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은 날개… 당신에게 날개를 달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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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은 날개… 당신에게 날개를 달아 드립니다”
  • 유정아기자
  • 승인 2017.09.07 13: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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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테일러’ 정천용 디자이너
양복기능사로 45년… 한번도 한눈 판적 없어
중국·미국·콜롬비아 등 해외에서도 솜씨 인정
아들이 가업 이어… ”더 많은 고객 찾아뵐 것”

중학생 시절부터 한 우물만 판 정천용(60)디자이너는 ‘vip테일러’라는 맞춤 양복점을 운영하며 전국에서 알아주는 1급 기능사로 거듭났다. 연예인, 정치인, 외국인까지 모두에게 인정받는 정씨의 정장은 단순한 의복을 넘어서 하나의 작품으로 대접받는다. 지난해부턴 아들·며느리인 정구욱(36)·김남수(38)씨 부부가 정씨의 기술을 잇기 시작하면서 2대째 운영하는 가업이 됐다. 이들의 야기를 들어봤다.<편집자주>

양복을 만들고 있는 정천용디자이너.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맞춤 양복점 ‘vip테일러’의 디자이너 정천용(60)씨는 오늘도 고객들의 신체 치수를 직접 잰다. 정씨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장소를 바꾸며 운영해왔지만 그의 손길은 변함없이 그대로다. 정씨는 고향 옥천군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대전에서 양복 제작기술을 배웠다. 이후 옥천군으로 돌아와 10여년 이상 양복점을 운영한 경력을 살려 현재는 다시 대전에서 운영 중이다.

정천용디자이너.

▲변함없는 정장 사랑
어릴 때부터 만들기를 좋아했던 정씨는 중학생 시절부터 양복점에서 일을 시작했다. 정씨는  양복점 운영만 36년차지만 학창시절부터 일한 기간까지 포함하면 45년이 넘는 기간을 정장과 함께했다. 그러나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동안 정씨는 한 번도 다른 일을 생각한 적이 없었다고 밝혔다.
정씨는 “중학교에 입학하고 양복점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1년을 청소와 심부름만 했다. 매일 정장을 봐왔지만 만지지도 못했다”며 “양복점 걸레질이 몸에 익을 때쯤 돼서야 조금씩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4~5년간 계속 기술을 배웠다”고 말했다.
워낙 어릴 때부터 일을 시작한 정씨는 힘든 순간이 너무 많아 꼽기 힘들다고 회상했다.
정씨는 “재봉틀에 손 다치는 일은 다반사고, 크고 작은 실수들도 많았다. 일도 힘들지만 당시 근무 분위기는 더 힘들었다”며 “요즘엔 없지만 본인이 어렸을 땐 직장에서 욕은 물론 구타까지 왕왕 있었다. 당연히 못 견디고 그만두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특별한 날을 기념하는 특별한 옷
그럼에도 정씨는 정장을 만들면서 보람된 순간이 더 많았다고 설명했다.
정씨는 “많은 고객들이 졸업식이나 결혼식, 집안의 대소사에서 입을 정장을 맞추러 오신다. 기쁜 날을 맞아 이곳에서 맞춘 정장을 입고 좋아하시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정씨의 아들 정구욱(36)씨의 결혼식도 정씨가 직접 정장을 준비했다. 그는 “내 정장이 평생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순간에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vip테일러의 정장은 이제 국내가 아닌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옷으로 거듭나고 있다.
정씨는 “연예인, 정치인들도 많이 오시고, 미국, 일본, 콜롬비아 등 외국인 분들까지 해외에서 오셔서 이곳을 방문하신다”며 “돈은 어차피 노력한 만큼 버는 것이다. 그 외적인 부분에서 즐거움이 있어야 흔들림 없이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직접 잰 치수가 적혀있는 테일러 자료.

▲손기술로 전국대회서 인정
정씨는 제4회 전국기술경연대회에서 특선을 수상할 정도로 자타가 공인하는 기능사다. 그는 “수상 당시 옥천에서 양복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도시에서 온 쟁쟁한 경쟁자들 사이에서 읍 단위 출신이 특선을 하니 사람들이 다 놀라더라”며 “본인 또한 좋은 결과에 놀랐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어 그는 “출전자들이 옥천이 어디 지역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며 “옥천을 알리기 위해 육영수 여사 생가와 금강휴게소를 설명하면서 지역을 설명해야 했다”고 일화도 밝혔다. 정씨는 기능공으로서 제 역할을 하려면 10년 이상의 경력이 필요하다고 본인의 생각을 언급하기도 했다.
정씨는 “본인이 느끼진 못해도 고객들 대부분이 신체 사이즈가 비대칭인 경우가 많다”며 “이 작은 차이를 알아채고 몸에 꼭 맞는 정장을 만들어야하기 때문에 어느 과정하나 소홀할 수가 없다. 전체 과정이 모두 익숙해지는데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천용디자이너(오른쪽)와 단골고객.

