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행 베스트셀러
부익부 빈익빈 세상...심화
돈이 돈을 버는 시스템 때문...
부자, 기부로 사회적 책임을
빈자, 열심히 살았다면...박수
열심히 일하며 사는데 우리는 왜 계속 가난할까? 먹을 것 줄이고, 입을 것 고쳐 입고, 쓸 것 절약하며 아끼며 또 저축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어찌하여 월세, 전세살이를 면하기 힘들까? 도대체 이런 세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이런 답답한 마음을 달래줄 것 같은 서적들이 다수 있다. 그 제목만 읽어도 위안이 될 정도다.
<열심히 일해도 가난해 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윌리엄 A 스텐마이어, 아름다운 사회, 2005)
<당신 문제는 너무 열심히만 일하는 것이다>(김혜목, 팬덤북스, 2011)
<왜 나는 열심히 살아도 본전 인생을 면치 못할까>(이건호, 와이즈베리, 2013)
여기 한 가지 서적을 더 주목해 보자. 바로 <자본주의>(EBS, 가나출판사, 2013)다. EBS 다큐프라임에서 ‘자본주의’라는 주제로 5부작 방영했던 내용을 담은 책이다. 10년 전 발행된 책인데, 요즘 서점가에서 역주행하고 있다. 베스트셀러 목록에 다시 오르며 인기를 얻고 있다.
서두에 던졌던 의문에 대한 답을 이 책이 말해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자본주의’다. 다시 말해 열심히 일하고 절약하며 살고 있는데도 계속 가난한 삶을 면하지 못하는 대표적인 이유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한 마디로 ‘돈이 돈을 버는 시스템’이라는 말이다. 노동을 통해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돈이 스스로 돈을 버는 즉 ‘돈’이 주인공이 된다. 돈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회구조다. 좀더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돈’이 곧 ‘신(神)’처럼 군림하는 세상이다.
자본주의를 구성하고 있는 4가지 순환 구조가 있다. 돈의 양 증가, 돈의 가치 하락, 물가상승 그리고 은행이다. 오늘의 경제 구조는 이런저런 이유로 돈의 양이 많아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돈의 가치가 떨어지고 만다. 그래서 물가가 오른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이루는 핵심 기관이 바로 은행이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은행은 돈을 계속 발행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보자. 어느 작은 나라가 있다. 그 나라 중앙은행에서 돈을 1억 원 발행했다. 그 나라에 있는 현찰은 오직 1억 원뿐이다. 그 돈을 한 사람이 모두 대출, 즉 빌려갔다. 대출 기간이 끝나 그 돈을 갚으려 한다. 이때 문제가 발생된다. ‘이자’ 때문이다. 이때 이자를 1백만 원이라고 해보자. 그 이자에 해당되는 돈이 없다. 그 나라에는 오직 돈이 1억 원밖에 없기 때문이다. 은행은 이자를 위해 다시 돈 1백만 원을 발행해야 한다. 그래서 돈의 양이 증가하게 된다. 다시 그 모든 돈을 다른 사람이 대출해 갔다고 해 보자. 1억1백만 원을 말이다. 훗날 다시 이자 문제 때문에 돈을 더 찍어내야만 한다.
또 다른 한 가지 ‘신용통화’라는 게 있다. 예를 들어보자. 내가 1억 원을 은행에 맡겨두었다. 내 통장에 1억 원이라는 숫자가 표시된다. 그리고 나는 언제든지 어떤 상황에서도 그 돈을 찾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은행은 맡겨진 돈 1억 원 중 10%(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낮다. 3.5% 전후다)를 남겨두고 90%를 다른 사람에게 대출해 줄 수 있다.
그래서 시중에 활용되고 있는 돈의 양은 1억9천만 원이 된다. 이때 9천만 원을 ‘신용통화’라고 한다. 실제로는 존재하는 ‘화폐’가 아니지만, 돈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9천만 원 대출받은 사람이 다시 그 돈을 은행에 저금을 한다면, 은행은 다시 10%를 남기도 90%를 대출로 사용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저금과 대출이 반복된다면 신용통화는 처음 금액의 10배에 이르게 된다. 다시 말해 처음 나의 돈은 1억 원이었지만,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돈은 그의 10배인 10억 원으로 불어나게 된다. 그래서 돈의 양이 갈수록 많아지게 된다. 바로 은행의 ‘대출’ 때문이다. 물론 한 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은행에 돈을 맡긴 사람들이 모두 동시에 자신의 돈을 찾아가지 않아야 한다.
