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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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47)
  •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4.05.30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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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못하고 어쩔 줄 모르는 총장을 향해 나는 다시 같은 질문을 했다. 그러자 멈칫거리던 총장은 작은소리로 “아니에요.”라고 했다. 그 말을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분명히 들었다. 총장 입으로 성신이 내 학교가 아니라는 말을 이 33인의 집행부 앞에서 하다니, 천지개벽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때서야 나도답했다. “간호대학은 학장 것이 아니지요. 더군다나 평가원은 원장 것이 아니구요.”그 자리에 있던 모든 교직원은 마치 못들을 소리라도 들은 양 고개를 숙인 채 무서운 침묵이 흘렀다. 그도 잠시, 총장은 간호대 교수들을 향해 소리쳤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송 학장 말이 맞는지 대답을 해보라.”며 종주먹을 대기 시작했다. 그런 요구에 교수들이 쉽게 답을 할 수 없음은 자명했다. 응답이 없는 교수들을 향해 아빠 편이냐 엄마 편이냐는 식의 유아적 질문을 계속하자 한 교수가 “총장님 말씀도, 학장님 말씀도 다 일리가 있습니다.” 했다. 그런 양비론적인 대답을 원한 총장이 아니었다.33인의 교직원 앞에서 총장 편인지 학장 편인지를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그를 보며 나는 인내의 한계를 느꼈다.

“지금 총장님 뭐하시는 겁니까? 우리 교수들보고 총장 편이냐 학장편인가를 실토하라는 말입니까? 그만 하시지요.”그러나 그것으로 물러날 총장은 아니었고 계속 말을 하라고 다그치는 바람에 교수들은 어쩔 수 없이 한 마디씩 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교수들 한 마디 말에 따라 총장은 이미 머릿속에서 내 편, 네 편이 갈라지고 있었다. 그 후 교수들은 나와 함께 학장실로 왔다. “앞으로는 오늘같이 교수들에게는 방어할 기회를 주지 않음으로서 바보로 만드는 이런 발표회는 더 이상 안 된다.”고 했다. 한 교수가 “지금까지 학장님은 모든 것을 잘 참고 지내오셨는데 왜 오늘은 예전의 학장님 같지 않게, 좀 참으시지 화를 내셨어요? 저희는 앞으로 힘들어서 어떻게 지내지요?” 하는 말에 화가 더 났다.

“그럼 마지막 자존심도 버리고 그런 상황에서 침묵은 금이라고 보신 하는 것이 교수로서 맞는 처신이냐? 교수들의 입은 막아놓고 대학 집행부 앞에서 간호학도 모르는 사람들의 일방적인 질문만 받고 대응도 못하고 있는 망신주기식 발표 현장을 내가 그냥 말없이 지켜보고만 있어야 했는가? 그런 상황에서도 화를 참고 분노할 줄도 모른다면 도대체 우리가 교육자인가?” 일찍이 내가 우리 교수들에게 그렇게 격앙된 목소리로 말을 해본적은 없었다. 그래도 반 이상의 교수들은 그날 내가 참아주기를 바랐다고 하는 말에 그토록 실망하고 가슴 아픈 적도 없었다. 나야말로 교수들 말대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고 조용히 앉았다 나오면 그만이었다. 내 가 사직을 각오하고 총장과의 충돌을 마다하지 않은 것은 오직 내가 오 랫동안 아껴오던 우리 교수들을 지켜주고자 함이었다. 그날은 그들이 내가 함께해온 우리 교수들이 아닌 낯선 타인처럼 느껴졌다. 자리도 돈도 명예도 줄 수 있는 인사권자에게 약할 수밖에 없는 교수들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내가 쌓아온 신뢰의 세상은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져버렸다. 잠을 이룰 수 없는 숱한 세월만으로는 그 긴 세월 공들여 쌓은 믿음의 벽이 허문 아픔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오랫동안 같은 학문의 길을 걸으며 내가 진심으로 아껴온 교수들로부터 의리도 믿음도 그리고 따뜻한 인간성마저 거두어간 그 날은 내 인생에서 잊을수 없는 날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선물은 용서라고 했는데 나는 아직 완전한 용서의 선물을 주고 살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 또한 언젠가는 지나가리 라는 마음이다.

성신여대 교수회 
공동회장이 되다

2012년 10월, 곪은 상처가 터지듯 그간 총장의 독선적이고 비민주적인 대학 운영에 불만이 많던 교수들의 새로운 체재에 대한 욕구는 드디어 터져 나오고 말았다. 총장의 해임을 촉구하는 탄원서가 이사회에 날아든 것이다.

“000호, 이제는 닻을 내릴 때입니다.”라는 제목의 탄원서가 “성신을 사랑하는 성신 가족 일동.”이라는 이름으로 제출되었다. 총장은 익명의 탄원서는 무효라고 주장했지만, 장장 21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의 탄원서에는 누가 봐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에 근거한 총장의 비위 사실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이 탄원서는 이사회뿐 아니라 교직원들에게도 뿌려져 학교는 벌집을 쑤신 듯했다. 이사회는 이사회대로 구체적으로 적시되어있는 총장의 비행과 전횡 사실에 총장의 거취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고, 교수들과 직원들도 일손을 놓을 만큼 큰 충격에 휩싸였다. 교수들은 전현직 교무위원들을 대상으로 이 탄원서의 내용은 그간의 교무위원들의 경험으로 보아 사실임을 증명한다는 서명을 받아 교육부에 공식 조사를 요청하는 건의서를 발송했다. 물론 총장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총장의 해임안을 적극 검토하는 이사회에 시간을 줄 것을 요구했다. 동시에 탄원서를 쓴 당사자들을 찾기 위해 의심되는 교수연구실 컴퓨터까지 조사를 벌이는 소동이 일기도 했다.

탄원서의 내용이 인사문제부터 시작해 워낙 많은 비위 사실들이 낱낱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어 한 개인이 작성한 것으로 보기는 어려웠기에 총장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장본인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물론 의심받는 교수 중에 당연히 나도 빠질 수가 없었다. 탄원서 내용에 간호대학과 관련된 건이 구체적으로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의심받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었다. 교수들은 누구나 총장의 전횡과 비위에 대해 비판할 자유와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교육자인 교수로서 의무이자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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