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10월 1일 국군의 날 기념 Special Interview- 3代가 육군 부사관 집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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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10월 1일 국군의 날 기념 Special Interview- 3代가 육군 부사관 집안
  • 김동진 기자
  • 승인 2022.09.29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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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와 국민에 충성하는 게 제일 우선
6‧25 참전 해외 용사와 가족에 감사
3대(代)가 육군 부사관 집안으로 오랜만에 함께 모인 박흥수 씨, 박용호 씨, 박범석 씨(왼쪽부터)가 손을 잡고 있다.
3대(代)가 육군 부사관 집안으로 오랜만에 함께 모인 박흥수 씨, 박용호 씨, 박범석 씨(왼쪽부터)가 손을 잡고 있다.

옥천군 군서면 상중리에 대한민국 육군 부사관 3대(代)가 모였다. 

주인공은 상중리에서 평생을 살아온 할아버지 박용호(92) 씨, 아버지 박흥수(59) 씨, 손자 박범석(28) 씨로 이 집안은 국가보훈처에서 인정한 ‘국가유공자의 집’이다.

할아버지 박용호 씨는 6·25 참전 용사로 국가유공자다. 1951년 10월 3일 입대해 제1훈련소 조교로 휴전 후 제1훈련소가 해산되며 29사단으로 편입돼 1956년 12월 이등상사(지금의 중사)로 제대했다. 전역 후 예비군 소대장으로 45세까지 국가를 위해 봉사하며 어려웠던 시절 평생을 농사지으며 집안을 일으켰다.

아버지 박흥수 씨 또한 결혼 한 달 만에 달콤한 신혼도 뒤로 한 채 입대, 직업군인의 길을 걸었다. 만 33년을 특공대에서 몸 바쳤다. 젊을 땐 씨름으로 우승도 했으며 수많은 봉사와 알뜰한 삶으로 ‘저축왕’이 되기도 했던 모범적인 부사관으로 대통령 포장도 받았다. 특히 제대 후에는 부대발전을 위해 매년 2백만 원씩 기부, 인조잔디 시설 지원, 부대 입구에 아치형 구조물 설치, 전사한 장병 동상 설치 등 부대발전에 공헌한 점을 인정받아 오는 10월 1일 국군의 날 40주년 행사에서 육군 5군단장 감사패를 받을 예정이다.

손자 박범석 씨도 현역 중사로 황금박쥐부대 특전사에서 복무 중이다. 요즘 젊은이들처럼 자유롭고 편한 세상을 누릴 만도 한데 군인으로서 국가의 소중함에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자 군인의 삶을 선택한 건강한 젊은 청년이다. 대전대 소방방제학과 2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입대해 직업군인이 되었다.

옥천향수신문이 이들 3대를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먼저 할아버지 박용호 씨.

요즘 근황은 어떠신지

아침 9시에 옥천읍 행 버스를 타고 옥천노인정에서 사람들과 어울려서 철학도 가르치며 어울려 놀고 있다. 우리 중에는 6·25 유공자들이 있다. 전투한 군인이 참전유공자인데 근래에 와서 전방에서 밥 나르거나 지서나 면사무소 근무했던 사람도 참전유공자가 되었다. 

전쟁 당시 기억나는 일이 있는지

그때 우리가 하루 2개 중대를 교육했는데 전쟁 중에 힘들게 교육받았던 군인들이 많이 죽어서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제1훈련소 조교로 있을 때 훈련병들에게 사격만 가르쳤다. 각 사단 사격대회를 광주 보병학교에서 했는데 사격대회 3번 나갔다.

오늘 3대가 함께한 기분이 어떠신지

우리 3대가 명절 때 모이기 어려운데 이렇게 모여서 즐겁고 행복하다. 그때는 전시라 이등상사가 되어서야 첫 휴가를 갔다. 휴가 와보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셔 삼오제가 끝났을 때였다. 

손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가장 중요한 것은 군인이 건강해야 나라가 편안하다는 생각을 잊지 말고 항상 건강했으면 한다. 또한 남한테 절대적으로 악하게 하지 마라. 돕고 웃으며 살고 남이 잘못한 게 있을 때 말로 잘 타이르면 그 사람이 공경하고 더 잘한다. 
다음은 아버지 박흥수 씨.

가족만의 특별한 점이 있다면

‘병역 명문가’라고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까지 3대가 군인 가족이면 국가에서 인정해주는 제도가 있다. 지금 신청하려고 준비 중에 있다. 자격은 충분히 된다. 국가에서 군인 가족이라는 명예가 주어져 자랑스럽다.

