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남면의 마을 유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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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남면의 마을 유래(4)
  • 황동연 충청현공풍수원장
  • 승인 2016.09.29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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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남면의 산세는 금적산의 맥을 직·간접적으로 받은 곳으로써 청성면과 안내면 동이면, 군북면과 경계에 접한 지역이다.

또한 금강의 물줄기가 안남면 수동에서 독락정을 경유하여 흘러감으로써 안남면의 들녘에 물줄기가 되어 삶의 터전이 되어주고 있다.

즉, 산은 인물을 탄생을 시키고, 물은 농업의 기본인 재물을 상생시키는 것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다해주고 있다.

안남면의 주변의 산세는 순하면서도 곳곳에 혈장을 형성시켜줌으로서 토질 또한 좋아서 묘지로 적합한 곳이라 많은 묘지가 조성이 되어있다.

특히 임진왜란 의병장이었던 중봉 조헌선생님의 묘소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풍수학적으로 명당에 해당이 되어서 봄, 가을이면 풍수학자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중봉조헌선생님의 묘소의 신도비에 가면 비문에는 조헌의 파란만장한 생애가 기술되어 있는데, 특히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가 전사했던 최후의 격전 금산(錦山)전투에 대해 상세히 적혀 있다.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비문은 좌의정 김상헌(金尙憲)이 짓고 이조판서 송준길(宋浚吉)이 행서로 썼으며 두전(頭篆)은 우의정 김상용(金尙容)이 했다.

금산전투에서 700명의 의병과 함께 전사한 선생의 유해는 별도로 옥천군 도리동에 안장하였으나 인조14년 (1636년) 현재의 위치로 이장하였다.

묘역에는 묘비가 2개 있는데 하나는 우암 송시열 선생이 이곳으로 이장 할 당시 선생의 공적을기록한 것이다.

그래서 구전으로는 우암 송시열선생이 이 자리를 잡아주었다는 설도 있다.

조헌 선생의 묘소는 조중봉묘소(趙重峰墓所)라는 이름으로 충청북도기념물 제14호로 1976년 12월21일 지정되어 관리하고 있다.

송자대전(宋子大全)제207권 ‘행장’ 조에 ‘중봉(重峰)) 조 선생행장이 있다.

송시열 선생은 조헌 선생을 각별히 생각을 하였던 것 같다.

조헌선생의 묘소는 국세가 잘 짜여 진 곳이다.

입혈맥(入穴脈)을 거쳐 혈성(穴星)에 올라 보니 부모산인 하마산에서 뻗어온 입수룡(入首龍)이 혈성을 향하여 곧게 내려오다가 한번 속기(束氣)하고 다시 약간 솟아(起伏) 혈성을 만들고 곧게 나간 맥은 백호를 이루며 90도로 꺾인 맥은 입혈맥이 되어 혈을 맺으니 횡룡입수(橫龍入首)인데 귀(鬼)나 낙(樂)은 없어도 성두(星頭)(혈성머리)가 다소 솟아 오른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이로 인하여 곧게 지나가는 기운을 붙잡아 멈추어 혈장으로 꺾여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수(水)는 우선룡(右旋龍)에 좌선수(左旋水)가 되어 배합이 되었고 백호 끝이 하수사(下手砂)가 되어 역수(逆水)하였으며 내당(內堂)의 우수도좌에 외당(外堂)의 좌수도우로 합법이다.

현무, 주작, 청룡, 백호 등 사신사가 잘 이루어진 곳으로 백호자락의 둥근 봉이 안산을 만들어 아름답고 문무백관이 읍조하는 듯 내외 명당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조산 자락이 좌청룡으로 이어져 묘와 연결되는 회룡고조 혈이다.

좌향(坐向)은 신좌을향(辛坐乙向)으로 우수(左水)가 우(右)로 흘러 좌측 건해방(乾亥方)의 임관수(臨官水)와 임좌제왕수(壬子帝旺水)가 향(向) 앞을 지나 정방(絶方)인 손천간(巽天干)으로 나가고 우(右)측의 곤신장생수(坤申長生水)가 합하여 손천간(巽天干)으로 흘러나가니 정묘향(正墓向)이다. “고서에 을향손류청부귀(乙向巽流淸富貴)라. 즉, 을향(乙向)을 하고 을방묘수(乙方墓水)가 손방(巽方)으로 소수(消水)되면 부귀(富貴)하게 된다는 것이다.

正墓向은 發富發貴하고 인정(人丁)이 대왕(大旺)하여 인물흥왕(人物興旺)하여 부귀쌍전(福壽雙全)한다.

좌청룡은 우쭉 솟은 건해봉으로 "건해봉(乾亥峰) 병수(並秀하)면 발복장원(發福長遠)하고 문무부절(文武不絶)이라“

횡룡(橫龍)으로 묘소(墓所)의 청룡백호(靑龍白虎) 안산(案山)등 모두가 좋다.

묘소(墓所) 아래 평지에 표충사(表忠祠)가 있다. 우암송시열(宋時烈)의 소점이라한다.

백호(白虎)자락의 둥근봉이 안산(案山)을 만들어 아름답고, 외청룡(外靑龍) 백호(白虎)가 둘러서 만상(萬像)의 나성(羅城)을 이루고 문무(文武) 백관이 읍조(揖造)하는 듯 내명당(內明堂) 외명당(外明堂)이 넓어 장군(將軍)의 사열장소(査閱場所)로 안성맞춤이다.

건해(乾方)에 문필봉(文筆峰)이 더욱 아름답다

외청룡(外靑龍)이 돌아 들어와 다시 백호(白虎) 뒤에서 바치며 교쇄 된 국을 완벽히 만들고 있다. 또한 혈장으로 들어오는 유정한 모습이다.

주차장부근의 지하수는 묘소의 전순의 기운 설기를 차단하고 있다.

청룡과 백호가 겹겹이 교쇄 된 모습으로 완벽한 수구를 만들었다.

현공풍수학적(玄空風水學的)으로는 선조14년 1636년은 서기3969년으로서 7운으로서 신좌을향(辛坐乙向)은 왕산왕향(旺山旺向)으로서 정재양향(丁財兩旺)하여 4局중에서 가장 길(吉) 局)이 된다.

단, 지운(地運)의 기간(期間)은 140년으로서 5운에 입수(入囚)되어 기운(氣運)을 다하는것이다. 즉,1776년 서기4109년이다.

조헌선생묘소 뒤의 산이 하마산(350m)이고 조헌의 묘소 부근에 위치한 하마비는 기초석인 큰 바위에 구멍을 뚫어 세운 이 비석은 중봉의 묘소가 가까이 있으므로 이곳부터는 말에서 내려 걸으라는 뜻으로 세워진 것이리라.

하마비(높이 92㎝, 넓이 32㎝, 두께 12㎝)란 누구든지 그 앞을 지날 때에는 말에서 내려 걸으라는 뜻으로 새긴 돌비석으로서 우리나라에서는 1413년 태종13년에 종묘와 궐문 앞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표목을 세워 이곳을 지날 때에는 계급의 고하를 가리지 않고 말에서 내려 걷게 한 것이 그 시초로 알려지고 있다. 안남 하마산의 유래는 옛날 임금님이 말을 타고 가다 산이 하도 높아 말에서 내렸다 해서 하마산 이란다.

이와 같이 안남면의 마을 유래를 알아보기 전에 안남면의 명소와 풍수지리학적인 명당을 먼저 논하는 것이 좋을 듯 하여 논하였습니다.

경율당(景栗堂)과 둔주봉, 기타 명소를 기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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