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온도, 마음의 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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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온도, 마음의 온도
  • 이흥주 수필가
  • 승인 2024.10.17 13: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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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6일 작은 추석날, 큰아들이 손자들을 데리고 들이닥친다. 이어 작은 아들네가 들어오고, 딸내미는 저희 시댁엘 들러서 내일이나 온다. 손자들이 나이가 들어 제법 의젓하니 집안이 조용하다. 전 같으면 집이 공중에 떴다 내려앉았다 하고 할아버지 입은 덩달아 귀밑에 올라가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밭에 심은 고추나무처럼 하루가 다르게 커 올라 할아버지 키 밑에는 이제 초등학교 두 녀석밖에 없다. 막내 손자가 작년까지만 해도 “할아버지 좋아?”하고 내가 물으면 고개가 양옆으로 돌아갔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이 멋진 할아버지를 두고 어째 도리질인가, 세상엔 불가사의한 일도 많다.


내가 작은 며느리한테 “이상한 일이다. 할아버지를 싫어하는 손자가 어디 있냐” 하면 “아버님이 너무 강하게 안아 주니 그게 싫대요!” 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내가 아이들이 너무 귀여워 좀 우악스럽게 안곤 했다. 너무 귀여운 나머지 아이들이 싫어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녀석은 도리질을 하면서도 눈은 항상 웃고 있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글을 쓰느라 노트북에 정신이 팔려있으면 몰래 조용조용 내 방에 와서 할아버지를 슬쩍 건든다. 장난을 청하는 것이다. 이젠 3학년인데 금년부터는 하루 몇 번이고 물으면 고개 끄덕 끄덕이다.


올해는 지긋지긋한 더위로 모두가 기진맥진이다. 하늘이 예고도 안 하고 올린 무더위로 대책 없이 몸의 온도가 올라 열사병으로 죽는 사람도 많았었는데 내 가족이 올린 ‘마음의 온도’는 죽는 온도가 아니라 몸과 마음이 따뜻해지는 온도이다. 이 온도의 여운으로 자식 손자들이 돌아간 후에도 한참을 가슴이 훈훈할 것이다.   


자식들도 명절이면 바쁘다. 두 아들이 오늘은 내 집에 있지만 내일이면 사돈네 집으로 가서 백년손님으로 앉을 것이다. 내 아들이 나에게도 귀중한 존재지만 사돈한테도 보배이니 부모가 자식 키운 보람이 대단하다. 딸내미는 시댁이 먼저다. 이 아이도 내일 오전이면 아버지한테로 달려온다. 


사돈 셋이 다 나보다 나이가 위다. 큰 사돈은 이미 세상을 뜨고 가운데 사돈이 나이가 나보다 2년이 위이고 막내 사돈도 여섯 살이 위인데 건강이 안 좋다. 사돈은 참 중요한 존재이다. 자식을 키워 서로 주고 받고한 사이가 아닌가 하고 많은 사람 가운데 이렇게 사돈 관계가 되면 이건 하늘이 맺어준 인연으로 보아야 한다. 난 하나 키워 남 주고 둘을 뺏어왔으니 욕심이 많다.

 
명절이 노동절이라는 말까지 하지만 가족을 한자리에 모이게 하는 날이니 좋다. 지금이야 매일이 명절같이 잘 사니 옛날처럼 손꼽아 기다리는 날은 아니다. 그때 살기는 어려워도 명절엔 새 옷을 입고 음식도 평소에 못 보던 것들이 널리니 기다려지는 날일 수밖에. 어른들은 없는 살림에 명절이 돌아오면 걱정부터 앞섰을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아이들은 좋아만 했으니… 내가 지금 부모 나이가 되어 당시를 회상하면 맘이 짠하다.

 
이런 우리네 부모님들은 조상 제사에 쓸 쌀은 아무리 어려워도 아껴 두었다. 제사에 쓸 곡식, 다음 해 파종할 씨앗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소중하게 아낀다. 이런 데서 유래한 말로 조상 제사에 쓸 쌀은 사흘을 굶주려도 손 안 대고, 굶어 죽어도 씨앗은 안고 죽는다는 말이 나왔다. 이것과 좀 다른 이야기지만 흉년에 아이들은 배 터져 죽고 어른들은 배곯아 죽는다는 말이 나왔다. 다 인륜과 천륜을 중시하던 당시의 사회상을 말해주는 것이다.

                    
지금이야 제사에 쓸 쌀이 남아돌고 파종할 씨앗이 없어도 종묘상에서 모종을 얼마든지 사서 쓸 수 있으니 그것이 다 추억 속의 말이 되었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게 의식주(衣食住)이다. 이게 족해야 비로소 다른 게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나라에서 의식주 얘기하면 맞지 않는 말이다. 지금은 이것이 넘치니 좋은 세상이다. 의식이 족해야 예의를 안다 했는데 이게 넘치는 요즘에 예의범절 차리는 것은 전만 못하니 이 말도 퇴색한 지가 한참 됐다.

 
지금을 이성과 양심이 실종된 사회라고 말한다. 극심한 사회의 혼란이 사람들 마음의 온도는 내리고, 염천(炎天)보다도 더 뜨겁게 몸의 온도를 높이고 있다. 억지나 힘의 논리가 세상을 좌지우지한다. 사회가 둘로 나뉘어 죽자 살자 싸움질이다. 옳고 그름은 차후의 이야기다. 여기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데가 정치집단이라고 말 할 수 있다. 그들은 자기들 이익만 위해 싸울 게 아니라 사회적 혼란을 치유하는 데도 힘을 쏟아야 한다.


추석 연휴가 지나고 비도 내렸지만 더위는 여전하다. 올여름의 극심한 더위는 따뜻한 마음의 온도는 내리고 몸의 온도만 올려놓아 힘들게 했다. 모처럼 명절에 가족들이 모여서 오른 따뜻한 마음의 온도가 긴 여운으로 오래도록 가슴에 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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