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생활 42년 동안 27번 이사
육사 35기로 입학 소위에서 중장
현재 건양대 군사학과 석좌교수
옥천은 ‘늘 꿈에 그리는 고향’
“안중근 의사가 얘기한 군인 본분의 핵심은 ‘위국헌신의 길’이다. 그래서 생도 때부터 내 생명 내 조국을 위해 늘 암송하며 국가 안위를 위해서 스스로의 신념과 스스로의 다짐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군인의 길이 남아(男兒)로써 가장 의미 있는 길이 아닌가 생각하며 그것이 흐트러지지 않게 늘 다짐하며 살아왔다.”
대전광역시가 지난 7월 26일 시청 대회의실에서 지난 대선 기간 윤석열 대통령이 “대전을 국방혁신도시로 만들겠다”며 발표했던 방위사업청 이전 공약은 지역 대표 공약으로 반영돼 ‘방위사업청 대전 이전’을 조속히 실현하기 위해 ‘국방혁신도시 대전 범시민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 출범식을 가졌다. 이 출범식에서 추진위 공동위원장으로 황인무 전 국방부 차관과 이장우 대전광역시장이 맡게 되었다. 방위사업청은 현재 경기도 과천시 정부청사에 있으며 산하기관으로 국방과학연구소와 국방기술품질원 등이 있다.
12남매 중 11번째
죽향초‧옥천중 졸업
옥천군 출신 황인무 추진위원장이 ‘국방혁신도시 대전 범시민 민간 공동 추진위원장’(이하 위원장)이 된 후 추석을 맞아 고향 옥천을 찾으면서 황 위원장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12남매 중 11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죽향초등학교와 옥천중학교 졸업(20회), 대전고등학교(이하 대전고)를 졸업했다. 1975년에 육군사관학교 35기로 입학해 1979년에 소위 임관부터 육군 중장으로 예편하기까지 전후방 각지를 오가며 군인의 삶을 살아왔다. 육군 중장으로 예편 1년 후 국방부 차관을 마지막으로 공직생활을 정리했다. 현재 건양대학교 군사학과 석좌교수로 있다.
황 위원장은 군인으로서 결혼생활 42년 동안 27번을 이사하며 손수 이삿짐을 싸고 풀며 전방의 산골짜기에 근무하면서 고생도 많이 했다. 선친은 형제가 많은 집안에 군인으로 어진 장군이 되라며 ‘인무(仁武)’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고등학교 수석 입학 후 초대된 대전 MBC 대담프로에서 장래 희망 질문에 군인이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그는 ‘인무’라는 이름의 뜻을 새기며 결국 장군이 되었다. 그는 고생도 마다하고 잘 믿고 따라준 가족에 늘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학창시절에 어떤 학생이었는지
집에 오면 집안 일 도와주고 학교 가면 학교 공부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런데 부친께서 한학자시라 공부에 열의가 많으셨기에 엄하게 가르친 것 같다. 중학교 때에도 스터디그룹으로 영어와 국어 과외를 했던 기억이 있다. 옥천은 생활권이 대전으로 중학교 졸업하면 으레 대전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학교 안 교정에 큰 배롱나무 앞 비석에 수석 입학과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비석이 어떻게 세워졌는지
대전고는 그 당시에 시험을 봐서 들어갈 때로 옥천의 중학교에서 2,3명이 입학하기가 어려웠다. 처음에 떨어져 대전에서 입시학원 다니며 재수해서 들어갔다. 그때 고등학교 입시학원이 상당히 활성화되어 있던 시기인데 대전에도 유명한 학원이 많이 있었다.
지금 보면 부모님의 열의가 대단하셨던 것 같다. 어디 아무 고등학교라도 보내줬으면 되는데 시골에서 뒷바라지를 다 해주셨다. 시골에서 대전고를 수석 입학했으니 특이한 일이라 그때 옥천중학교에서 기념패를 만들어주니 선친께서 나무 백일홍(배롱나무)을 기념으로 식수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 자리가 당시에는 강당 앞이었는데 지금은 강당 건물이 허물어져 사라지고 주차장으로 바뀌면서 이젠 주차장 앞이 되었다. 이식할 당시에도 백일홍 나무가 컸는데 지금은 상당히 더 커졌다. 50년이 지났으니 나무의 수령이 100년 가까이 된 것 같다.
