 지칭하는 용어도 다르다. 1983년에 발간한 한국문단이면사에서는 “J시인으로, 1987년에 발간한 찬란한 대낮에는 정지용으로 밝히고 있다.

“J시인은 월북과 관련돼 정지용을 밝히기가 좀 껄끄러웠을 때 표현으로 보인다. 그러면 “J시인이 정지용이라는 것의 유추는 어찌 가능한 것인가? 이는 “J시인휘문고보 영어 선생이라는 것, 최정희가 삼천리문학 편집 당시 북아현동에 같이 살았다는 것, 그들의 친분이 두터웠던 것 등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1983년과 1987. 두 시기 모두 정지용에 대한 해금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1983년과 1987년의 온도 차는 있었다. “J시인정지용이라 부를 수 있는 환경이 조금씩 조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대한민국의 슬픈 역사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정지용“J시인이라 부를 수밖에 없었던 시대도 있었다. 그리고 최정희는 소설가·기자·친일반민족행위자(한국민족대백과)”로 평가받고 있다.

모두 시대가 만들어낸 슬픈 단어들이라는 생각이다. 그냥 웃으며 눈물을 닦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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