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는 말이 있다. 일평생을 쉼없이 달려온 황성하(64) 씨는 어느 순간 그 말을 깊이 체감했다.
옥천이 고향인 그는 대전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수도권에서 대학교를 졸업한 후 잠시 교편을 잡았다.
이후 영상계통의 연구소에 입사했고 그 연이 이어져 1990년 초 대한민국에 케이블 TV가 처음 생겼을 때 방송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방송사 운영을 마친 후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대학 보직을 맡는 등 끊임없이 일에 전념해 온 그는 어느 날 스트레스로 인한 몸의 과부하를 느꼈다.
평생을 일에 전념해 온 그가 아무 생각없이 놀던 어릴 적을 회상했을 때 생각난 곳이 바로 고향 옥천이었다.
성공적이지 않았던 첫 수확, 새로운 영감 얻어
그렇게 그는 고향의 땅을 찾아 일단 나무를 몇 그루 심어보고 본가가 있는 수도권에서 왔다 갔다 하며 길러 보기로 한다.
그가 시도한 첫 작물들은 매실과 감이었다. 하지만 2012년 가을, 첫 수확을 해보니 안타깝게도 작물이 많이 열리진 않았다.
첫 작물 수확 후의 안타까움도 잠시, 한국의 기후 변화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던 그는 ‘한국의 기후가 몇 해간 급격하게 열대성으로 바뀌어왔고 앞으로 바뀔 가능성도 아주 큰데 장기간을 바라봤을 때 기존의 농작물 생산이 가능할까’라고 고민했다.
꼬리를 물고 물었던 생각이 어느정도 정리되고 ‘열대지방 작물에 도전해보자̓라고 마음먹었을 때 그의 눈을 사로잡았던 것이 바로‘열매마’다.
아프리카가 원산지로 알려진 열매마는 동남아와 일본을 거쳐 약 10여 년 전 한국에 상륙한 아열대 작물이다. ‘마’라고 하면 땅속에서 자라 길쭉한 모양새를 한 참마가 생각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열매마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덩굴에서 자라난다.
열매마가 상품성을 가진 작물로써 한국땅에서 본격적인 재배가 이뤄진 것은 약 5년 전부터인데 아직 이 마를 부르는 정식 명칭은 없다.
다만 덩굴에서 열리는 마의 특성을 따라 우주마·하늘마·덩굴마·열매마 등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을 뿐이다.
열매마 재배 통해 고향에서 제 2의 인생 시작
매체를 통해 얻은 정보로 열매마의 가능성을 본 그는 옥천에서 시험재배를 거쳐 마농사를 시작했다. 인생의 시작점인 고향에서 이 열매마와 함께 다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것이다.
열매마는 참마와 비교했을 때 주요 성분은 비슷하지만 뮤신·칼슘을 수 배 더 많이 가지고 있어 골다공증·숙취해소·소화촉진 등에 효과가 좋다.
그는 “열매마 보관에 단 하나 주의할 점이 있다면 절대 냉장고에 보관하지 말아야 한다”며 “냉장고에 보관하게 되면 외형은 변하지 않지만 속은 무르게 된다”고 했다.
현재 한 달에 3~4번씩 본가와 옥천을 오가며 지내고 있는 황 씨는 “자연 속에서 살다 보니 스트레스 얻는 일도 적고 건강도 좋아졌다”고 했다.
과감하게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그의 귀농 생활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