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극(寸劇)이 시작됐다.
안경쓴 대학생이 나와 자신을 사회자 겸 ‘치매예방의 남자’라고 소개하고는 치매예방경연대회에 나온 네 분의 어르신을 모시겠다며 박수를 유도한다.
“자 ! 참가번호 1번 대전에서 오신 박만자 할머님~!”
사회자 구령에 맞춰 빨강머리 가발을 쓴 예쁘장한 여대생이 허리를 구부리고 갈짓자 걸음으로 나오자 객석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박장대소한다.
2번은 초록색 가발, 3번 할머니는 파란색 가발, 4번 할아버지는 ‘치렁치렁’ 노랑 장발이다.
‘빨강머리 할머니’는 치매예방엔 뭐니뭐니해도 손바닥 치는 것이 최고라며 ‘3·3·7 박수치기’를 유도한다. ‘초록가발 할머니’는 치매예방을 위해 손주들과의 ‘카똑카똑(카톡이나 핸드폰 문자 전송)’을 권하고 ‘파란색 할머니’는 커다란 ‘똥광’ 팻말을 들고 나와 고스톱이 최고란다.
마지막 ‘금발의 할아버지’는 큼지막하게 ‘좋은 음식’, ‘나쁜 음식’이라고 쓰인 두장의 팻말을 보여주며 “토마토, 잡곡밥, 등푸른 생선, 견과류, 마늘, 시금치 같은 거 많이 먹어야혀~”하고 너스레를 떤다. “알았어~” 추임새가 터져나오고 객석은 박수와 웃음소리로 요동을 친다.
지난달 18일 이원면 다목적회관에서 열린 ‘치매안심마을 선포식’에서 벌어진 진풍경이다.
이날 옥천군보건소는 행사프로그램으로 운영·자문위원 등에 대한 위촉장 수여, 치매안심마을 선언문 낭독 및 퍼포먼스, 치매환자를 대하는 방법에 대한 동영상과 함께 ‘치매이야기’라는 촌극을 선보였다.
‘치매이야기’ 촌극은 어르신들이 전문강사의 강의를 지루해할 것을 염려한 보건소 정신보건팀원들이 머리를 맞대 직접 대본을 쓰고 대전보건대 간호과 학생들이 ‘연기’를 하는 것으로 극화한 것이다.
‘서툰 대본에 어설픈 연기’였지만 발상의 전환이 가져온 파장은 컸다.
‘치매수업’이 ‘재밌다’고 표현하는 어르신들의 얼굴에서 ‘감 잡았다’는 자신만만함이 가득하다. 오늘 보고 배운 대로만 하면 ‘치매? 그 까짓거’다.
어설픈 촌극이 수려한 강의보다 몇백 배 더 큰 효과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물론 행사를 준비한 주최자들 입장에선 예정됐던 대로 전문강사의 특강을 진행했다면 ‘머리 아플’ 일은 없었을 것이다. 강사 선정하고 초빙만 하면 될테니까. 촌극을 준비하는 바람에 대본 수정하느라 밤새고 연습하느라 새벽 첫차를 타고 생각지도 못한 음향기기(연기자들 마이크)와 조명, 무대소품까지 신경쓰느라 ‘혼줄’이 났다는 후문이다.
발상의 전환이 불러온 ‘혼줄’이 아름답게 돋보이는 시간이었다. 민원인을 대하는 일선 행정에도 귀감이 될 법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