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려오는 소문에는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다른 국립대학이나 국영기업체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일간지에 전북대학교 총장 임명 건도 나와 똑같은 케이스였다. 전북대 교수들도 시위를 했다고 하니 나만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니구나 싶었다. 그래서 더 실망이 컸다. 우리 학교처럼 재선거를 치러 자기들이 시키려고 찍어놓은 교수가 선출되어 명단에 올라올 때까지 다시 선거하라고 하는 수법이었다. 나는 학장대행을 하는 B 교수에게 교수들은 내가 설득을 할 테니 교육부 말대로 가능한 한 서둘러 학장 선거를 치르자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선관위원장을 맡아 진행하겠다고 했다. B 교수는 어떻게 선관위원장을 맡기느냐며 고마워했다. 선관위원장을 맡은 나는 병원 의료부장, 중구의 VIP 등을 선관위원으로 선정하고 선거일을 공고했다. 교수들은 처음에 나를 학장으로 뽑지 않는 선거는 할 수 없다고 고집하였으나 내 설득에 나중에는 다들 누구를 학장으로 뽑으면 좋겠냐며 내 의견을 물어왔다. “갑작스러운 사태로 인한 행정 공백을 정상화함과 동시에 그동안에 계속되어온 학교 주요정책을 그대로 밀고 나가려면 아무래도 종전까지 보직을 맡아 학교 운영을 나와 함께 했던 교수라야 모든 것을 차질 없이 계승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교학과장인 정 교수는 나와 같이 후보로 올라갔으나 나도 정 교수도 똑같이 학장 후보로는 안 된다고 했으니 정 교수는 제외하고 학생과장 김애리 교수를 밀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내 말을 들은 교수들은 내 방으로 한 명씩 와서 김 교수보다는 학장 대행 B 교수가 어떻겠냐고 했다. 그때 느낌은 자칫하면 내가 그동안 가장 경계하고 싫어하던 본교 출신 교수 대 타교 출신 교수로 양분되는 구조가 될 수 있었다. 실제로 그런 이야기도 있었다. 타교 출신 교수들은 B 학장대행을 밀고 싶어하는 눈치라고 했다. 그런 얘기를 듣자 얼마 후에 B 학장대행이 내 방에 왔다. “송 학장이 학장 자리를 너무 오래 비워두면 학교 발전에 문제가 생겨서 안 된다. 그래서 신임 학장이 4년 임기를 다 채우는 것은 학교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송 학장이 나를 밀어주면 내가 학장이 되어 딱 2년만 하고 나는 학장직에서 물러나겠다. 그러면 바로 선거를 다시하여 송 학장이 학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나를 밀어 달라. 틀림없이 2년만 하고 2년 후에 송 학장이 다시 하도록 약속을 지키겠다.”는 요지로 어렵게 말을 꺼냈다. 예상 밖의 제안에 나는 상대방이 무안해할까 봐 놀란 표정도 짓지 못하고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생각했다. B 교수는 나와는 오랫동안 가깝게 지낸 고대 출신 선임 교수로서 상당히 바른 생각의 소유자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의외의 곤란한 발언에 무어라 대답해야 자존심을 다치지 않고 거절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선생님과는 마음을 터놓고 가깝게 지내왔는데 저도 선생님이 학장 대행을 맡고 계시니까 학장을 하실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학장직이란 선생님과 제가 둘이 앉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사로운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더군다나 선생님이 2년만 하시고 2년 후에 저에게 다시 학장을 넘겨주시겠다는 말씀을 들은 한 저는 절대로 선생님의 제안을 죄송하지만 받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선생님을 밀면 결국 제가 2년 후에 다시 학장 하려는 것이 되니까요. 오늘 저와 말씀하신 것은 안 들은 것으로 하고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순간 B 교수가 귀까지 새빨개지면서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도 마음이 무겁고 아팠다. 친한 사이인데,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해서, 내 앞에서 얼굴을 들지 못할 처지가 되고 나 또한 이렇게 겪고 싶지 않은 상황을 만들어야 하는지 내심 원망스러웠다. B 교수는 내 방에서 황망하게 나간 후, 그 후부터는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선거일이 다가오자 우리 교수들은 누구를 선출해야 그나마 학교가 안정될 수 있을지 고심하며 또 나에게 물어왔다. 나는 교수들이 한 명씩 찾아올 때마다 “그래도 나와 함께 4년간 학교행정을 같이 해 온 김애리 교수가 가장 학교 상황을 잘 이해하고 파악하고 있어 학장으로서 운영에 차질이 없을 것 같다.” 교수들의 반대의견도 있었지만, 김애리 교수가 학장이 되더라도 내가 전과 같이 뒤에서 돕고 조언을 할 것이니 믿고 안심하라고 일렀다. 드디어 선거일이 되었고, 결과는 B 교수는 낙마하고, 김애리 교수가 학장으로 선출되었다. 김애리 학장은 내 학장 임기가 8월 4일 종료된 후로부터 무려 7개월 만에 2005년 2월 어렵게 17대 학장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사실 A 교수가 지나친 과욕을 부리지 않았다면, 다음 학장은 자연스럽게 A 교수가 될 수 있었다. 자기가 자기 복을 차버린 꼴이 되었다. 그러나 뉴욕 선배님을 한국에 보내 학장임명의 부정한 일을 우리에게 미리 알게 해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고, 그로 인해 A 교수는 학장 선거에서 아예 배제되는 수모를 자청한 꼴이 되었다. 자업자득, 사필귀정이 아니겠는가?
2006년도 간호대학 예산 없앤 것 알고 계시지요?
나의 학장임명 불발 사실이 차츰 알려지자 제일 먼저 원장이 수차례 “정말 송학장 발령이 무산된 거냐.”며 확인했다. 또 김 학장이 새로 취임은 했으나 학교의 어수선한 분위기는 쉽게 안정되지 않 고 있었다. 나는 학장을 그만둔 뒤 NCLEX-RN 과정을 만들고 해외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한 장본인인 내가 이 사업들은 그대로 유지해야만 학교 운영의 실용적 철학과 근간이 안정적으로 갈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자발적으로 산학협력단을 내가 맡아 종전대로 끌고 가기로 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