선친 성묘 기분은 어떤지
죽향초등학교 앞쪽으로 해서 정지용 생가를 통과하고 가다 보면 육영수 여사 생가도 보게 된다. 늘상 올 때면 옛날 초등학교, 중학교 다니던 생각이 새록새록 난다. 그땐 완전 시골이었는데 지금은 정비가 잘 되어 있는 아름다운 마을로 변해있는 걸 보면서 볼 때마다 감개무량하다. 고향에 오면 늘 품어주고 거기에 꼭 안겨서 옛날을 생각하며 회상하고 그 추억을 바탕으로 해서 힘을 얻고 했던 것 같다. 지금도 옥천에 오면 설레이는 마음이 든다. 어린 시절을 워낙 의미있게 보냈던 기억이 있어 중학교 졸업한 이후 대전으로 나가며 외지에서 생활했으니 고향에 모처럼 온 기분이 좋고 늘 반겨주는 느낌이라 어머니 품처럼 고향에 안기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게 고향이 아닌가 싶다.
방위사업청 이전이 빠르게 추진되는 이유는
방위사업청을 대전으로 이전시키는 게 현 정부의 공약사항이다, 새로 당선된 대전시장 이장무 시장님과는 옛날부터 이런 얘기를 많이 하고 만남을 가졌던 분으로 방사청이 대전에 이전한다면 조기 이전을 했으면 좋겠다고 상의도 했었다. 기관이 지자체로 옮기는 것이기 때문에 행정적으로만 일해도 되지만 조기 이전에 대한 대전 시민의 뜻을 모아서 중앙회에 뜻을 전달하기 위한 뒷받침을 하는 게 좋겠다고 해서 범시민 대책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시장님과 함께 가급적 빨리 대전으로 이양을 해서 대전을 일류 경제도시를 만드는데 모멘텀이 되면 좋겠다. 위원회에서도 그런 방향성을 가지고 뜻을 같이 모으고 있다.
대전은 국방혁신 기관들이 많이 산재되어 있는 도시이다. 계룡대 본부부터 항우연, 국방연구소가 있고 대덕연구단지라는 과학의 메카이자 성지라고 할 수 있는 곳에 많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기에 방위사업청이 대전에 자리 잡음으로써 어떤 시너지 효과가 나올 수 있다. 그래서 국가가 지향하는 방위사업청을 수출 핵심기구로 활성화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며 지역 균형발전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옥천은 행정구역상 충청권이지만 생활권은 대전이기에 방위사업청과도 많은 연관성을 가지고 일이 잘 이루어지리라 보고 있다.
위원장은 어떤 일을 하는지
방위사업청이 대전지역으로 새롭게 둥지를 틀 수 있도록 주변에서 발생하는 상황정리를 잘하고 사안 사안에 대해서 매끄럽게 추진될 수 있도록 하는 일을 한다.
위원회는 방위사업청의 대전 조기 이전에 따르는 여러 가지 절차상의 로드맵을 만들고 그 로드맵에 따라서 방위사업청과 대전이 수시로 긴밀한 협의로 디테일 부분을 서로 협조해 나가는 기구라 보면 된다. 또한 아젠다를 도출하고 그 아젠다를 어떻게 추진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중지를 모으는 대표기관이다. 이전을 통해서 지역발전과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함께 윈윈할 수 있는 좋은 상생의 모델이 되었으면 좋겠다.
옥천은 어떤 곳인지
‘옥천’ 이름이 가르치듯이 산새가 수려하고 자연환경이 빼어난 곳으로 ‘옥천’하면 생각나는 것은 향수이다. 향수 노래가 가리키듯이 늘 꿈에 그리는 고향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는 그런 곳이 옥천이 아닌가 싶다.
거주지는 대전이지만 늘 옥천과 함께 있고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옥천에는 학교를 같이 다녔던 가까운 친구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수시로 옥천을 왕래하면서 옥천 소식을 듣고 필요한 얘기도 같이 나누는 그런 공동체 생활을 옥천에서 함께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