은행은 이자로 수입을 올리기 때문에 ‘대출’을 권한다. 심지어 갚을 능력이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도 대출을 해준다. 무주택자에게 집을 사라고 권하면서 그 집을 담보로 대출을 해주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가 갚을 능력이 없어도 말이다. 그렇다면 은행은 사회복지 사업체인가? 아니면 바보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집값은 오를 경우 그 집값 상승분을 은행이 가져가면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문제가 있다. 집값이 계속 올라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장기적으로 집값은 계속 올랐다. 바로 이것 때문에 은행이 이 일, 즉 위험한 대출을 공격적으로 확장시켰다. 그런데 우려했던 문제가 발생했다. 지난 2008년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에 적색불이 켜지고 말았다. 이는 급기야 국가 금융위기로 확산되었다. 더욱이 이것이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무엇 때문인가? 바로 집값이 예상대로 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떨어졌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서민이 파산되었고 많은 은행도 문을 닫고 말았다.
어떠한 문제가 발생되어도 부자는 흔들리지 않는다. 부자는 그렇게 위험도가 높은 대출을 받지 않을뿐더러, 설령 그런 상황에 말려들어갔다 하더라도 수습할 능력이 충분하다. 다른 자금을 활용해 어렵지 않게 원상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서민이다. 서민은 한 번 흔들리면 회복할 힘을 잃는다. 활용할 다른 자금이 부족하다. 그래서 무너지고 만다. 이런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중간층이 갈수록 줄어들게 된다. 극소수가 경제 상류층으로 올라갈 뿐 상당수 중간층은 경제 하류층으로 전락되고 만다. 이게 자본주의의 결과다.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갈수록 가난해진다는 ‘부익부 빈익빈’ 말이다.
최근 세계경제학자의 흥미로운 충돌이 있었다. 진보 진영의 토마 피케티 교수와 보수 진영의 그래고리 맨큐 교수 사이의 논쟁이다. 파리경제대학 교수인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의 저서를 통해 현 ‘자본수익률>경제성장률’시스템의 자본주의 문제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즉, 돈이 돈을 버는 식의 자본주의 구조가 현재 경제성장률보다 크기 때문에 서민이 아무리 노동을 열심히 해도 제대로 된 집을 하나 장만할 수 없다는 식이다. 부자의 돈이 스스로 돈을 버는 수준이 노동의 수익보다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버드대학 교수인 그래고리 맨큐도 이에 동의한다. 그는 <맨큐 경제학>으로 이미 학계에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자본주의에 대한 처방전은 달랐다. 피케티 교수는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부자에게서 더 많은 세금을 거두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난한 자와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보다 혁명적이다. 맨큐 교수는 반대했다. 부자들이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 왔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며 온건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설득되지 않는 강제성은 기업을 멈추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는 누구도 원하지 않는 결과다. 기부문화가 좋은 해결책이라고 했다. 세계 최고의 부자, 투자자의 귀재라 불린 워런 버핏, 최고의 방송인인 오프라 윈프리, IT업계의 천재 빌 게이츠 등의 부자들이 내놓은 엄청난 액수의 기부금이 좋은 예가 된다는 말이다. 부자의 마음에 의존해야 하는 약점도 있지만, 누구도 상처받지 않고 자본주의 ‘부의 불균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열심히 절약하며 사는데 왜 이렇게 가난을 면하기 힘들까? 불가능할 정도로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해야 할까? 또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며 부자를 원망하고 그들에게서 돈을 뜯어내야 한다고 구호를 외치며 뛰어다녀야 할까? 아니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오직 돈을 벌기 위해 매진해야 할까? 왜! 돈이면 무엇이든 가능한 세상에서 이대로 가만히 직장생활만 해서는 억울하니까?
이런 자본주의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부자는 자신의 부함이 자신의 노동으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기부 등으로 가난한 자에 대한 사회적 책임에 좀더 앞장서면 어떨까. 정말 멋진 인생 아닐까. 또한 열심히 일하며 살았는데 계속 가난한 이들도 결코 좌절할 이유가 없다. 누구를 원망할 필요도 없다. 세상이 그런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 열심히 살아왔다면 그 자체로 박수 받기에 충분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