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살에 무일푼으로 창업, 오늘의 회사 일궈
“학벌은 잊어라…의욕과 노력만이 성공 비결”
옥천 출신인 흥광기계 박순태 대표이사는 ‘타이어뱅크 타이어보관 자동화제작 설치작업 시스템’을 전국 최초로 완성했다. 타이어를 적재하고 고객이 오면 차량에 맞게 번호를 눌러 타이어를 판매 할 수 있도록 한 기계장치다. 현재 전국 매장에 500대 이상이 설치돼있다. 대전 동구 삼성동의 작업장을 찾아가 그의 살아온 삶과 기업가 정신을 들어봤다. -편집자 주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에게는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돈이 없어서 못 배우는 일은 없길 바랐다. 이를 위해 몸이 부서져라 일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잠을 줄여 일하는 것이었다. 남들이 쉬는 시간 더 많이 생각하고 새로운 기계를 제작하는데 몰두했다. 흥광기계는 이러한 50여년 삶의 결과물이다”라고 박 대표는 말했다.
▲50여년 산업기계 관련 일에 종사
그는 옥천 죽향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15세의 어린 나이에 옥천 ‘송산 철공소’에 취직했다. 20세에 ‘원풍산업’에 들어가 기계부품 가공 일을 시작했으며 5년 뒤 대전으로 와 대전 역전 근처 공업사에서 8년간 일했다. 그리고 33세 때 원동에서 창업, 이후 50여년 산업기계 관련 일에 종사하고 있다.
▲사업의 고비마다 일에 몰두하는 길밖에 해결책이 없었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자금이 없어 300만원을 대출받았다. 담보물이 없어 적금을 들고 그 적금을 담보로 돈을 빌렸다. 그만큼 가진 게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가진 게 없다 보니 사업을 시작한 뒤 남들보다 두배 세배 일해야 했다. 주문이 오면 밤을 새워 물건을 제작했다. 사업을 하면서 고비도 있었고 힘든 일도 많았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난관에 부딪쳤다.
“내가 금융정보나 신용정보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그러다보니 내 기계를 담보로 지인이 시설자금을 대출받도록 해줬다가 엄청난 빚을 떠안은 적도 있다. 그땐 정말 힘들었다. 또 IMF 때 자금난이 심했다. 사업이 영세하다보니 자금회전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내가 외아들이다.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정말 답답했다. 그 답답함을 해결할 길은 오직 일 밖에 없었다. 밤 새워 일해 낮은 가격으로라도 물건을 내놓았다. 그렇게 번 돈으로 자금회전을 하고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걸 몸으로 헤쳐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그는 말했다.
18년 전 현재의 삼성동으로 이전하면서 회사를 주식회사로 바꾸고 상호도 ‘훙광기계’로 변경했다. 현재 직원은 모두 15명으로, 기계 개발은 물론 전국에서 기계설치 작업을 하고 있다. 옥천에 2곳의 매장이 있고, 옥천읍 매화리에 1600평 규모의 제2공장을 지어 이전을 준비하고 있다.
“산업기계는 각종 산업의 생산 공정에 쓰이는 모든 기계부품을 말한다. 냉면기계부터 자동차부품에 들어가는 것까지 기초산업의 뿌리다.”라고 박 대표는 힘주어 말했다.
▲타이어보관 자동화제작 성공
그의 손에 들어온 기계는 모두 척척 수리가 된다. 그는 산업기계에 관한 한 누구보다 뛰어난 전문가일 뿐 아니라 새로운 기계제품 제작에도 탁월하다. ‘타이어뱅크 타이어보관 자동화제작 설치작업 시스템’은 그의 실력을 입증하는 하나의 사례다.
박 대표는 “하고자하는 의욕만 있으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 태어날 때 가난은 죄가 아니다.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 들어서도 가난을 벗지 못했다면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의욕이 없지는 않았는지, 새로운 도전에 멈칫거리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라는 말이다.
그는 이어서 “어떤 일이든 도전해서 최선을 다하면 이루어진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 한다. 그 하고 싶은 일, 가슴 뛰는 일에 매달리다 보면 성공은 어느새 눈 앞에 와 있다”고 말했다.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이 배웠어도 성공할 수 없다. 학교 공부는 길만 터주는 것이다. 일하면서 더 세밀하게 배워야 한다. 학벌 같은 것은 내려놓고 자신이 발 딛은 일터에서 다시 배운다는 자세로 일해야 좀 더 빨리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박대표는 말했다.
또한 “요즘에는 실업자가 많다고 하는데 이곳에는 일할 사람이 턱없이 부족하다. 내가 일할 때는 일하려는 사람이 많았다. 요즘에는 젊은 층이 놀면 놀았지 힘든 일은 하려고 하지 않는다. 기초 산업 일꾼이 점점 없어지는 추세다.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부의 시급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누는 삶 실천
박 대표는 요즘 나누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 2010년부터 ‘바르게살기협의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무료급식, 의료활동 등 다양한 방법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다. 또한 삼성동 동사무소 ‘범죄예방선도위원회’회장으로 지역 발전을 위해서도 수고를 아끼지 않고 있다. 이러한 활동으로 받은 상장도 수없이 많다. 이 중 기계공업 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받은 표창장에 가장 애착이 간다고 그는 말했다.
박 대표는 앞으로도 이루고 싶은 일이 많다. 그의 꿈과 도전은 계속 되고 있다. “사회에 유익하게 쓰일 수만 있다면 어떤 기계든 개발하고 싶다. 이러한 도전은 내가 살아있는 한 계속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이 그 다음 세대에 전수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늘도 그는 산업기계 개발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