▲가격도 서비스도 ‘고객맞춤’
‘vip테일러’의 정장 가격은 30만 원 대부터 시작해 맞춤 정장 시장에 비해 저렴한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이곳에서 정장 한 벌을 맞추는데 일주일정도 걸리지만 좋은 품질과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한 달 평균 50~60명의 고객들이 이곳을 찾는다.
정씨는 “백화점 기성양복점 보다도 40~ 50% 낮은 가격이다. 우린 재고도 없고, 중간유통도 없어 일반 판매가의 절반만 받아도 운영하는데 큰 부담이 없다”며 “가격 부담을 덜고 좋은 옷을 많은 분들이 입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늘어나는 고객 수만큼 요구하는 스타일도 다양해졌다. 과거엔 나이 상관없이 차분한 검은 정장이 인기였지만 최근엔 화려한 색감에 슬림한 핏을 요구하는 고객이 느는 추세다.
정씨는 “네이비, 그린, 체크무늬 등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스타일을 바라는 분들이 많아졌다. 시대 유행에 따라, 취향에 따라 개인에게 꼭 맞는 정장을 추천해드린다”고 말했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어떠한 신체조건에도 상관없다.
정씨는 “2m가 넘는 키 때문에 오신 운동선수나 신체가 불편한 장애인들도 제작 가능하다. 키나 체형, 직업, 참여 행사까지 고려해 맞춤 정장을 추천·제작하고 있다. 걱정 없이 찾아오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밖에 출장과 배달까지 하면서 정장뿐만 아니라 서비스도 고객맞춤이라는 후기도 이곳의 경쟁력이 되었다.
반대로 정씨는 고객들의 적극적인 요구사항을 부탁하기도 했다.
정씨는 “단순하게 생각했을 때 고객의 요구가 많으면 힘들 까 생각하셔서  소극적으로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오히려 까다로워 보이는 고객님들이 포인트를 찾기 쉽고,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신경 써 만족도가 더 높은 정장을 만들 수 있다. 고민하지 말고 본인이 원하는 정장을 말씀해주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2대를 잇는 가업
정씨는 기성복에 밀려난 양복기능사의 위치에 대해 솔직한 심정을 고백하며 기술자양성에도 한계를 느낀다고 밝혔다.
정씨는 “가끔 의상과 대학생들이 자문을 구하는 경우가 있지만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경우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정씨는 “요즘 다시 생기는 맞춤옷 업체는 사이즈만 재고 서울에서 공장처럼 제작하거나, 컴퓨터로 디자인을 설계해 옷을 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곳에서 옷을 맞췄다가 다시 이곳을 찾아주시는 분들이 종종 있다”며 “직접 치수를 재서 제작, 배송까지 모든 과정을 하는 곳이 전국에서도 드물다”고 말했다.
이러한 정씨의 고민에 아들·며느리가 함께 동참했다. 정씨의 가업을 물려받기 위해 기술전수를 시작한 것이다. 정구욱(36)·김남수(38)씨 부부는 지난해부터 초보 기능사로 일을 배우고 있다. 아들 정구욱씨는 “지난 18년간 삼성에서 근무했지만, 아버지 연세에서도 빛을 발할 수 있는 기능사라는 직업이 존경스러웠다”며 “지금은 원단을 사오거나 주문을 넣고 배달을 가는 등  바닥부터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 아버지가 쌓아 오신 명성에 부족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계획은 직영점 확대
‘vip테일러’는 이미 방송과 다양한 언론 매체를 통해 알려져 있다. 그만큼 정씨의 기술이 전문성과 희소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정씨는 “한때 인기 있던 이 직업도 기성복이 생기면서 기술 좋은 사람들이 다 그만뒀다. 흔들리지 않고 바꾸지 않은 것 자체가 뉴스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vip테일러’의 규모를 확대시킬 계획을 밝혔다. 정씨는 “이제 아들과 며느리까지 함께하기 때문에 직영점을 몇 곳 더 만들고자 한다. 이미 양복점 상표등록 등 초반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여성 정장도 구상 중이라고 설명했다. 여성정장의 수요가 낮았기 때문에 남성 정장위주로 판매해왔지만 이젠 커플정장 시장이 확대된 것이다. 정씨는 “간혹 여성정장을 주문받는 경우 외엔 만들지 않았지만 규모를 확대하면 차후엔 여성정장도 비중 있게 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정씨는 “앞으로 더 건강관리를 해서 아들·며느리에게 기술을 전수시켜 대를 잇는 가업으로 반석위에 올려놓는 것이 마지막 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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