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에 용기를 내어 총장 후보를 수락하기로 했다. 여전히 마음은 무거웠지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수락할 뜻을 전했고, 이어서 메일을 통해 총장 후보 수락 동의서와 대학발전계획서 등을 보냈다.
총장 후보 정견발표 심사는 비가 내리는 토요일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간 내가 비교적 많은 대학 총장들과 만나서 대학의 현안 문제들을 들어 알고 있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사위원은 교수, 학생, 직원, 동문 대표 각 5인으로 구성된 20인의 총장 후보 추천위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정견발표와 질의응답 순으로 진행되었는데, 나는 다른 교수들처럼 준비된 자료나 원고 없이 평소 내 스타일대로 생각했던 것을 총장 출마의 변으로 삼았다. 후보를 수락하기까지의 치열한 고민, 국립의료원간호대학을 폐교하고 성신에 온 장본인으로서 간호대 발전이 곧 성신여대 발전이라는 생각으로 열과 성 을 다해왔던 점, 비판적 지성인으로 마지막까지 깨끗한 이미지를 남기고 싶다는 점, 세상에 정정당당한 총장으로 나아가겠다는 포부 등을 밝혔다. 구체적으로 무슨 일부터 할 것인지도 분명하게 전달했다. 성신은 당장 난제들이 산적해 있었기에 그것들을 우선순위를 정해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며칠 후 총장 후보 추천위원회에서 2차 투표를 통해 선출된 3명의후보를 발표했다. 투표 결과는 교수, 학생, 직원, 동문 등 4주체 구성원들에게 메일이 발송되었고, 일부 인터넷 매체에도 보도되었다. 선출된 최종후보 3인 중에는 내 이름이 들어있었다. 당시 투표 방법은 추천위원 한 사람이 5명 후보 중에서 2인을 기명하는 방법이었는데 나는 총장추천위원 20명 전원으로부터 100% 득표를 받아 개표위원들도 깜짝 놀랐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정년퇴임을 한 지 1년 반이 지난 시점에서 나를 잊지 않고 총장 후보로 추천해주고 더군다나 추천위원 20명 전원이 나에게 표를 주었다니! 나는 참으로 성신 구성원들로부터 너무 분에 넘치는 인정을 받은 것 같았다. 내가 이 고마움을 무엇으로 되돌려줄 수 있을까? 내게 숙제가 주어진 기분이었다. 명예로운 퇴장이 더 아름다운 이유총장후보추천위원회에서는 최종 총장 후보로 선출된 3인의 명단과 함께 3인 후보 중 1인을 총장으로 선임해달라는 요청서를 이사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그런데 최종 총장 후보 3인의 명단이 발표되자마자 이사회에서는 학교 홈페이지에 이사장 명의의 공고문 하나가 갑자기 올라왔다. 종전과 달리 느닷없이 공모제로 총장을 채용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사회가 게재한 총장 공모제에 관한 공고문은 누가 보아도 현 총장을 연임시키기 위한 사실상의 꼼수임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나를 겨냥한 것으로 총장 지원 자격에 ‘65세 이하’라는 그야말로 시대착오적인 나이 제한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제한요건에 해당 하는 퇴직교수는 내가 유일했다. 갑작스러운 공고로 인해 또 한 번 성신은 소동이 일었지만, 나는 나 로 인해 성신이 더 이상 혼돈에 빠지는 것은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를 총장 후보로 추천해준 구성원들의 뜻이나 이사회에서 나를 위해끝까지 나이 제한을 비판하고 반대한 일부 이사들이 고맙긴 했지만, 내 총장 후보 건으로 성신이 또 한 번의 홍역을 치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깨끗이 잊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정년퇴임을 한 지 1년 반이 훌쩍 지난 나를 잊지 않고 보내준 인간적인 신뢰와 또 내가 1위 득표 를 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과분했다. 이런 일들이 성신 70년사에 아름 다운 일로 기억될 것이라고 격려해준 이사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인정 과 위로의 말에 나는 가슴이 뜨거웠다.
모 교수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학장님은 이번에 총장이 되신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참으로 빛도이름도 없이 하기 어려운 일들을 자진해서 그간 성신을 위해 애쓰시는 모습에 감사할 뿐입니다. 언젠가 가까운 날에 학교가 정상화되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웃으면서 옛말처럼 회상하는 날이 꼭 올 것입니다. 송 학장님의 고난의 리더십에 감탄할 뿐입니다. 성신에서 용납되어선 안 되는 불의에 맞서 담대하게 총알받이가 되어주고 성신 역사의 바른길을 열어주신 송 학장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말도 많고 탈도 많던 공모제를 통해 총장은 3연임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총장의 3연임으로 학내 구성원들의 반발은 극에 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사회에서는 회계사인 H 이사가 총장의 교비 횡령 건을 적발하여 총장이 고발당하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사회에 총장 퇴진을 촉구하는 탄원서가 접수된 후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양측 이사들 간에, 이사와 총장 간에, 총장 측 인사들과 교수회 간에 수많은 비난과 고소 고발이 난무했다. 그러다 마침내 총장의 교비 횡령 건으로 모든 사태가 마무리되고, 2017년 2월 총장이 1심에서 1년 실형을 선고 받음으로써, 4년 반에 걸친 총장 퇴진운동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총장의 1심 선고와 함께 이사회도 책임을 지고 물러나게 되었고, 교육부에서는 임시이사가 파견되면서 임시이사체제로 돌입했다. 학교는 총장대행체제에 이어 새로운 총장을 선임했다.
이후 2017년 11월, 정년 한 지 3년 반이 지나서야 학교로부터 비로소 명예교수를 신청하라는 연락을 받고 나는 늦깎이 명예교수가 되었다. 정년퇴임 당시 김순옥 이사장님으로부터 명예교수 신청을 하라는 재촉 을 여러 번 받고 총장의 반대로 안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사장님의 성의를 뿌리치지 못해 신청했지만, 총장이 인사위원회를 통해 나를 탈 락시켰다는 소문을 들은 지 3년 반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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