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가에 빨갛게 익은 딸기를 발견하고 발걸음을 멈췄다. 예기치 않은 만남이다. 초록 잎사귀 밑에 수줍은 듯 올망졸망 달린 딸기를 들여다보니 콩알만 한 것이 앙증스럽고 당차게 생겼다. 딸기 하나를 따서 입에 넣고 맛을 보다가 뱉고 만다. 달콤한 맛이라고는 없고 시큼 털털하다. 하지만, 이 산골에서 만난 얼마나 반가운 모습인가. 밑거름 없이 스스로 자라서 열매까지 달고 있는 모습이 대견하다.
딸기를 한 알 두 알 따다 보니 이내 한 줌이 된다. 울퉁불퉁하게 생긴 기형 딸기도 많다. 딸기가 척박한 땅에서 이렇게 자라준 것만도 고마운데 새콤달콤한 맛을 기대하다니... 손안에 소복하게 담겨 있는 딸기를 들여다보자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비료는 화학성이어서 안 되고, 쇠똥 거름은 혐오스러워서 안 되고... 마치 자식을 유별나게 키우는 부모처럼 과잉보호했다. 딸기밭에는 쇠똥 거름이 얼씬 못하게 하여 튼실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콩 딸기가 된 게 아닌가. 그래도 딸기 모종은 온몸의 진액을 짜서 결실을 보았다.
지난해 봄, 이웃 은지네 집에서 원두막을 짓느라 캐내는 딸기 모종을 한 대야 분 얻어 와서 텃밭 가장자리에 임시로 심었다. 밭에는 이미 감자, 토마토, 가지, 오이 등 다른 채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에는 밭에 농협에서 사 온 거름으로 밑거름 하고 제대로 옮겨 심으려고 계획했는데, 느닷없이 온 밭에 쇠똥이 뒤덮였다. 감자를 심을 무렵인 4월 초, 1톤 트럭 두 대가 와서 텃밭에 시커먼 거름을 쏟아붓더니 장정 두 사람이 골고루 편다. ‘웬 거름?’ 하며 밖에 나가 보니 쇠똥 거름이었다. 의아했다. 남편에게 어쩐 일이냐고 묻자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쇠똥에 톱밥을 섞어 발효시킨 것이라서 좋은 거름이고, 여기서는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그 귀한 것을 공짜로 얻었느냐는 질문에 쇠똥 값으로 십만 원을 주었단다.
농협에서 배부한 거름 50포대를 사놓고도 또 쇠똥 거름을 사들인 그 거름 욕심에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지나치면 독이 된다는 말이 있다. 손바닥만한 텃밭에 두꺼운 쇠똥 층. 두엄더미에서 그냥 퍼 온 쇠똥 거름은 우선 시각적으로 혐오감을 준다. 저 덩어리들을 어떻게 흙과 골고루 섞을 것인지... 농기계도 없이 일일이 괭이와 쇠스랑으로 땅을 파 엎을 생각을 하니 기가 막혔다.
남편이 날마다 쇠스랑으로 흙을 뒤집다가 일손을 놓았다. 평생 호미도 제대로 안 잡아 본 손인데 쇠스랑이 호락호락하겠는가. 쇠똥이 두껍게 덮은 밭을 며칠 동안 고심하듯 바라만 보더니 적당한 양만 남기고 밭 한쪽 구석에 수붓하게 쌓았다. 그 일 또한 만만찮았는지 새벽같이 일어나던 사람이 끙끙거이며 늦잠 잤다. 농사짓는 일이 어디 의욕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인가.
쇠똥 거름 한 밭에 토마토, 고추, 가지를 심었다. 토마토는 벌써 열매를 맺었고 가지도 보라색 꽃을 달았다. 고추도 하얀 꽃이 피기 시작했다. 뽑아 먹지 않은 열무는 쑥쑥 자라 장다리꽃이 피었다. 그 화사함에 도취한 흰나비, 호랑나비들의 춤사위가 볼만하다. 대조적으로 거름을 받지 못한 딸기는 허약하고 모습이 초라하여 안쓰럽다. 유익한 자연물인 쇠똥 거름조차 밀어내다 보니 내가 얻은 것은 콩 딸기뿐이다. 순전히 내 탓이다.
산촌에 살면서 자연에 적응하려면 생태계의 순환 관계를 이해하고 자연의 섭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과 자세가 필요하다. 숲에서는 나무가 스스로 잎과 열매를 떨어뜨려 썩게 하여 거름으로 삼고, 풀들도 시들어 미생물에 분해된다. 그것을 밑거름으로 하여 새싹이 자란다. 썩는 것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위한 준비가 아니겠는가. 눈이 녹자 썩은 낙엽을 헤치고 올라와 노란 꽃을 피웠던 노랑제비꽃의 귀여운 모습이 눈앞에 삼삼하다. 쇠똥 거름도 자연의 소산물이 아닌가.
맑은 공기를 마시고 물소리, 새소리들의 지저귐을 들으면서 유유자적한다고 자연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쇠똥 거름을 혐오스러워 하고 해를 끼치지 않는 곤충에게도 살충제를 뿌려대는 나를 자연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자연을 사랑하기보다는 누리려고만 하는 나를 느끼게 된다.
쇠똥 거름을 밀어낸 내 마음 안에도 콩 딸기가 주렁주렁 달리게 될 지 모를 일이다.
내년에는 딸기밭에 쇠똥 거름을 알맞게 주어 향기 품은 탐스러운 딸기가 달리게 할 것이다. 내가 쇠똥을 받아들이는 것은 비로소 자연인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