어떻게 해서든 자식들 군대 안 보내려는 시대에 아들이 부사관으로 복무하게 돼 한편으론 영광스럽고 국가를 위해 3대가 헌신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아들이 어려운 특전사로 복무하는데 어떤 생각이 드나

특전사를 신청한다 했을 때 힘든데 잘 생각해서 결정하라고 했다. 자식을 힘든 부대로 보내려고 하는 부모는 없다. 가기 전에 열심히 운동하고 체력이 좋아야 특전사에서 이겨낼 수 있다는 얘기를 했다. 가겠다는 마음이 굳으니 칭찬해줄 수 밖에 없었다. 

나도 병사로 생활하다가 푸른 제복을 입고 군 생활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지원했다. 

일반 보병과 특전사, 해병대는 차이가 있다. 그 자체만으로 훈련 강도가 다르고 쉽지 않다. 아들도 똑같은 길을 걸어가니 ‘안 되면 되게 해라’는 구호처럼 실천한다면 훈련이든 힘든 일이든 안 되는 게 없을 거다. 힘들고 어려운 길을 가는 아들이 대견스럽고 감사한 마음이다.

군 생활과 아들에게 당부한다면

결혼해 가족과 자식이 있는 상태에서 혼자 포천에 떨어져 특공대 복무했던 때가 제일 힘들었다. 

군인은 나라와 국민에게 충성하는 게 제일 우선이다. 가족도 있지만 가족보다 나라와 국민에게 충성한다는 정신으로 건강하게 복무했으면 한다.
끝으로 손자 박범석 씨.

특전사 부사관이 된 계기는

소방관이 되고 싶어서 의무 소방에 지원했는데 떨어지고 친구들도 군대 가고 해서 병사로 먼저 입대를 했다. 8사단에서 복무할 때 소대장과 진로상담에서 특전사로 가면 공수와 해외 파병도 갈 수 있다 해서 지원해 한 번에 합격해서 특전사가 되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실전에 참전하셨고 아버지는 30년을 넘게 특공대로 복무하셨던 분들이다. 전투태세에 대비한 실전적 훈련에서 두 분의 정신이 도움이 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젊은 군인으로서 6‧25에 대한 생각은

군인이 되고 할아버지께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아버지께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요즘 군에서도 부대마다 정신교육 시간이 마련되어 있어서 일과 중에 6·25에 관한 정신교육을 많이 하고 있다.

전투태세를 완벽히 갖추고 국가와 국민을 지킨다는 마음으로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다시는 6‧25와 같은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지만 만약에라도 일어난다면 최전선에서 목숨 바쳐 싸울 수 있다는 각오로 군 생활을 한다. 

해외에서 본인의 나라도 아닌데 대한민국을 돕기 위해 목숨 걸고 싸우다 순직하셨던 전우와 가족을 챙기는 마음은 정말 감사한 일인 것 같다. 해외 파병으로 빈민국을 다녀왔는데 6·25 당시 못살고 못 먹던 당시 우리나라가 생각나 마음이 아팠다.

힘들거나 어려운 점이라면

제일 힘든 게 사람이다. 좋은 사람이랑 있으면 편하고 좋고 조금 나쁜 사람이랑 있으면 어렵다. 또 사람이 떠나고 나면 그 빈자리가 어렵다. 의무복무기간 4년 지나고 나서 동기들이 전역하거나 친하게 지냈던 중대원, 부대원들이 전출가면 허탈한 느낌이 들었다.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가 병사 때부터 7년 넘게 만나며 묵묵히 잘 기다려줘서 힘이 된다. 

특기가 있다면

사격으로 특전사 후보생 때 교육성적이 좋아서 3등했고 얼마 전 저격수 교육에서 1등을 했다. 기회가 된다면 저격수도 하고 싶고 군인들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여자 저격수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특전사에서 총을 많이 쏘다 보니 그런 경험이 사격에 도움이 된 것 같다.

꿈이 있다면

서울예술사이버대학 체육학과를 다닌다. 부대에서 운동을 많이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체육학과를 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모르고 철봉에 매달려서 하다가 이론적으로 근육이라던지 뼈의 구조를 알게 되고 초임 하사나 팀에 좋은 방법을 알려주고 하는 게 좋다. 꿈은 건강하게 행복하고 소박하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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