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과학의 결정체 ‘해인사 장경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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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과학의 결정체 ‘해인사 장경판전’
  • 김수연기자
  • 승인 2020.12.31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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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판전 입구(출처 유네스코세계유산)
장경판전 입구(출처 유네스코세계유산)

 

몽골의 침입으로 고통 받던 고려 사람들은 불교의 힘으로 국난을 극복하고자 1237년부터 1248년까지 팔만대장경 제작에 힘썼다. 하지만 당시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전용 서고가 따로 존재하지 않아 강화도의 선원사에 보관됐다가 조선 초에 이르러서야 해인사 장경판전에 보관됐다.
다만 해인사의 정확한 건립시기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판전 건축을 시작한 시기는 세조 3년인 1457년으로 추정한다. 또한 기와 등에 새겨진 홍치원년(弘治元年, 명 황제 홍치제의 연호)을 바탕으로 완성시기는 1488년이라고 추정한다.
장경판전은 기존의 불교 건축물과는 달리 매우 단순하고 수수한 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화려한 것을 지양하던 유교에 따른 것으로 추측한다.
당시 목공들은 장경판전 건물 네채를 네모 모양으로 배치했는데 남쪽과 북쪽엔 정면 15칸의 큰 규모의 건물이, 이 두 건물 사이 동쪽과 서쪽엔 작은 건물 두 채가 있다.
남북으로 배치된 수다라장과 법보전은 건물 전체가 서남향을 바라보고 있어 해가 동쪽에서 떠 서쪽으로 지는 동안 모든 경판에 한번씩 햇빛이 비친다.
또한 장경판전 벽의 위아래로 배치된 살창은 크기가 서로 다른데 건물 앞면엔 윗창이 작고 아래창이 크며 뒷면은 그 반대로 아래창이 작고 윗창이 크다. 이 구조 덕분에 밖에서 들어온 바람이 건물의 내부를 골고루 순환하는 대류현상이 쉽게 일어난다.
통풍과 환기가 중요한 목판 관리에서 건물의 배치와 창살이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건물 바닥도 팔만대장경 보존에 큰 기여를 했는데 바닥을 만들 때 모래, 횟가루, 숯, 소금을 차례로 놓아 습도가 높은 날엔 습기를 빨아들이고 건조한 날엔 수분을 내보내 자연적으로 습도를 조절한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장경판전의 건물이 허술하다 생각해 무쇠 기와로 바꾸거나 콘크리트 건물에 경판을 옮겨놓으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모두 결로, 뒤틀림, 기둥과 벽에 금이 가는 문제 등으로 무산됐다.
이처럼 중세 과학 기술의 집약체인 장경판전은 1200년대에 제작된 팔만대장경이 현재까지 큰 뒤틀림이나 결로로 인한 피해 없이 8만여장 전체를 무사히 보존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일등공신으로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이에 더해 2007년엔 팔만대장경판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으며 세계에서 유일하게 세계문화유산과 기록유산이 한 공간에서 지정된 사례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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